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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2 08:40

내사랑 내곁에 "고석빈, 도미솔과 만나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고석빈의 얼굴, 비극을 예고하는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정자(이휘향 분)가 봉선아(김미숙 분)의 아들로 되어 있는 영웅이가 자신의 아들 고석빈(온주완 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알아냈을 때, 그녀의 혈육에 대한 집착을 읽으면서. 느닷없이 배정자가 부모 이야기를 꺼내며 행복에 겨워 하는 것은 복선이었을지 모른다. 도미솔(이소연 분)과 영웅이 사이에 배정자가 끼어든다.

비로소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배정자는 자신의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에 대해서마저 죄책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마음은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그 순간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모습은 영웅의 엄마인 도미솔을 그리 모질게 등떠밀던 자신과 오버랩된다.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은 그녀의 억눌러 두었던 진심이리라. 다만 그녀의 존재가 끼어들고 나면 안정을 찾아가던 도미솔과 봉선아 모녀, 그리고 영웅은 어찌되는가.

마침내 고석빈이 도미솔과 마주했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도미솔을 마침내 쫓아가 마주하는 순간 고석빈의 얼굴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도미솔을 떠나보내고 다시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의 전화를 받는 그 순간의 고석빈의 표정은 과연 안타까움이었을까? 아니면 후회나 미련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누군가를 향한 죄책감이었을까? 그 복잡미묘한 표정에서 비극을 예고하는 격정을 읽게 된다. 그것은 또 어떻게 전개되어 가려는가.

온주완이라고 하는 배우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그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상상케 한다. 도미솔과 고석빈의 관계와, 더구나 배정자가 고석빈과 도미솔의 아들인 영웅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 조윤정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조윤정은 그의 아내다. 그런 얽히고 설킨 가운데 어찌 할 바를 모르는 - 갈 곳을 잃은 어린 아이와도 같은 표정이 압권이었다. 아마 6월 11일 방영한 <내사랑 내곁에> 11회 방송분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를 기대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문제라면 고석빈의 그러한 표정이 현실화된다면 자칫 드라마가 신파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70년대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재현이다. 배정자가 영웅에게 미련을 드러내고, 조윤정이 도미솔을 동정하고, 고석빈이 도미솔을 책임지려 한다면. 차이라면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의 여주인공은 상당히 피동적인, 단순히 받기만 하는 존재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도미솔에게는 그녀를 지켜주려는 어머니 봉선아도 있고, 그녀 자신 또한 의지가 굳다. 무엇보다 그녀의 일상을 유쾌하게 감싸주는 또 다른 남자 이소룡(이재윤 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설마하는 이유일 것이다. 진부한 신파극으로 흐르기에는 이소룡과 도미솔의 관계가 참으로 즐겁고 보기 좋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듯 서로 얽히고 오해하고 엇갈리며 다가가는 과정이 참으로 맛깔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파로 흐른다? 그렇더라도 이소룡이 도미솔을 잡아줄 것이다. 이소룡과의 로맨틱 코미디와 고석빈과의 고전적인 멜로, 결국에 어느 쪽으로 힘이 실리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색깔은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도미솔의 존재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느냐? 남자에만 의존하는 피동적 존재로써는 역시 신파는 피할 수 없다.

아무튼 결국 고등학생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남들의 눈을 피해 이사를 다녀야 하는 봉선아와 도미솔 모녀의 처지란. 아들을 아들이라 말하지 못하고 손주를 손주라 부르지 못한다. 아들은 엄마라는 사실을, 외할머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또한 비극이다. 어째서 세상의 눈이란 천륜마저 이렇게 갈라놓는 것인가? 미성년자가 임신하고 출산하면 안 된다고 하는 도덕률과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고 엄마를 엄마라 불러야 한다는 천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릴까?

내내 보면서 비판해 온 부분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 속이 너무나 리얼한 현실에 대해서다. 아마 도미솔이 영웅을 자기 아들로써 키우고 있었다면 그것도 판타지였겠지. 그것을 현실로 옮기고자 했다면 한결 더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다지 여유나 관용이 부족하다. 설사 천륜을 갈라놓더라도.

이소리(이의정 분)에게 이입하며 본다. 원래 그쪽 일이 그렇다. 창작을 하는 일이란 말이 창작이지 결국 백수다. 지나고 나면 다른 데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란 아무것도 없다. 오죽하면 지인이 방송작가 시험을 보려는데 접수담당자가 그러더란다. 나이 서른 넘고 남자이면 어지간하면 하지 말라고. 대우도 열악하고 장래성도 희박하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다. 평생을 드라마작가 한다고 글만 쓰고 산 이소리에게 서른 중반에 돌아본 세상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권한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언가 창작하는 일을 할 때는 다른 먹고 살 방도를 만들어 놓고 일에 뛰어들라고. 나중 가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을 때 이처럼 난감한 것도 없다. 이미 프로로써 데뷔하고 단행본까지 냈던 만화가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방송작가의 자살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문득 공감하고 말았다. 제대로 이입했다.

결국 봉우동(문천식 분)마저 이소리와 얽히며 좁은 무대 위에 모든 배우들이 올라와 서로 얽히고 설키며 관계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소리는 이소룡의 고모이고, 봉우동은 도미솔의 외삼촌이다. 도미솔과 이소룡이 맺어지려면 봉우동과 이소리의 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다. 앞으로 도미솔이 방송국에 입사하게 되면 또 이소리와도 얽히게 될 터고. 고석빈과도 만나고, 이소룡과도 인연이 깊어지고.

안타깝다면 이소룡이 현재 모습이 <최고의 사랑>에서의 독고진과 너무 겹치고 있다는 것. 자신의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한다. 그러면서  그같은 당황을 도미솔을 곤란케 함으로써 해소하고 있는데. 그 순진하기까지 한 모습이 독고진 그대로다. 의식한 것일까? 하기는 그렇다고 <내사랑 내곁에>가 먼저 방영되었다고 이소룡이 독고진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소룡은 딱 이제 갓 세상에 물들어가는 신입사원의 모습이다. 그래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매력이 있다.

평범하다는 것. 그다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바로 그같은 이소룡의 모습이야 말로 이 드라마를 정의하는 요소가 아닐까. 그렇게 대단하게 이슈가 될만한 내용은 없지만 건실하게 정석을 밟아 나간다. 평이하면서도 끝까지 집중하며 보게 만드는 힘이 그것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신파의 경계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잇는 힘 역시.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탄탄한 재미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필자는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캐릭터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법한 평이한 이야기들, 하지만 드라마이기에 갖는 특별함도 있다. 그것을 메우는 것이 바로 배우의 연기력일 텐데. 약간은 허술한 듯 하지만 인간에 대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대본도 좋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스탠다드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다. 즐겨 보는 이유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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