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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9 07:53

최고의 사랑 "구애정의 냄새와 독고진의 손자국"

사랑은 한심하고 치사하며 찌질한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 의사와 상담하는 자리에서 독고진은 이렇게 멋있게 말한다.

"옆에 두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참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내 집으로 돌아가서는 뛰는 심장에 고통스러워하며 처절하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구애정은 보고 싶다."

그래서 결국 구애정의 집으로 찾아가 화장품을 훔쳐 바르고, 그녀의 옷에 큼지막한 손자국을 만들고...

페티시즘은 카니발리즘의 변형이다. 상대의 일부를 통해 상대의 전부를 느끼고 싶다. 상대의 일부를 소유함으로써 상대의 전부를 소유할 수 있다. 구애정의 냄새는 구애정 자신인 것이고, 그의 손자국은 그 자신인 것이다. 구애정의 냄새를 소유하고 싶고, 구애정의 옷에 자신의 흔적을 진하게 강하게 남기고 싶다.

결국 멜로물에서 착한 사람은 그저 착한 사람으로만 끝나고 마는 이유다. 윤필주(윤계상 분)도 이제까지의 자신의 페이스를 흐트리며 질투심을 드러낸다. 독고진과 구애정에 대해 고자질하러 찾아온 강세리(유인나 분) 앞에 질투심을 드러내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독고진으로 인해 울고 있는 구애정 앞에 끝까지 이기적으로 남을 수는 없었기에. 인간적으로는 참 착하고 성실한 좋은 사람이지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구애정이랑 잘 될 수 없어. 그러니까 구애정에게 잘해주고 있는 그 아무나 한의사, 그냥 냅둬!"

그렇게 멋있게 강세리 앞에 말하고 있었는데.

"난 헐리우드 슈퍼히어로 집어치우고 그냥 같은 소속사 동료나 지켜주는 정의의 독고진 할래."

그렇게 문대표 앞에서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 고장나서 제어가 안 돼. 6090 안전수치를 벗어나서 계속 뛰어. 그래서 고장난 차처럼 너를 쫓아갈 거야. 그러니까 너는 계속 도망가. 지금처럼 정신차리고."

그래서 구애정에게도 그렇게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하지. 수리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그때는 정말로 네 옆을 쌩하니 지나갈 때니까 지금은 고장나서 들이받는 나에게 받쳐서 아프지 말고 잘 피해 다녀."

바라기로는 쿨하게 매몰차게 그녀로 하여금 정떨어지게 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그만큼 독고진은 구애정을 사랑하고 있는 때문이다. 결국에는 구애정의 집까지 찾아가 남은 시간만이라도 함께 곁에 있어달라 사정하고 말 정도로.

"구애정, 나 고장이라고 했지? 나 수리하려면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너 그동안 고장난 내 옆에 있을래?"

고장났으니 잘 피해다니라 하던 사람이 이제 다시 고장났으니 그 동안만 옆에 있어 달라고 한다. 한 달도 되기 전에 방전되어 서 버릴 지 모르니 충전도 해 주면서. 구애정에 옆에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사랑하니 곁에 있어 달라 말하라는 구애정의 말에 끝까지 고장났다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 것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었다. 남은 그 사람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록. 아파하지 않도록. 그것이 남자라고. 그것이 멋이라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폼나게 모두의 앞에서 말도 하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러나 정작 죽음을 마주하고 나니 떠오르는 것은 구애정 뿐이다. 아니 구애정이 생각나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이나마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 오히려 마지막이기에 마지막 그 짧은 순간 만큼은 구애정의 곁에서 구애정과 함께 하고 싶다. 죽음이 더욱 그를 간절하게 솔직하게 만들어 주었달까? 다음이 없다. 죽고 나면 끝이다. 그에 비하면 윤필주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한심해질 수 있다는 것. 치사해질 수 있다는 것. 찌질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런 자신이 싫지 않다는 것. 통제도 안되고 통제하고 싶지도 않다.

"진짜로 미치겠네."

머리속은 그런 게 아닌데. 그러나 망가져버린 심장은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머리는 이대로 쿨하게 멋지게 돌아서라. 그러나 가슴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붙잡으라. 눈물을 흘리며. 이제까지 없던 한심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끝까지 멋있어질 수 없는 남자. 그래서 구애정은 그에게로 발길을 돌려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독고진의 바람은 통했다.

