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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0 09:04

시티헌터 "이윤성, 김나나와 동거를 시작하다!"

액션 없는 액션 드라마...

 
확실히 액션보다는 멜로가 더 강하다. 이윤성(이민호 분)과 김나나(박민영 분)가 마침내 동거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느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더 맛깔나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이윤성이 경매에 넘어간 김나나의 집을 사들이고, 김나나는 그것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불거지고, 마침내 화해하며 동거 아닌 동거의 시작.

그러고 보니 아파트다. 원작에서도 시티헌터 사에바 료와 마키무라 카오리는 시내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문득 화면에 잡힌 낡은 아파트의 모습이 료와 카오리가 살던 도쿄 시내 아파트를 떠올리게 했다. 만일의 상황에 도망치기 좋겠다는 이윤성의 대사까지 더해 그곳은 시티헌터의 아지트가 된다. 의미는 다르지만. 원작에서의 낡은 아파트가 시티헌터가 도시 속에 숨기 위한 장소였다면 드라마에서의 아파트는 시티헌터가 도시속으로 나가기 위한 쉼터와 같다. 김나나 역시 마키무라 카오리와는 달리 빛속에 존재한다.

아무튼 이래서 최다혜(구하라 분)의 캐릭터가 존재하는구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동안 최다혜의 캐릭터는 있으나 없으나. 때로 극의 흐름마저 방해하는 민폐도 아니고 잉여캐릭터였다. 도대체 구하라 가지고는 어째서 그렇게 홍보를 해 댄 것일까? 구하라의 이름을 언급하기에도 드라마에서의 비중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역시 로맨틱코미디에는 밀고 당기기가 있어야 하고, 밀고 당기기는 오해와 질투로부터 비롯된다.

사격훈련을 받는 이윤성과 그런 이윤성을 발견하고 사격훈련을 받겠다고 떼를 쓰는 최다혜, 자연스런 스킨십이 이루어지며 김나나의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은 그다지 굳이 필요한 장면은 아니었는데 동거까지 시작한 두 사람 사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최다혜를 질투하게 되면서 진세희(황선희 분)와 호텔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아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김나나가 이윤성을 오해하고 질투하게 되기까지 개연성이 필요하다. 진세희와 김영주(이준혁 분)의 과거에 대한 암시라든가, 진세희가 이윤성과 함께 호텔에 욕의를 입고 함께 있게 된 과정도 그래서 공교롭다. 이윤성과 김나나, 김영주와 진세희, 이 네 사람의 감정이 서로 얽히고, 엇갈리고.

그에 반해 정작 드라마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은 너무 부실하지 않은가. 서용학(최상훈 분)과 마르스사의 담당자 허드슨과의 만남을 추적하고 도청하는 과정도 너무 쉽다. 도청을 마치고 나오는 도중 진세희를 만나 얽히게 되는 건 시티헌터답다 하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허술해서. 하기는 이경완도 그랬지만 비밀스런 일을 하는 사람들치고는 경계심도 긴장감도 너무 없다. 시티헌터를 저지하려는 하수인도 현재 이윤성을 쫓는 한 사람 뿐이고.

결국은 적이 없는 것이다. 싸워야 할 적과 응징해야 할 죄인은 다르다. 적은 대항한다. 때로 공격해 온다. 죄인은 단지 일방적으로 단죄될 뿐이다. 그렇다고 그 단죄마저 검찰에게 맡겨 버리니 정작 시티헌터 이윤성이 할 일이란 사라질 밖에. 이진표(김상중 분)의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그가 행동에 나서는 순간 드라마에 긴장감이 부여되리라. 지금으로서는 단지 액션도 가미된 멜로 이상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다.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과 같은 이윤성과 그런 이윤성을 의식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내색 못하는 김나나와, 여기에 최다혜와 김영주, 진세희가 얽히며 만들어내는 오해와 소동들. 때로 토라지고 때로 질투하며 때로 눈웃음도 짓겠지. 설레하고 아파하고 당황하며 그래도 무심코 돌아보며 웃을 것이다. 현실의 살벌함과는 유리된 채. 다만 그 현실의 살벌함이 너무 유리되어서는 <시티헌터>라는 제목이 무색할 것이다.

그나저나,

"왜냐? 나는 누구보다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아시겠소?"

참 역겹다. 어쩌면 저런 말을 저리도 뻔뻔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일까? 리베이트 때문에 결함전투기를 도입하려 하면서.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치자금을 확보하고자 문제가 있는 전투기를 도입하려 협상하는 자리에서.

그러나 그 말이 진심임을 필자는 믿는다.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 누구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려 한다. 단서가 붙는다.

"오로지 나여야만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오로지 나여야만 한다. 루이 14세가 말한 내가 곧 국가다. 내가 곧 민족이다. 내가 죽으면 나라도 죽는다. 내가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 따라서 내가 잘되는 것이 나라도 잘 되는 길이다. 내가 잘 됨으로써만이 나라도 민족도 잘 된다. 내가 누리는 부와 권력과 명예는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조차도 애국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나여야만 하기 때문에. 그래서 태연히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희생시키고, 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누리려 들게 된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마저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니까. 민족을 위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자기의 양심마저 엉뚱한 나라와 민족에 맡겨 버리게 된다. 사람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면서도. 개인금고에 막대한 비자금을 쌓아 놓으면서도.

하기는 특정한 개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모습들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한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한다. 헌신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 정작 자신의 양심을 그리고 출장보내려는 것은 아닌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국가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지키고, 당위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내 탓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폭력적이다. 파렴피하고 무도하다. 단지 개인이 악할 뿐이면 고작 수십명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로 끝날 뿐이지만 개인이 정의로우면 수천수만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역사가 그래왔고 현실이 그러하다. 하기는 그만한 뻔뻔함이나 오기가 있어야 정치도 할 수 있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것도 그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 뿐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윤성이 과격한 복수를 자제하려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것이 과연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결함전투기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가. 확실히 엔진결함으로 몇 차례 추락사고가 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기종 자체가 생산국에서도 주력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기종이라. 단지 무기도입사업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하필 전투기라는 점이 그동안의 지겹도록 이어지던 논란이 떠올라 조금은 부대낀다. 역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한 소재에 불과하겠지?

어쨌거나 액션이라고는 없는 액션드라마라니. 유일한 액션이 사격연습장에서 사격하는 것. 원래 추구하려던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시티헌터>를 보는가? 단지 이윤성과 김나나의 러브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이민호와 박민영, 황선희, 이준혁, 구하라 등 매력적인 출연자들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감상하기 위해서?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도망자>가 한참 나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리 <도망자>가 시티헌터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면 오히려 더 어울렸을 텐데.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나는 주간 드라마 시간대에 로맨틱 코미디를 하나 더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질투하는 박민영은 귀여웠고, 어쩌면 첫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민호도 사랑스러웠다. 황선희와 이준혁의 엇갈림도 안타깝다.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다. 다만 <시티헌터>라는 제목이 담는 의미다. 아쉬웠다. 아주 많이. 남의 돈으로 허세를 부려봐야 내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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