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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5.02 09:14

내 연애의 모든 것 "로맨스의 정석, 사랑할 수 없는 이유들에 대해"

사랑을 위해 김수영은 정치인이 되고, 정치인이 되고자 노민영은 사랑을 외면하다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연애란 근대의 산물이었다. 유럽의 근대가 개인을 발견하면서 이성의 만남에 있어 그 주체 역시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신들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전근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했었다.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결혼도 했다가 사랑이 식어 헤어지는 일들이 과거에도 적잖이 있어왔었다. 다만 차이라면 그들은 누군가의 딸이었고, 어느 집안의 후손이었으며,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 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

이몽룡과 춘향이도 사랑을 했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도 서로 사랑을 했었다. 하지만 로미오이기 이전에 몽테뉴여야 했고, 줄리엣이라는 이름에 앞서 카플릿이라는 이름이 불리고 있었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응원해주던 로렌스 신분조차도 그들의 관계를 이용해 몽테뉴와 카플릿의 오랜 갈등을 해결해보려는 의도를 가졌을 정도였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야 했고, 아버지의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비극이거나 아니면 판타지이거나.

사실 근대 이후의 연애물이라는 것도 근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롯한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여건과 환경들이 서로 부대끼며 충돌한다. 개인은 사랑을 하는데 주어진 조건들이 그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다만 차이는 있다. 과거의 연인들은 그같은 서로의 앞에 놓여진 조건들에 짓눌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거나 우연한 기적을 기대해야 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연인들은 단지 자신들의 사랑에만 충실할 뿐이다. 어떤 장애물도 자신들의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신분의 벽도, 계급의 구분도, 재산의 차이도,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도, 서로의 신념이나 가치관조차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한 개인으로서 오롯이 사랑을 하고 그 사랑에 충실하고자 한다.

하지만 하필 그 소재가 정치라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동안 수도없이 정치에 실망하고 배신당해온 대중이었다. 대중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혐오는 이제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차피 정치란 그런 것. 그 놈이 그 놈. 어떻게 해도 바뀌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차라리 판타지라면 좋다. 거짓으로라도 대중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노민영(이민정 분)과 김수영(신하균 분)의 사랑을 통해 무언가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꿈을 꾸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대물>은 성공하고 <프레지던트>는 실패했다.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정치이기에 지나칠 정도로 정치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결과 기대할 수 있는 판타지가 아닌 보기조차 싫은 현실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일까?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드라마는 로맨스의 문법에 매우 충실해 있다. 현실이 모순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정당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다. 아니 이념에 대해서는 아직이다. 역시 작가 자신도 현실정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인지 차라리 NGO에 가까운 노민영의 소수당인 녹색정의당을 제외하고 김수영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한 번 설명한 적이 없다. 대한국당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민우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할 정도로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적 방향의 차이로 김수영과 노민영이 사로 다투거나 하는 장면도 거의 그려지고 있지 않다. 단지 당이 다르고, 그 당이 여당과 야당으로 갈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로 당이 다르다는 것이 서로를 원수로 여겨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자칫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면 더구나 소수당인 녹색정의당은 당의 와해를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가족이 있다. 언니의 시동생이고 조카의 삼촌이다. 충분히 가족이다. 한때 첫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가족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하고 나선다. 가족을 저버릴 수 없기에 송준하(박희순 분)의 반대는 노민영을 흔들어 버린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녹색정의당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고동숙(김정난 분)의 반대에도 무심할 수 없다. 자신은 노민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과 당대표라는 이름이 끊임없이 자신을 구속한다. 김수영에게는 소속정당인 대한국당의 대표 고대룡(천호진 분)의 협박이 현실로써 다가오게 된다. 사랑을 이루려면 두 사람 모두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과 사랑해서는 안되는 숙명이 서로 만나 충돌한다. 노민영은 도망치고 김수영은 적극적으로 부딪히려 한다. 사랑이 어렵다.

