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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5.05 13:31

불후의 명곡2 "우리들의 이문세,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놓아버린 JK김동욱과 소리 자체가 되어버린 문명진, 최고의 무대를 보다

▲ 사진='불후의 명곡2'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문세에 대한 첫기억은 가수가 아닌 MC로서였다. 당시 평일저녁 어린이시간대에 KBS에서 방송되던 <달려라 중계차>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여성 MC와 함께 진행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손가락 두 개를 세워 경례를 붙이고 하던 것이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얼마 안 있어 다른 방송사에서 <영11>이라는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수였다니.

아니 정확히는 필자가 보았던 당시에는 MC가 맞았을 것이다. 데뷔는 라디오 DJ로 데뷔했다. 1978년 당시 CBS의 라디오프로그램 <세븐틴>의 DJ로 처음 방송에 데뷔했고, 공중파로 진출하고서도 KBS의 심야라디오프로그램의 주력이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를 보았으며, 얄궂게도 MBC로 옮기고 나서도 같은 시간대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가수로 데뷔한 것은 오히려 MC데뷔보다 늦은 1983년에서였다. 어릴 적 보았던 바로 그 형이 원래는 가수였다는 사실에 어린마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필자에게 이문세는 무척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어린이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다감한 MC'형'이었고, 조금 나이를 먹어서는 이문세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곧잘 밤을 지새고 있었다. 조금은 개구지고, 가끔은 엉뚱하고, 전설에 어울리지 않는 허당의 모습들까지 그래서 필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원래 이문세란 그런 사람이었다.

전설이라고 무게잡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고 떠들고 어울려 놀면서 솔직하게 감탄하고 즐기는 모습이 어울린다. 그래서 제목도 '우리들의 이문세'가 아니었을까. 필자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많은 대중을 위한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의 노래와 그의 목소리와 그의 웃음과 함께 해 온 지난 시간들일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많은 시간들을 이문세와 함께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뭐랄까 스피카가 보여준 '깊은 밤을 날아서'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묵직하다. 힘이 있다. 그래서 아쉬웠다. 조금만 더 힘을 빼고 가볍게 즐기며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신인이었을 것이다. 대중에 '스피카'라는 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진 강점을 어필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쩐지 경쾌함 가운데 느껴지는 비장함이 전장에 선 병사들의 그것처럼도 느껴졌다. 실력있는 팀이다. 그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그들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무대를 기대해 본다.

바다의 '옛사랑'은 타겟을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실패하고 있었을 것이다. 노래가사에도 나온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버려두겠노라고. 생각난 것은 역시 생각난대로 내버려두겠노라고. 그립다고 새삼 눈물이 날 일도, 생각난다고 이제와서 가슴이 아플 일도 없는 세월에 닳고 닳아 무뎌지고 무뎌진 메마른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검버섯핀 노인의 마른 눈가에조차 촉촉히 젖어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어머니'라는 단어겠지만 말이다.

'옛사랑'이 아니었다. '지금의 사랑'이었다. '지금도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립고, 그래서 보고싶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노래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바다는 자신의 감정에 취해 있었다.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넋두리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들려주고 싶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슬프지만 거기까지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무대가 갖는 냉혹함일 것이다. 바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김태우의 '솔로예찬'은 무대에서 논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노래란 아트지만, 공연은 엔터테인먼트다. 공연이란 즐기는 것이다. 무엇으로 관객을 즐겁게 할 것인가?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관객 자신이 공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 관객을 무대의 중심에 세운다. 공연의 사이에 긴장을 잊은 여백과 그 여백으로 인한 긴장이 더 관객을 집중케 하고 무대가 주는 즐거움에 솔직해지도록 만든다. 함께 논다. 함께 즐긴다. 공연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가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조금 지루한듯 싶었던 출발은 그렇게 버라이어티하게 흥겹게 마무리되고 만다.