"그래, 이렇게 눈 돌아가게 멋진 차가 고장난 게 아니면 나를 왜 태운다고 했겠어?"

독고진의 사랑은 구애정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이다. 국민스타와 국민비호감. 한류스타와 3류 밑바닥을 헤매는 비인기연예인. 그런 독고진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다.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언제 마음이 돌아서 비참하게 남겨질 지 모른다. 그로 인한 대중의 반응도 두렵다. 독고진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도 불안하다. 과연 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그런데 그것을 고장이라 말해준다.

현실적인 문제도 얽힌다. 새로운 음반과 작지만 CF, 소속사 문대표가 바라고 있다. 독고진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차라리 사랑한다 말해주면 좋으련만. 사랑하니 곁에 있어달라 바람을 말해주면 거기에라도 믿고 의지하련만. 자신이 필요하다 말해주면 그렇게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으련만. 하지만 독고진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것이 독고진을 위한 것인 것도 같고. 독고진에게는 헐리우드가 어울린다.

결국 그래서 구애정을 솔직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독고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필요하다. 와달라. 그 순간 독고진의 메시지를 지우지 못한 윤필주의 선량함이, 그 순간에조차 구애정을 필요로 하는 독고진의 간절함에 밀리고 만 것이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무한히 이기적이고 그래서 이타적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떠나가는 구애정마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타가 윤필주의 이기겠지. 그러니까 윤필주는 좋은 사람이다.

아무튼 느끼는 것이 역시 강세리는 악역이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출발부터가 악역이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타산적이었을 뿐.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의 감정에 그만큼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윤필주에 대한 짝사랑을 이루기 위해 독고진과 구애정의 사이를 응원해주고, 윤필주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윤필주를 찾아가 두 사람의 관계를 고자질하고,

"아파요! 애정언니가 한 쪽에는 독고진, 한 쪽에는 윤필주를 끼고 있는 거 신경질나게 아파서 왔어요."
"질투가 왜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거 뺏기니까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점잖은 윤필주씨는 이런 것 보면서도 정말 질투가 하나도 안 나요?"
"그러면 이제 내 맘 알겠네요? 그죠. 그러면 다시는 저 야단치지 마세요. 안 그래도 힘드네."

마치 야단맞은 어린아이처럼. 질투하고 시샘하고 그래서 모함하고,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야단을 들으니까 그것이 못내 서럽고 아프다. 그녀가 악역처럼 보이는 것은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때문이지 어떤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다. 최소한 유인나가 연기하는 강세리는 그렇다. 욕심많고 샘많고 그런 자신에 솔직하지만 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의도한 바라면 유인나는 훌륭하게 강세리를 연기해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멜로의 전범이라 할 만한 구성일 것이다. 죽음을 앞둔 남자와 그런 남자를 연민과 두려움으로 지켜보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 남자는 자신이 죽은 뒤를 생각해서 여자를 밀어내려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못내 서운하고 현실이 두려워서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고, 남자가 다시 여자를 붙잡으려 했을 때 또 다른 남자는 여자의 서러운 눈물을 참지 못해 그녀의 등을 떠민다.

끝내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못한 것은 결국 이기가 이타가 되고 이타가 이기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 때문이다. 그야말로 최루성 멜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눈물나는 사랑의 이야기다. 그것이 이제껏 그리 제멋대로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던 독고진에 의해 보여지고 있기에 더욱 간절하고 충격적이다.

그냥 이대로 눈물나는 연기를 보였다면 또 눈물이나 짜는 멜로라 해 주었을 텐데. 실컷 웃고 난 뒤의 안타까운 눈물은 반전이 된다. 웃음 만큼이나 눈물은 깊고 아프다. 과연 독고진은 정의의 독고진이 될 수 있을까? 구애정은 독고진의 충전기가 될 수 있을까? 윤필주의 마음은, 그리고 강세리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모두는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야기는 점입가경 더욱 심연으로 파고들어간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그 감정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띵똥 구형규의 시선은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일까? 어린아이의 눈에는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담긴다. 윤필주를 움직인 것이 그것인지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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