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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6.05 08:50

상어, "텅 빈 눈빛, 복수를 위해 바쳐야 했던 것들"

얼굴과 이름, 기억과 시간까지, 한이수가 아닌 김준이 되다

▲ 사진제공=에넥스텔레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전국시대 지백의 신하였던 예양은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얼굴을 망치고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바꾼 채 다리 아래에서 조양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춘추시대 전설적인 도검장이던 간장의 아들 적비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자르고 있었다. 자신의 목으로 초왕을 찾아가 원수를 갚아달라는 뜻이었다.

쉬운 것은 복수가 아니다. 그것이 그리 쉽다면 한이 남을 이유가 없다.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이 생겨날 이유가 없다. 원인이 있으면 바로잡고, 이유가 있으면 해결하며, 그래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면 그에 맞는 댓가를 치르도록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굳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침묵하거나 혹은 억지로라도 댓가를 치르도록 만들거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자신도 그를 위한 댓가를 내놓아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얼굴과 이름, 그리고 기억이다.

얼굴을 잃었다. 사고로 얼굴을 다치고 수술받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조해우(손예진 분)는 물론 친동생인 한이현(남보라 분)조차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전혀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12년 전 사고를 지시했던 조상국(이정길 분)은 어쩌면 당시 그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의심하여 여전히 그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칫 원래의 얼굴을 보이기라도 하면 복수고 뭐고 당장 자기의 목숨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 만큼 복수라는 당위를 위해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한이수(김남길 분)가 아니다. 조상국의 집에서 운전기사를 하던 한영만(정인기 분)의 아들 한이수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그는 요시무라 준이다. 일자이언트 호텔 체인을 소유한 일본 유수의 재일교포 자산가 요시무라 준이치로 - 한국이름 김준일의 아들 김준이 바로 그다. 조해우의 앞에서도, 12년만에 만난 여동생 한이현의 앞에서도 그는 요시무라 준이고 김준이다. 복수를 마치기 전까지 그는 한이수가 아닌 김준으로 살아야 한다. 그는 과연 다시 조해우와 남이현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힐 수 있을까?

기억조차 수단이 된다. 과거의 기억조차 복수를 위한 도구가 된다.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던 조해우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필 조해우가 오준영(하석진 분)과 결혼식을 올리던 그날 그는 비로소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조해우는 오준영의 아내다. 더 이상 자신의 기억속에 액자처럼 간직되어 있는 앳띤 소녀의 모습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야 할 남의 여자인 것이다. 기억을 단절하고 감정을 끊어낸다. 그렇게 결심한다. 조해우조차 복수의 대상이며 또한 복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조해우가 오준영의 아내가 되던 바로 그 순간 말없이 창밖만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은 복수를 위해 가장 소중한 한 가지를 제단에 바쳐야 하는 비장함을 나타내고 있었을 것이다. 복수는 시작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마저도. 과연 지금 한이수에게 자신을 한이수라 증명할 만한 것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아니 한 가지 남아 있다. 복수. 그를 한이수이게 하는 것.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 한,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를 향한 복수다. 그래서 더 조상국에 대한 한이수의 복수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더 이상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양심마저 저버렸다. 태연히 사람을 죽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협박까지 일삼는다. 더 이상 한이수에게는 한이수가 없다.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김준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복수를 위해 바쳐야 했던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이었다. 바로 한이수라는 자신이었다. 자신과 맞바꿔서라도 그는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론 한이수를 버렸다고 해서 그가 한이수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한이수의 기억은 한이수 자신은 물론 조해우에게도 남이현에게도 있다. 조상국과 조의선(김규철 분)에게도 각각 흩어져 있다. 한이수가 아닌 김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난 장영희(이하늬 분)의 존재가 그것을 확인해 준다. 김준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의 가면 뒤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억과 감정들이 새어나온다. 그것이 상처가 된다. 그의 실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있다. 그의 진심 역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두고 여기에는 껍데기만이 있을 뿐이다. 한이수에게 진심이 된다면 그 상처 또한 더 커질 것이다.

한이수를 버렸다. 그러나 그는 한이수다. 자신이 알고, 그리고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이 안다. 조해우만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비밀들이 남이현을 통해 양아버지인 변방진(박원상 분) 부부에게까지 알려지고 있었다. 버리고자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고자 해서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복수를 꿈꾸고 행동에 옮기고 있는 자신은 누구인가.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다. 한이수를 버린 김준과 김준의 뒤에 숨은 한이수는. 그때 그의 기억들 역시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과도.

굳이 정의하자면 '희생의 장'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복수를 위해 한이수가 버려야 했던 것들, 타협해야만 했던 것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들에 대해서. 그래서 한이수의 눈빛은 공허하다. 차라리 증오라도 담겨있었다면. 그에게 다시 이름이 돌아오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찾은 자신의 모습으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하게 될까?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그가 복수를 위해 버려야 했던, 바쳐야 했던 희생물들이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것들이다. 마지막 순간 그의 눈에 담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는 찾아오게 된다.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시간이다. 복수의 그날을 위해서. 복수하는 그 순간을 위해서. 그 작은 빈틈을 찾아서.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기약의 시간들이다. 그는 살려 한다. 지금도 살아있다. 그는 살아 있는가. 그는 살았다. 살아왔다. 복수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절망은 어울리지 않는다. 갈수록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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