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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3.05.16 21:25

[리뷰] 비포 미드나잇. 9년 만에 그들이 돌아왔다

비포 시리즈의 팬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각본, 출연: 에단 오크, 줄리 델피. 

 

드디어 3편이 개봉한다.

[대부]도, [반지의 제왕]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언맨3]? 아니다. 또 다시 9년 만에 돌아온 그 작품은 바로 “비포” 시리즈의 3편, [비포 미드나잇]이다. 슈퍼맨도, 아이언맨도 아닌 만인의 연인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함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뒤를 잇는 3편 [비포 미드나잇]으로 영화팬을 찾는다.

서로 다른 국적의 두 남녀가 타지에서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하루 동안의 운명적인 사랑을그린 전작들은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양산하며 사랑받아 온 시리즈다. 매력적인 두 남녀 배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스스로 각본 작업에 참여하여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이며 이국적인 풍광과 감미로운 음악이 가미된 비포 시리즈는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으며 예상 외의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이 영화 [비포 미드나잇]은 1995년 개봉한 [비포 선라이즈], 그리고 그로부터 9년 후에 개봉한 [비포 선셋]의 속편이자 아마도 최종편이 될 것임이 확실한 영화이다. 이 영화 역시 [비포 선셋] 개봉 후 9년 후를 담아냈다.

당연히 대다수 관객들은 수염 덥수룩한 귀염둥이 양키 제시(에단 호크 분)와 매력 철철 넘치는 프랑스 여인 셀린느(줄리 델피 분)의 후일담을 기대하며, 이번에는 그들이 또 어떻게 만나고, 또 어떻게 이별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의 이런 예상과는 달리 두 연인, 아니 이제는 부부의 이야기를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삶, 예술에 대한 감독과 두 배우의 철학을 담아 재치있게, 조금은 현학적인 대사로 풀어간다.
 

 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철저하게 팬들만이 즐길 수 있는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 제시가 그리스에서 여름방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 행크를 배웅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아들의 귀국을 배웅하는 제시를 보며 많은 관객들은 ‘역시나 제시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구나, 그러다가 다시 운명적으로 셀린느를 만나겠지?’ 라는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제시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들 행크에게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주며 공항 터미널에서 부자지간의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전작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영화는 유난히 호흡이 길다. 탑승 게이트에서 줄을 서다가 아들과 잠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제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뒤에 서있는 여자에게 차례를 양보하는 장면을 보라.

공항에서 나와서 차에 오르는 제시. 옆 좌석엔 셀린느가 타고 있고 뒷 좌석에선 사랑스런 쌍둥이 딸들이 잠들어 있다.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다. 역시 이 장면도 단 하나의 커트 없이 정면 롱테이크 그대로 보여진다. 아들 문제, 전처와의 문제, 미국에 가서 사는 이야기, 쌍둥이 딸들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 그리고 결혼과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두 부부는 사랑스럽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공항에서 유적지를 거쳐 식료품 가게에 들려 집까지 가는 여정을 거의 리얼 타임으로 보여준다. 이 얼마나 앙드레 바쟁적이란 말인가!

중간에 유적지를 바라보는 시점샷 외에는 단 한 장면의 카메라 워킹이나 편집없이 10여 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순전히 철저하게 계산된 대사와 두 배우의 애드립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대화를 듣는 관객은 9년 동안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갈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재미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비포 시리즈의 전작들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이해가지 않고 무척이나 재미없는 장면들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식탁에서 사랑과 남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호텔로 가는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 장면에서 보듯이 영화는 전작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소위 말하는 ‘토키워키’ 무비라는 별명을 얻게 된 전작들의 특색을 그대로 따른다. 물론 여느 관객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제시의 소설 이야기들이나 두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전작을 보지 않은 팬들만이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비포 미드나잇]은 철저하게 9년 동안 기다려온 비포 시리즈 팬들만을 위한 팬 서비스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엔 그리스로 간 사랑과 전쟁?

전편에서 셀린느와 제시는 자신들이 최초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우린 두려웠던 거야, 편지와 전화를 하면서...서로 시들어질까봐 겁이 났던 거지...”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애틋한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남녀도 그렇게 애초에 하루의 추억만을 안고 살아갔다면 평생 그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번 데이트할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서로의 일상을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다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일상으로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시들어가고 익숙해지는 게 두려웠던 그들이 이제는 부부가 됐다. 여느 부부들처럼 아이들 양육문제, 전처와의 갈등, 자신의 일과 가정, 그리고 심지어는 예전의 부정까지 문제삼으며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의 대사와 감정선에 공감은 되지만 로맨틱한 편지와 사랑고백으로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리는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 이것이 [비포 미드나잇]의 매력이 아닐까하고 위안을 삼자.
 

 
또 하나 아쉬운 점은 1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2편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풍광을 두 배우의 매력과 감미로운 음악으로 아름답게 담아냈던 것에 반해 이번 작품에서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했으나 카메라는 도시와 자연보다는 인물에 더 초점을 맞추는 노력을 들인다. 단 한 번도 프레임 인 앤 아웃이 되는 인물이 없으며 주변의 배경과 상황보다는 인물들 간의 관계나 감정에 더 치중하였다. 트로이 전쟁이나 메데아를 언급하면서 삶에 대한 은유를 드러내며 ‘여긴 그리스야’ 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차 안, 집 안, 호텔 안 등에서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과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여신 줄리 델피가 이제는 뱃살 나온 육덕진 아줌마로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지적이고 성적 매력을 발산하기는 하지만 줄리 델피의 팬이라면 조금은 실망할 듯.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라 어쩔 수 없지만 세월을 잊은 듯한 동안을 뽐내는 에단 호크와 함께 있는 모습에서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아쉬움이 조금 남긴 하지만 비포 시리즈의 팬이라면 9년 동안 기다린 보람을 이번 [비포 미드나잇]을 통해 즐겁게 만끽하시라. 일출에서 일몰, 그리고 자정까지 이어진 3부작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9년 후 [Before Daybreak]를 제작해 주기를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여사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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