서로 사랑하려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노민영과 김수영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은 노민영이고 또한 김수영이다. 녹색정의당의 대표이고 대한국당의 국회의원이다. 송준하는 자신의 가족이다. 고대룡으로부터 노민영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사랑은 어렵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 그런 장애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자체로써 드라마가 되어준다. 그 과정이 조금만 더 유쾌하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러나 너무 디테일한 것도 문제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고 마는 것이다. 역시 이 부분에서 보다 대중이 꿈꾸며 볼 수 있는 현실을 배제한 철저한 판타지로써 묘사했었다면 그것으로나마 기대를 가져볼 수 있겠다.

어린 소년들이다. 어린 소녀들이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리게만 보인다. 그동안 어쩌면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못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여전히 서로에게 낯설다. 현실의 장애들이 그들을 무릎꿇게 만들고 절망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그래도 사랑을 한다. 서로 사랑을 하기에. 그 순수가 드라마가 된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자체가 순수이며 곧 드라마일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순수한 감정이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곧 로맨스인 것이다.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소년소녀들이다. 나이의 많고적음과 상관없이 순수 그 자체로써 그들은 하나같이 소년이고 소녀인 것이다. 사랑에 진실로 빠지고 나면 모두는 소년이 되고 소녀가 된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자면 필자부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울컥 치미는 것을 느끼고 만다.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개발하기보다 악수를 어떻게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연구하고 연습한다. 무엇을 얼마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제대로 하고 있는가보다 얼굴 한 번 비추고 인사 한 번 다니는 것이 더 의미를 갖는다. 첨예하게 논쟁하며 정책으로 대결해야 하는데 그저 인상만으로 섣부르게 판단하고 감정으로 부딪히고 말 뿐이다. 그것이 실제 현실이라는 것이 필자를 더 화나게 만든다. 노민영과 김수영의 사랑은 그런 현실에 대해 어떤 대안과 메시지를 전해주게 될까?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기대도 가져본다. 반등은 그때부터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은 결코 드라마가 즐겁지 않다.

그저 개인과 개인이 만나서 사랑하는 것 뿐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 좋아해서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서로가 놓인 조건이 다르고 서로의 처지와 입장이 다르다. 사랑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을 해야 한다. 모순과 갈등은 드라마의 첫째 전제다. 답답함을 풀 수 있는 장치가 선행되면 좋다. 사랑스러운 만큼 서로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현실이 답답한 실제의 현실이라는 것이 더 안타깝다. 과연 그들은 사랑해도 좋은 것일까?

보수언론사 사주의 딸이면서 기자이기도 한 안희선의 캐릭터가 맛깔나다. 그야말로 소녀같다. 솔직하고 변화무쌍하다. 세상에 거리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무모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겁난다고 그런 식으로 무서워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대하는 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불쾌할 수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나름의 못된 꾀는 그저 치기어린 장난처럼 보인다. 장난치듯 짝사랑을 포기해버릴까 말하는 모습은 해맑기조차 하다. 너무 감추는 것이 없으니 드러내보이는 악의조차도 통쾌할 정도로 후련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게를 잡는 송준하와 정확하게 대비를 이루며 균형을 맞춘다. 이성적이지만 감정적인 김수영과 감성적이지만 이성적인 노민영도 절묘한 파트너를 이룬다. 구도가 좋다. 캐릭터간의 관계가 절로 흥미를 자아낸다.

드라마는 제법 잘 만들어져 있다. 로맨스의 정석도 훌륭히 잘 지키고 있고, 정치에 대한 묘사도 썩 디테일하게 제대로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해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정치가 재미있어야 한다. 정치가 핵심소재이고 중요한 배경이 되는데 그것부터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잘 보지 않게 된다. 필자는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는 즐거워야 한다. 아마 지적하자면 그것 한 가지 우선해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김수영은 노민영을 위해 비로소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가지려 한다. 노민영은 김수영마저 포기해가며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쉽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맨스가 아닐 것이다. 항상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다시 새로운 고비를 맞이한다. 어렵다. 재미있는 이유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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