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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2.19 16:20

'위대한 탄생' 왜 사람들은 김태원과 외인구단에 열광하는가?

루저의 시대, 루저의 꿈...

▲ 사진 = 위대한 탄생 홈페이지
정말 기대 이상이다. 생각 이상으로 김태원과 그가 선택한 멘티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반응들이 뜨겁다. 심지어 가장 의문이었던 손진영마저도 어느새 기대주로 각광받고 있다. 여전히 확신은 없지만 반전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반전을 일으켜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바란다. 극적인 것을 요구한다. 높은 곳에 있는 이가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고, 반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것을 꿈꾼다. 특히 사람들이 오디션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만든 어쩌면 고질병일 것이다. 무한성장과 무한소비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란 곧잘 수단이 되고 대상이 되어 때로 소외된다. 남들과 경쟁하며, 그리고 남들과 비교하며,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과연 자신이 이 사회의 주류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자기는 비주류라고. 현대사회에서 자신은 소외되어 있다고. 주인공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고. 조연조차도 아닌 엑스트라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꿈을 꾸려 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꿈을, 비천한 현실에서 화려한 이상으로 도약하는 멋진 꿈을.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만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사람들이 곧잘 대중문화 속에 자신을 이입시키며 빠져드는 이유다. 그곳은 그들의 탈출구다.

오디션이란 그런 극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출연자들이다. 그래서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이나, 모태가 되었던 영국의 <브리티시 갓 탤런트>며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역시 참가자들의 평범한 - 혹은 평범 이하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리라. 정규교육이라고는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다는 외판원 출신의 폴 포츠나, 작고 똥똥한 체구의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 없다는 수잔 보일이 그런 예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에 그토록 감동했는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꿈과 열정의 드라마에 어느새 자신을 이입했던 때문이었다.

계속된 좌절. 몇 차례나 탈락했고 그때마다 김태원의 구원을 받았다. 멀리 한국까지 와서 혼자서 객지생활을 하며 전날 저녁과 아침을 모두 라면으로 때우고 있었다. 비만인 몸과 외모로 인해 오디션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느새 서른을 앞두고 있고. 그나마 다른 멘토들의 선택을 받았던 이태권 역시 여전히 외모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나같이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자른 참가자들이다. 모자른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이름 뒤에는 물음표가 찍혀 있다. 이태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다른 멘토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이태권에 대해서조차 외모를 보고 있으면 과연 스타로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전혀 우리가 아는 스타의 모습을 한 멤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일반인 이하. 그 이하. 과연 이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다. 손진영의 노래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김태원에게 선택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이입하고 마는 것은.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최악의 절망의 상황에서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절실함을 살면서 한 번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어진 양정모 역시. 이은미마저 고기를 사주고 싶다고 했던 백청강 역시. 그들에게 김태원은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었다. 백척간두의 상황에 그들은 그렇게 기사회생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꿈을 더욱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가 그랬었다. 재능은 있지만 여러가지 제반여건으로 인해 그것을 꽃피우지 못한 한 마디로 유망주들이었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던 이들. 그들이 무인도에서의 지옥훈련을 통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가 되어 화려하게 돌아와 그들을 버린 사회에 복수한다. 지금까지도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가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김태원이 붙인 별명처럼. 어느새 사람들도 그들을 외인구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절망의 문앞에서 구제된 이들. 다른 사람들처럼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상황에 구원을 얻은 이들. 어느샌가 이입이 된다. 나도 저들처럼. 나도 그들처럼. 비주류에 속하는 현대인의 열등감이 그들에 이입하여 응원하게 된다. 마치 자기 일처럼. 저들은 곧 나다. 내가 바로 저들이다.

김태원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것도 그래서다. 어쩌면 이번 위대한 탄생의 가장 큰 수혜자는 김태원이 아닐까. 그 자신이 원래는 루저였다. 패배자였고 소외되었던 이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이었던 그가 예능을 통해 화려하게 대중 앞에 나서게 되었듯, 어쩌면 잊혀졌을 참가자들을 손을 내밀어 이끌어주었다.

김태원이 내민 손에서도 아마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를 함께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멘티들이 흘리는 눈물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다. 이태권은 확실하지만 나머지 멘티들은 글쎄... 다른 멘토들이 그들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이 일어나 멋진 드라마가 완성되기를 바라는 이유. 지금은 루저지만 그들이 마침내 껍질을 벗고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나 또한 좌절과 절망을 겪어보았기에.

<위대한 탄생> 제작진 입장에서 김태원의 존재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 있어 필수라 할 수 있는 드라마가 이렇게 아예 그룹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마치 미리 짜맞춘 듯 원래 하나였던 것만 같은 이미지들이다. 김태원 이하 양정모, 손진영, 백청강, 이태권. 루저들. 이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김태원이라는 멘토를 중심으로 뭉쳤다. 마치 반전을 꾀하려는 듯이. 마치 이 사회에 반란을 꾀하려는 것처럼. 비주류의 반란을.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과연 저들은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줄까? 저들이 보여줄 반전과 반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설사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꿈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과연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모두가 기대하고 지켜보려 하고 있다.

꿈을 꾼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오리가 어느날 백조가 되어 화려하게 비상하는 꿈을. 고철더미 속에서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꿈을. 그 꿈이 그곳에 있다. 김태원과 외인구단. 사람들은 그 꿈을 꾼다. 꿈을 기대한다.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희망으로. 마치 잊고 있던 열정을 떠올리듯이. 미처 생각지 못한 꿈을 다시 꾸는 것처럼.

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행복하게끔 해주기 위해서다. 연예인이란 사람들에게 꿈과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예능이란 바로 그를 위해 존재한다. <위대한 탄생>의 위대한 탄생일 것이다. 꿈이 있다. 행복이 있다. 드라마가 있다. 위대한 탄생인 이유다.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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