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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5.31 09:09

천명 "마침내 한계, 인물들이 모이기 시작하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 최원과 홍다인 사랑하기 시작하다

▲ 사진제공=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이었을 것이다. 상당부분 기술적인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긴다. 자본도 넉넉지 않다. 그러나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분량을 만들어 방송으로 내보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등장인물들을 모두 한 곳에 몰아넣으면 된다. 여러곳에서 나누어 촬영하던 것을 한 곳에서 몰아 촬영한다. 복잡하게 동선까지 계산해가며 사건을 치밀하게 구성할 필요 없이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사만으로 관계를 만들고 다시 더욱 심화시킨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인물들 사이에 감정이 첨예해지면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은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파직당하여 더 이상 아무런 관직도 없이 야인신세가 된 이정환(송종호 분)이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어느새 세자 이호(임슬옹 분)과 마주앉아 있는 장면이 바로 그 한 예일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더 이상 전처럼 자유롭게 궁을 출입할 수 없게 된 이정환은 먼저 어떻게 하명 궁으로 들어가 세자를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궁 내부에까지 사람을 심어놓고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는 김치용(전국환 분) 일파의 눈을 피해 어떻게 하면 세자를 만나 자신이 확인한 증거들에 대해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법을 강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드라마가 만든어진다.

궁의 경계는 어떠한가? 궁 내부에 김치용의 눈과 귀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런 가운데 허점은 없는가? 경을 경비하는 위사나 혹은 궁 내부의 궁인들 가운데 협력자는 없는가? 이정환이 세자를 만날 것을 경계하는 김치용의 우려와 세자를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이정환의 입장이 엇갈리며 자연스럽게 긴장이 고조된다. 최원(이동욱 분)을 의심하여 스스로 더욱 외로운 궁지로 내몰아가고 있던 세자의 절망도 자연스럽게 그와 만나게 된다. 쫓고 쫓기고, 경계하는 자와 그를 피하려는 자가 엇갈리고, 절망과 그로부터 구원해 줄 희망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과정이 생략된 무미건조한 만남 뿐. 이정환의 존재감도 그만하고 만다.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궁을 나서는 세자를 습격하려던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세자를 호종하는 무리들 가운데 자객을 숨겨놓는다. 그것을 조광조의 뜻을 계승하려는 천봉(이재용 분)과 그를 따르는 거칠(이원종 분)의 무리가 막으려 하고 있다. 한 바탕 활극이 벌어져야 한다. 중전(박지영 분)과 김치용에 의해 동원된 자객들이 세자를 죽이려 하면 천봉과 거칠이 이끄는 무리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 죽고 죽이고 다시 쫓고 쫓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들은 최원과 경원대군의 우연한 만남으로 너무나 어이없이 간단히 해결되고 만다. 남은 것은 경원대군과 최원의 딸 최랑(김유빈 분) 사이의 천진한 철없는 관계 뿐.

굳이 김치용이 최원과 홍다인 앞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최원은 죽이고 홍다인은 만일의 경우가 있으니 장홍달(이희도 분)을 염두에 두고 신병만 확보해두어도 좋을 것이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한 무리를 이끄는 인물로서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이려 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과 전혀 상관없이 흔적조차 남지지 않고 처리한다. 그러나 그러자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고 촬영 또한 지나치게 번거로워진다. 차라리 한 데 모아놓고 민도생(최필립 분)을 죽인 진범으로서, 그리고 민도생의 친구이며 그를 죽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입장으로써, 무엇보다 최원과 홍다인 사이의 로맨스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그들만 있으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드라마의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 수 있다.

장홍달이 하필 그 순간 막봉(윤기원 분)으로부터 확보한 처방전과 자술서를 들고 홍다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관계가 더해진다. 김치용의 협력자이면서 홍다인을 구하기 위해 김치용과 맞선다. 최원을 죽이려 하는 공범인 동시에 홍다인을 살리고자 하는 은인이다. 홍다인 역시 장홍달을 살리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최원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 애원한 바 있었다. 과연 김치용은 그런 장홍달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자신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장홍달이 약점을 쥐고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홍다인과 최원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이는 또다른 홍다인의 비극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언가 대단하게 수작을 부려 최원을 곤란하게 만들고 김치용 일파와의 사이에서 또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만 같던 막봉도 그래서 너무나 쉽게 장홍달에게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너무나 쉽게 장홍달은 최원이 찾아낸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굳이 최원이나 이정환이 나서서 능동적으로 무언가 해결을 위한 단서를 찾아내기 전에 모두가 보여있는 자리로 장홍달 역시 자기만의 입장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건을 대신하는 것은 마치 나레이션과 같은 인물들의 대사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일 것이다. 다른 어떤 지분 없이도 대사만 있다면 배우들은 충분히 그것을 살려 연기할 수 있다. 감정만 있으면 된다. 감정만 제대로 표현될 수 있으면 전혀 문제없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갈등하며, 화내고 웃고 울고 고민하고, 그리고 사랑에도 빠지고. 대사의 양이 늘어난다. 대화가 아니면 독백이다. 긴장은 고조되고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것을 채우는 것은 개성마저 사라진 흔해빠진 평범한 대사들일 것이다. 대사가 늘어나는 만큼 액션도 줄어든다. 많이 심심해진다.

많이도 왔다. 벌써 꺾여졌다. 지나온 시간들이 앞으로 가야할 길보다 더 멀다. 한국의 드라마제작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이미 비축된 분량은 거의 소진되었다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서둘러 늦지 않도록 일정에 쫓기며 드라마를 만들고 편집까지 마친다. 쉽게 만들어야 한다. 쉽게 만들 수 있어야 그 안에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물론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기본적인 구조가 무척 튼튼하고 안정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최소한의 개연성이 담보된 구조가 작가와 감독, 무엇보다 배우들을 자유롭게 배려한다.

어쩌면 한국드라마만의 오랜 고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고 예산에 쫓긴다. 허술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한계를 내포한 가운데 그 안에서 최선을 보여주려 한다. 한국드라마에서는 그래서 등장인물이 사랑만 한다.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과연 이것이 자신이 보고 있는 드라마인가. 그나마도 드라마가 진행되는 사이 온통 흐트러지고 어긋나 있는 채다. 당시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이래야 드라마가 재미있다. 멀리 돌아왔다. 갈 길도 멀다. 아쉽다.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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