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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6.14 09:37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집착과 사랑사이, 내 이름 기억해요?"

기억하고자 하는 소년과 잊고 싶어하는 변호사, 부조화의 조화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버지가 죽었다. 부모도 없이 맡아길러준 고모부마저 자신을 부정하며 거부한다. 심지어 자신을 버리려 한다. 자기란 누구인가. 자기란 무엇이며 어떤 가치인가. 자기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확인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다.

그래서 찾아다녔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이를.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이를. 자기에게 이름을 묻고 자기가 이름을 대답해주었던 그를. 그와 약속한 것들을. 모두가 자기의 이름을 잊어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도, 그녀만큼은 자신을 기억해주고 필요로 해 줄 것이다. 약속했다. 그녀를 지켜주겠노라고. 아버지를 죽인 그로부터.

박수하(이종석 분)가 장혜성(이보영 분)에 대해 오히려 정상에서 벗어난 듯한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던 아직 한참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꿈에서의 기억은 꿈에서 깨고 난 뒤 정리되고 정의된다. 지나고 나니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작 다시 만난 장혜성을 대하는 박수하의 모습에서는 또래에 어울리는 사랑에 들뜬 모습보다 어떤 집요한 의무감과 같은 것만이 느껴질 뿐이다. 장혜성을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믿는다.

아마 장혜성의 경우는 박수하와는 반대였을 것이다. 차라리 잊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낙천적이다. 자의식도 강하고 매사에 무척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내일의 기대나 희망을 전제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무기력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고, 희망할 것이 없으니 새삼 절망할 것도 없다. 국선전담변호사로서 거둔 첫승리에 의기양양하다가 사무실의 리더격인 신상덕(윤주상 분)이 말 몇 마디에 이내 급격히 우울해지고 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의 깊은 곳에 뿌리내린 지독한 열등감이었다.

오직 엄마만이 자기 편이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엄마만이 자신을 믿어주었다. 그래서 변호사까지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려 그녀는 억지로 힘을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억지로 밝은 척. 억지로 강한 척. 당당한 척. 뻔뻔한 척.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척 만족스럽기도 했다. 보려 하지 않으니 고민도 없고, 들으려 하지 않으니 갈등도 없다. 전혀 진지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으니 상처입을 일도 괴로워 할 일도 없다. 편하다. 굳이 사람이 항상 진실과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금 속이고 자신을 기만하더라도 쉬운 길이 있다면 그리로 가면 된다. 어차피 세상이란 그렇게 되어 있고 자기라고 달리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장혜성은 서도연에 대해서까지 처음에는 그저 피해가려 하고 있었다. 원망스러운 상대였다. 그로 인해 자신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까지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검사와 변호사로서, 그것도 국선전담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다시 상처입는 것이 싫어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저 창피만은 당하지 않으려. 당당히 맞서서 쟁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리 도망침으로써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려 한다. 장혜성을 마침내 움직이도록 만든 것은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그녀 안의 분노와 모멸감이었다. 첫승리는 그리고 그런 장혜성 자신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제는 조금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서 하고자 하는 바를 주장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신상덕이 다시 그녀를 좌절케 한다.

박수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변호사로서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 진실을 꿰뚫는 눈이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박수하의 능력이었다. 사실상 장혜성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채찍질을 하면 더 분발하여 힘을 내고, 어떤 사람은 채찍질을 당하면 이내 겁먹고 좌절하여 주저앉고 만다. 장혜성은 안타깝게도 그 임계점이 낮다. 다행히 박수하가 그녀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적인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고 있다. 과연 그녀에게도 모두가 인정할만한 장점이 하나는 생겨나게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학생인 박수하의 힘을 빌어 장혜성은 성장하려 한다. 성장해야 한다.

어쩌면 민준국(정웅인 분)의 존재에 대해서도 장혜성은 어쩌면 아예 고개돌려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 학생의 신분임에도 박수하는 민준국의 소재와 행적을 파악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변호사인 장혜성의 신분과 능력이만 보다 쉽게 박수하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몰랐던 것이 아니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준국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두렵기에. 잊고 싶었다. 없었던 일로 여기고 싶었다. 민준국이 자신 앞에 나타나는 그 순간까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싶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방에 침입했던 범인이 - 그리고 박수하가 폭행한 피해자가 민준국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오히려 장혜성은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는 있었지만 언제고 닥칠 일이라는 다짐이나 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수하보다도 더 냉정하고 침착하다.

민준국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악역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더구나 자신의 살인을 증언한 증인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는 흉악하고 잔인한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민준국을 찾아나선 박수하가 그를 본 것은 어이없게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였다. 무료급식소만이 아닌 여러 곳에서 그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었다. 급식소에서 그는 누구보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수하가 자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박수하를 일방적으로 자신을 폭행한 현행범으로 함정에 빠뜨리고 만다. 그를 끝까지 폭행범으로 몰아가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웅인이기에 더 소름끼치는 제대로 된 사이코패스 캐릭터였을 것이다. 집요하게, 수많은 다른 얼굴을 가지고, 더구나 법이라고 하는 보호막까지 태연하게 무력화시키며 장혜성의 주위를 조여온다. 과연 박수하는 그런 민준국으로부터 장혜성을 지킬 수 있을까? 장혜성은 민준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단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긴장하며 마음을 조이게 된다. 박수하는 아직 어리고 장혜성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박수하와 장혜성이 만들어갈 국선전담변호사로서의 법정드라마는 물론 민준국의 잔인하고 집요한 복수에 맞서는 스릴러가 더해진다. 로맨스의 대상은 박수하와 장혜성일까. 차관우(윤상현 분)와 장혜성일까?

비로소 사무소 사람들에게 조금씩 인정받는다. 국선전담변호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도 알아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차관우 변호사가 잘생겨 보이려 한다. 박수하에게는 적신호다. 의외로 능력좋고 사람도 좋다.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하는 박수하의 한계는 상식적인 다른 선택에도 무게를 실어준다. 물론 그조차도 아직은 너무 가볍다. 진지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무거워지기에는 아직 초반에 불과할 것이다.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부담없이 그러나 거부감없이 구성해내고 있다. 재미있다.

박수하는 장혜성을 사랑하고 있을까? 장혜성은 박수하를 사랑하게 될까? 장혜성과 차관우의 관계는 미묘하다. 동료 이상일 수 있다. 민준국으로부터도 장혜성은 자신을, 박수하는 장혜성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사건도 맡았다. 박수하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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