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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8 07:31

내게 거짓말을 해봐 "현기준은 확실히 멜로의 주인공이다."

우유부단은 멜로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설마 이것이었던가?

"왜 매번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항상 형을 좋아하는 것일까?"

분명 말했었다. 현재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열쇠를 현상희(성준 분)이 쥐고 있을 지 모른다고. 워낙 현기준(강지환 분)이나 공아정(윤은혜 분)이나 멜로물의 주인공치고는 너무나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들인 탓에 중간에서 급물살을 타는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줄 존재로써 누군가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그것을 설마 오윤주(조윤희 분)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어떤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상희도 공아정을 좋아한다?

하기는 현재 드라마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다름아닌 현기준과 현상희의 고모인 현명진 회장(오미희 분)이다. 그리고 그런 현명진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여자를 사이에 두고 현기준과 현상희 두 형제가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좋게 보았고 미안해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끝내 오윤주를 거부했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괜히 공아정을 끌어들여 오윤주를 포기시키려다 일만 복잡하게 꼬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명진 회장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저 현기준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에 불과하던 오윤주가 다시금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현기준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현기준에게서 확인한 공아정도 현기준을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를 흘리며 오해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처럼. 오윤주가 현상희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 서로에 대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는 현기준과 공아정 두 사람의 감정 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저것 꼬이는 것이 많아 좋아하는 감정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은 사이인데.

공아정도 아니고,

"아정아!"

그렇게 오윤주로 인해 상처입고 틀어져 있으면서도 그 격의없이 다정한 한 마디에 이애 공아정의 마음은 더없이 흔들리고 만다. 짐짓 아무 관심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현기준이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아정아!' 동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 돌려보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조차 오윤주를 매몰차게 포기시킬 수 없는 현기준의 다정함은 공아정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배려가 오히려 상처가 된다고! 책임질 수 없는 배려는 하지 마! 너는 최선이겠지만 너한테만 최선이야. 확실하게 하라구!"

현기준의 친구이기도 한 박지윤 매니저(박지윤 분)의 말이 정답이다. 오윤주도 말하고 있다.

"내 마음 정리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어떻게 정리가 돼? 영원히 정리가 안 되면 그때도 기다려줄래? 공아정씨는 기다려 준대? 오빠가 지금 얼마나 비겁한 지 알아?"

그래서 공아정도 현기준에게 좋아한다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나를 좋아하면 나만 좋아해주면 안 되요?"

물론 멜로물에서 우유부단은 멜로물이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우유부단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멜로물 역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쪽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한 이끌림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야 말로 있는대로 이야기를 꼬고 비틀어 몇 달 동안이나 공중파를 통해 그들의 오해와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지켜보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

노래 가사에도 있다. 사랑보다 더 슬픈 것이 정이다. 허영만은 자신의 만화 "타짜"에서 사랑보다 의리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랑보다 어쩌면 더 강한 것들이. 혹은 사랑과 버금가는 그런 감정들이 다정함을 무정함으로 바꾼다. 다정한 배려가 잔인한 상처가 된다. 단지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것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상처를 줄 뿐이라고.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임에도 공아정은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린다. 현기준 역시 그녀를 상처입히고 자신도 상처입는다. 상처를 줄 수 없다면서도 오윤주 역시 상처를 입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서툰 모습이 바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겠지만.

과연 현기준의 다정함으로 인해 오윤주가 끊어버리지 못한 미련과 상처가 두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까? 분명한 것은 아직 방송회수는 적잖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그 모든 방송분량이 끝나는 순간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어려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윤주 또한 거기에 한 몫 하고 있을 테고. 현기준과 공아정이 서로에 대해 더욱 솔직하고 적극적이 될 수록 주위의 훼방 또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멜로의 숙명이다. 우유부단이 그렇게 멜로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현기준과 공아정의 사이도 그렇게 꼬이더니만 공아정과 유소란(홍수현 분)과의 관계도 만만치 않다. 확실히 유소란의 심리는 미묘한 데가 있다. 그녀보다 못할 때만이 공아정은 그녀의 친구가 도니다. 자신보다 더 나을 때 공아정은 질투의 대상이고 증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산 처지에 놓였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다감하게 공아정을 대할 수 있다. 그것도 유소란 그녀만의 공아정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을까? 그녀의 공아정에 대한 컴플렉스였을 것이다. 항상 일상에서조차 그녀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그런 유소란의 정말 오랜만의 호의마저 결국 남편 천재범(류승수 분)으로 인해 틀어지고 만다. 어쩌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데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단지 남들에 보이기 위한 악세사리는 아니었을까. 바람을 피우더라도 공아정에게만은 들키지 말아 달라. 바람을 피우고 부부 사이가 원만치 않아도 공아정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상관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천재범에게도 상처가 된다.

과연 천재번 그는 공아정에 대한 호감으로 공아정에게 접근했던 것일까? 아니면 유소란이 그랬던 것처럼 공아정을 통해 복수하고 싶었던 것일까? 곤란한 것은 그래도 친구라 여기고 화해하기를 바라는 공아정 뿐. 사람과 사람의 사이란 당사자의 감정보다 주위와의 관계로 인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현기준과 공아정의 관계가 그러하듯. 공아정과 유소란의 관계가 그러하듯.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상처는 깊어진다. 유소란이 단지 공아정만을 의식해서 천재범과 결혼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참 오랜만에 보는 찌질한 캐릭터였다. 자기 나름의 정의를 위해 주위에 상처를 입히면서도 꿋꿋한 에고라니. 말 그대로 비겁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나쁜 남자이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도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윤주를 상처입히고 공아정에게도 상처를 준다. 차라리 이미 결정된 일이라면 자기가 모든 비난을 듣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으면. 그게 안 되니까 바로 멜로가 되는 것일 테지만. 현기준도 답답하고, 그런 현기준을 잡기 위해 질척하게 구는 오윤주도 답답하고. 괜히 휘둘리는 공아정은 애처롭다. 그런 공아정과 현기준을 보는 현상희는 안타깝다. 코미디라기에는 너무 무겁다.

제대로 멜로가 아닌가. 초반의 가볍던 분위기가 점차 진심이 드러나며 한없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적절히 헤프닝을 통해 지나치게 가라앉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 드라마가 갖는 미덕일 것이다. 하필 거기서 첸회장을 만날 줄이야. 갑작스런 돌발상황이 긴장감을 주면서도 그에 대처하는 등장인물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드러나게 되는 서로에 대한 진심과 진실. 그러니까 그런 심각한 상황에, "아정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일 테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드라마가 있고 뒤로 갈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드라마가 있을 때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후자에 속하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갈수록 재미있어진다. 진지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확실하게 진지해진다.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역시. 작가(김예리 극본)에게 감탄하며 보게 된다.

과연 현상희의 공아정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드러나게 될까? 오윤주는 어디까지 개입하게 될까? 유소란과 공아정의 관계는? 유소란과 천재범의 부부사이는? 무엇보다 공아정과 현기준은? 점입가경.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시간을 잊으며 보게 된다. 재미있다. 최고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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