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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3 07:11

나는 가수다 "너무나 완벽했던 무대이기에 드러난 모순"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여진 최고의 무대였다!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많은 생각과 말을 쏟아놓고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어쩌면 <나는 가수다>의 태생적인 문제이기도 할 터였다. 무어라 비판하기 이전에 <나는 가수다> 자체가 갖는 모순이었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6월 12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에서, 그것도 박정현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직접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이 노래(JK김동욱 '조율')로 피날레가 딱 되면 좋네요. 오늘 공연 구성 되게 좋다. 화려한 오프닝(김범수 '님과 함께')부터... 꽉 이렇게 시작하다가 우리가 더 차분해지다가 그리고 '조율'...!"

박정현은 그것을 공연구성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BMK도 마치 일부러 뽑은 것 같다고 말했었다. 김범수도 옥주현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그것이었다. 원래 어느 공연을 가도 한 가지 스타일로만 일관하는 경우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조용했다가는 들뜨고, 들떴다가는 가라앉으며, 가라앉았다가 다시 시끄러워진다. 너무 들뜨기만 하면 쉽게 지치고, 너무 조용하기만 하면 쉽게 지루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2시간 남짓 되는 공연시간 동안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같은 연출도 공연의 한 부분이다.

공연이란 그렇게 마치 하나의 드라마와도 같다. 코스요리처럼 에피타이저에서 메인디시에서 디저트까지 코스별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관객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아티스트가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그대로 자신을 맡기고 즐기면 된다. 그래서 지치거나 지루해졌다. 아마 다음에는 다시 그 공연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도취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매력. 그것이 방송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라이브 무대가 갖는 매력이다.

문제는 그러한 라이브무대의 역동성을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서는 일곱 명의 가수가 나누어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소라의 '행복을 주는 사람'과 같이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에서부터 김범수의 '님과 함께'처럼 역동적인 무대와 JK김동욱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폭발적인 '조율'에 이르기까지. 원래는 각각이 공연의 한 부분으로써 의미를 가져야 하는데 그 각각의 부분이 독립적으로 경쟁하며 평가를 받게 되었다. 마치 에피타이저와 메인디시와 디저트가 맛으로 비교평가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원래 에피타이저와 메인디시와 디저트는 그 목적이 다른 요리일 텐데도.

어째서 그동안 고음과 퍼포먼스만이 대중들에 각인되었는가.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 콘서트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그런 부분들이니까. 원래 조용하던 공연에서는 지루해할지 모르는 관객을 일깨우기 위해 그같은 프로그램을 집어넣는 것이다. 원래 역동적이던 무대에서는 지나치게 고조된 관객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자 조금 더 느리고 조용한 음악으로써 분위기를 조율한다. 그러니까. 왜 순번이 뒤로 갈수록 순위에서도 유리한가.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공연에서 그 공연의 핵심은 항상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함께 공연할 때도 마지막에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가 그날의 주인공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던 것을. 즉 무대에 오른 모든 아티스트들은 경쟁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 경쟁을 하게 된 자체가 모순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오프닝으로 김범수의 '님과 함께'를 듣고, 들뜬 분위기를 박정현의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가 격정적이지만 조용히 흐트러 놓는다. 이어지는 BMK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옥주현의 '사랑이 떠나가네', YB의 '새벽기차'가 뜨겁게 달구어 놓으면 피나레를 앞에 두고 이소라는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가라앉히고, 마지막에서 JK김동욱은 '조율'을 통해 이제껏 축적해 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과연 이것이 하나의 공연이라 보았을 때 누가 더 낫고 못하고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교해야 하니까.

그래서 김범수의 '님과 함께'와 JK김동욱의 '조율'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한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아마 '조율'을 부르는 도중 JK김동욱이 중간에 멈추는 일만 없었다면 어쩌면 1위와 2위의 자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 노래는, 아니 두 무대는 전혀 상반된 성격의 무대였다. 노래 자체보다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눈으로도 보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구성한 김범수와는 달리 JK김동욱은 오로지 노래 한 가지로만 승부를 걸었다. <나는 가수다>식 표현대로라면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는가.

결국 한 가지였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며 즐기는 무대와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무대와. 이소라의 정적인 무대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옥주현의 동적인 무대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은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인간의 언어가 여러가지이듯 소통하는 방식 또한 여러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음악이고 그 음악적 표현 가운데 하나가 퍼포먼스이며 소위 말하는 가창력인 것이다. 그것을 청중평가단은 냉정하게 평가해주었다. 무엇이 가장 즐겁고 감동이었는가.