그것은 로큰롤이었을까? 원곡이 갖는 흥겨움과는 별개로 신스팝의 그것과 구분되는 브라스와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는 보다 근원의 원시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 흑인음악 특유의 끈적함과 흥겨운 리듬이 어떤 그리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정의 말을 듣는 순간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의 R&B와는 전혀 다른 보다 원초적인 경쾌함의 리듬 앤 블루스라는 장르가 아주오래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백인을 춤추게 하고자 만든 흑인들의 음악이었다. 바로 지금의 흥겨움에 모든 것 맡기고 즐기는. 무대위에서 JK김동욱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음악의 흥겨움에 취해, 음악의 기쁨에 취해, 우울한 가사마저도 얼마든지 즐겁게 춤출 수 있다. 어떻게 보면 JK김동욱의 <불후의 명곡2> 출연은 치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얄미울 정도다.

문명진이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들으면서 문득 소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그 쏟아지는 소리를 바라보며 관조하는 느낌이라면, 문명진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그 소리 자체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격정이 지나고 그것을 다시 관조하며 되새김하는 것이 이문세의 원곡이었다면 문명진의 노래는 바로 그 순간의 격정 자체였던 것이다. 어두웠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위로하면서,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했다. R&B라기보다는 차라리 국악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을 것이다. 저 먼 하늘에 고백하는 듯한, 저 깊은 내면에 전하는 듯한, 영혼에 아로새겨진 모든 시간과 기억들을, 흔적들을 한순간에 모두 토해내는 듯하다. 그런 걸 아마 소울이라 흔히들 말하고 있을 것이다.

소리 자체가 되어 있었다.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가수 자신이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쏟아지는 달빛처럼. 흩날리는 꽃잎처럼. 이런 가수가 아직까지 무명이었다. 차라리 그것은 죄악감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껏 이런 가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게으름과 무지를 탓하며. 지금까지 가수가 아니었다는 그의 아픈 고백이 자신의 죄인 것만 같다. 문명진의 '가로수 그늘 아래'였다. 한 바탕의 한풀이처럼. 살풀이처럼. 소리가 흐른다.

마지막 순서는 경연에 있어 가장 유리한 조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전의 무대는 조금씩 기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 순간의 감정 또한 기억과 함께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감동도 생생한 것이 바로 마지막 무대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전무대가 너무 훌륭했다면 마지막 무대는 또한 빛이 바라고 만다. 하필 바로 전순서가 문명진이었고, 바로 그 전순서가 JK김동욱이었으며, 그 전에도 김태우는 무대와 관객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었다. 그에 비해 포맨의 무대도 역시 훌륭했지만 '조조할인'이라는 노래를 제대로 소화해 부르기에는 조금은 부조화가 아니었을까. 즐겁고 신났지만 아련한 기억의 느낌은 없었다. 첫사랑의 추억을 말하기에는 포맨의 목소리가 너무 젊고 활기차다.

지난주의 아쉬움은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이문세를 따라 필자 자신의 입가에도 웃음이 그려진다. 젊은 날의 이문세도 이러했다. 아니 JK김동욱은 젊다기에는 원숙하다. 노래는 세월을 따라간다.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이 무대로 녹아든다. 그동안의 아픔과 고독과 열망이, 그들이 겪어온 모든 것들이 무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 동정해서가 아니다. 그 아픔들이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기에 대중은 그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아픔을 이해하고 느끼며 - 아니 자기것으로 여기며 무대에 빠져든다. JK김동욱의 음악인으로서의 여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 갈증이 제대로 무대를 통해 표출된다. 빨려들고 만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조차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관조하듯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다른 기교를 쓰지 않더라도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문세도 벌써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필자가 기억하는 이문세는 이보다 한참은 더 젊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문세는 젊을 것이다. 노래는 성장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대중의 바람은 그를 늙게 하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는 영원하지 않을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문세와 함께해서. 그 이문세를 전설의 자리가 아닌 MC의 옆에, 메인MC인 신동엽과 함께 진행을 맡도록 한 것은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는 가수이기도 했지만 MC이기도 했다. DJ이기도 했다. 그 또한 전설 이문세를 이루는 부분들일 것이다. 예우란 이렇게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다. 짓궂은 농담과 스스럼업는 장난과 그리고 그리운 이야기들과 함께. 누구보다 진지하게 후배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는 이문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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