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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첫승리와 행복한 마무리, 초능력의 이유"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와 아쉬움에 대해서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실망이었다. 드라마를 기대했다. 캐릭터가 있고 사건이 있다.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해결까지 아니 해결되고 난 이후의 뒷처리까지가 모두 하나의 사건을 이룬다. 법정이라면 사실과 진실을 사이에 두고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첨예한 지성과 이성이 부딪히는 치열함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단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렸기에 나레이션이 아닌 대사로 취급된다. 연설은 구성을 포기한 이의 마지막 탈출구일 것이다. 모든 갈등과 긴장이 말 몇 마디로 바로 해결된다.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될 것이면 법도 경찰도 필요없을 것이다. 굳이 여러사람 모아놓고 돈과 시간을 낭비해가며 재판을 할 이유도 없다. 분명 괴롭힘이 있었다. 고성빈(김가은 분)이 주도하여 문동희(김수연 분)를 집단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모욕과 고통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로 인해 입어야 했던 상처들이 고작 말 몇 마디에 치유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던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돌려주려 독하게 마음먹어도 좋았을 것이다. 모든 증거를 찾아들고 진실을 말할 것을 강요하는 변호사 장혜성(이보영 분) 앞에서도 자신의 원망과 증오를 결코 놓지 않는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더 치밀하고 정교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목격자도 없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도 없다. 정작 피해자인 문동희는 고성빈을 끝까지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는데 겨우 찾아낸 증거라고 해봐야 정황에 불과하다. 아무리 문동희가 담배를 폈고, 더구나 사건이 있던 당일 문동희가 핀 담배꽁초가 음악실 주위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결국 그런 정황들과 문동희가 그날 음악실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고 하는 사실과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문동희가 담배를 피다 고성빈이 음악실로 들어오는 것을 포고 창뒤에 숨었다가 실수로 떨어졌다는 것은 차관우(윤상현 분)의 일방적인 추리에 불과한 것이다. 재판을 이어가더라도 차관우가 확보한 증언과 추리들로는 문동희의 주장을 뒤집기에 역부족이다. 보다 확실한 증거들을, 그리고 아직 확보하지 못한 증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하기는 어차피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제 겨우 도입부다. 캐릭터를 소개한다. 관개를 설정한다. 시청자들과 약속한다. 이런 배경 위에, 이러한 인물들이,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갈 것이다. 어차피 길게 끌고 갈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쉽게 끝내려 한다. 복잡하게 꼬아가며 치밀하게 완성해가는 것이 아닌 쉽게 몇 마디 말에 의지해 모든 사건을 해결지으려 한다. 왕따를 주도한 가해자는 단지 말 몇 마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눈물어린 사과를 하고, 왕따로 인해 고통받아온 피해자 역시 말 몇 마디에 모든 앙금을 씻어낸다. 왕따의 현실과 그에 대한 주제의식은 이들의 대사 몇 마디에 그대로 압축되어 저장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로소 처음으로 장혜성이 국선변호인으로써 박수하(이종석 분)와 팀을 이루어 승리를 일구어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장혜성이 속한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의 구성원들도 처음으로 한 팀이 되어 승리를 이끌어냈다.

물론 그렇다고 과연 자신들의 첫사건인데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끝냈어야 했었는가. 어쩔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가해자의 편에서 왕따의 피해자와 대결한다는 것이 제작진 입장에서도 여러가지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국선변호인으로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세운다. 왕따 피해자의 절박한 복수를 법이라는 냉엄한 논리 앞에 무고의 죄로써 되돌려준다.

가해자는 법정에서까지 모욕적인 말과 함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는 말 몇 마디에 눈물과 함께 가해자를 용서하고 만다. 피해자가 같이 가해자와 맞서싸우는 순간 똑같은 가해자가 되고 만다. 하필 주인공인 장혜성과 박수하, 그리고 사무실의 사람들 역시 가해자와 한 편이 되어 버린다. 법은 이성으로 판단하지만 드라마는 감성으로 즐긴다. 불특정다수의 시청자가 보는 공중파 드라마일 것이다. 불특정다수의 보편과 상식의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한다. 모두가 행복하도록 아름답게 매조지한다.

솔직히 기대도 있었다. 문동희가 자신이 음악실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을 때, 어쩌면 그 이면에는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더 크고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긴 연예인지망생이라고 하는 배경과 사건의 배후를 연결짓기에는 피해자 문동희의 나이가 이제 겨우 15살에 불과하다. 그래서 절박하기만 한 모습에 비해 결국 밝혀진 진실이란 문동희가 아직 미성년자이고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핀다는 사실 한 가지다. 단지 연예인이 되고 나서도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그 사실을 감추고 싶다. 허탈할 정도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미성년자들이 더구나 학교 안임에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까지 심각할 문제는 아니다. 문동희의 고성빈에 대한 원망과 증오까지 그렇게 희석시켜버리고 만다. 긴장이 생길 리 없다.

재판이 끝나고 서도연(이다희 분)과 장혜성이 나누는 대화도 어딘가 유치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해야 했었는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을 조성할 방법이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일로 인해 서도연을 의식하고 경쟁심을 가지는 것은 박수하의 조언으로 충분했다. 느긋하다기보다는 무기력하던 장혜성이 그로 인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핵심은 그 움직임이다. 그것이 곧 드라마일 테니까.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으로 단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연설처럼 직접적으로 시청자의 귀에 들리고 있다.  너무 급하다. 아직 분량은 남아 있다.

아니나다를까 장혜성을 기른 것은 엄마 어춘심(김해숙 분)이었다. 장혜성을 의심하여 집과 학교에서 내쫓기도록 만든 서도연의 아버지 서대석(정동환 분)의 저서를 바로 눈앞에서 불태웠을 때부터 알아봤다. 당장 식모살이도 내쫓길 판인에도 끝까지 서대석에 맞서 딸을 믿고 지키려 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아니다. 단지 당당해지는 것이다. 비굴하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딸이다. 학교에서 내쫓기는 최악의 절망속에서도 그녀가 꺾일지언정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쉽지 않은 변호사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어머니는 강하다. 그런 어머니가 있기에 장혜성은 강할 수 있다. 서도연과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서도연과 마지막으로 만난 그때에 장혜성은 머물러 있다.

차관우의 제안으로 교복을 입고 고성빈의 학교로 잠입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수였다. 하기는 그것이 바로 드라마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오해한다. 그리고 넘겨짚는다. 민망한 상황을 자초한다. 박수하 혼자서만 진지하다. 어른같은 아이이고 아이같은 어른이다. 그것이 연상연하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보정해준다. 우습지만 진지하다. 긴박함도 있다. 민준국(정웅인 분)이 출소했다. 출소하고 장혜성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장혜성을 반드시 죽이겠다던 섬뜩한 경고를 기억한다. 박수하는 장혜성을 지킬 수 있을까?

드라마니까 가능하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몰랐다.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의 그같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여겨질지를. 비로소 자신이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고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니 피해자도 받아들여준다. 세상이 착하고 사람이 착하다. 박수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는다. 기만이다. 행복해지고픈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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