그래서 역설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의 드라마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하나를 똑 떼어 7위라는 등수를 매긴다. 어떤 것은 1위가 되고, 어떤 것은 2위가 되고, 어떤 것은 6위가 되고 7위가 되어 무대에서 사라진다. 어째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혹은 대중이나 평론가들이 <나는 가수다>의 경연방식에 대해 야만적이라 비난하는가. 팔다리 가운데 하나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못하다고 떼어낸다면 그보다 야만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처럼.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촘촘히 얼개가 되어 짜여진 드라마를 이제 다시 올올이 흩어 평가해야 한다. 어쩌면 <나는 가수다>가 갖는 모순과 비극이 무대의 완성도에 비례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 회차가 아니었을까. 이소라의 7위도 YB의 6위도 그래서 납득하기 힘들다. 그들의 무대도 너무 훌륭했다. 다시는 이소라의 그 서정적이면서도 깊은 슬픔을 간직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인가. 안타깝고. 슬프고.

어쨌거나 말 그대로 최고의 무대였다. 어쩌면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나았는지도 모른다. 가수 한 사람 한 사람, 노래 한 곡 한 곡을 따로 떼어 놓는다면 이보다 나은 무대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유기적인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의 무대는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가장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런 무대였다. 하나의 노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홀린듯 즐겼다.

김범수의 '님과 함께'야 1위라는 등수가 곧 그 무대의 가치였다. 설마 박명수가 그렇게까지 해낼 줄이야. 전혀 기대를 않았었다. 박정현의 소울이 느껴지는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와 약간, 아니 아주 많이 아쉬웠던 BMK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오히려 뮤지컬 배우로서의 장점을 십분 살린 옥주현의 '사랑이 떠나가네', 다만 YB의 '새벽기차'는 이제까지의 YB답지 않게 관객과 유리된 자기들만의 공연이었다. 한국에서 록이 대중과 유리되도록 만든 바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보는 순간 7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노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이소라의 무대에 이어진 JK김동욱의 무대는 BMK의 말대로 '조율'이라는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도 좋아하게 만들 그런 힘을 가진 무대였다. 한영애의 '조율'과는 전혀 달랐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분명 아쉬움도 있고 부족함도 눈에 보였다. 하지만 결국 무대는 그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일부러 평가하라 하지 않고, 더구나 내 돈 내고 표를 사서 들어가 즐기는 공연이었다면 어땠을까? 더 잘하고 못하고가 그렇게 눈에 들어왔을까? TV화면 너머로도 이렇게 열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현장으 평가단은 얼마나 평가를 내리기가 곤혹스러웠을까. 이런 공연을 보고서도 결국 평가를 하고 등수를 나누고 누군가를 배제해야 한다는 자체가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되었던 옥주현과 JK김동욱의 재녹화 논란에 대해서도 바로 그렇게 접근하고 이해하면 되겠다. 라이브를 보러 가면 그렇게 사고가 잦다. 음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 아티스트가 음악을 놓치고 틀리기도 한다. 원래 그런 사건사고까지 포함한 것이 라이브라고 하는 것이다. 정직하게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음악을 들으려면 CD를 들으면 된다. 살아있다는 것은 실수도 하고 오류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무대를 이루는 일부로써 받아들여주면 좋았을 것을.

결국은 역시 예능으로서의 <나는 가수다>가 갖는 모순이며 괴리일 것이다. 음악도 듣는다. 경쟁과 생존이라는 예능적인 재미도 함께 즐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결국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음악을 듣고자 한다면 재녹화는 관객과 시청자에게도 그들의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바이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룰을 깬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옥주현이 비난을 듣고 JK김동욱이 끝내 자진하차하고 만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가수다>는 어떻게 해도 음악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예능프로그램에 가깝지 않은가.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너무 아쉽다. 굳이 서바이벌이 아니어도 좋을 텐데. 하지만 서바이벌이 아니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나는 가수다>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무대는 최고지만 굳이 서바이벌이 형식을 빌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일부러 보려고 채널까지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토록 주장하며 내세우는 <나는 가수다>의 사명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결국 지난 경연에서 5위를 하고 이번에 다시 6위를 하면서 탈락이 결정된 이소라와 어쩌면 이제까지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었던 JK김동욱의 자진하차는 그래서 더욱 <나는 가수다>가 갖는 비극을 보여주는 듯해서 아릿한 아픔이 있다. 물론 그렇더라도 어디에선가는, 공연장이나 혹은 음반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지만. 그들이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말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파이널을 찍었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듯,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했다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안다. <나는 가수다>는 바람이다. 한 바탕 거칠게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이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인사는 다음 무대에서 만났을 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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