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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4.16 09:23

직장의 신 "삶은 투쟁이고 직장은 전장이다. 정주리 전사가 되다"

매일을 자신을 위해,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싸우는 수많은 월급쟁이들을 위해

▲ 사진제공=KBS미디어, MI In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삶이란 투쟁이다. 살면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갓난아기조차 젖을 먹기 위해서는 울기라도 해야 한다. 엄마가 오지 않으면 아이가 직접 엄마를 찾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주위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고, 다시 뛰기 시작하고, 말을 배우고, 말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상의 몸짓들조차 치열한 투쟁의 결과이고 처절한 생존의 증거다.

그저 쉬우라고 월급쟁이라 말을 하지만 그 또한 치열하고 처절한 생존의 전장일 것이다. 당장 필요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회사에 자기의 자리란 없을 것이다. 해고될지도 모르고, 해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많은 급여와 더 큰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는 더 높은 성취를 누릴 수 있는 기회로부터 배제되고 말 것이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제와 같다면 오늘은 그만큼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남들 만큼은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금의 위치나마 지킬 수 있다.

피곤한 몸으로 회사에 남아 아직 남은 일들을 마무리짓고, 그래도 부족하면 집에까지 일을 가지고 가서 책임지고 완성짓는다.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몸으로도 아침이면 일어나 분주하게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고 직장으로 향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기 자리에 도착해 주어진 자기 일을 시작한다. 매일매일이 반복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를 위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서. 그래서 아마 요즘도 산업전사(産業戰士)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고 있는 것일 게다.

더구나 비정규직이란 그런 전장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일 것이다. 칼날위를 걷는다. 한 발만 자칫 잘못 내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끝이다. 한가닥 생존의 줄을 거머쥐기 위해 그들은 더 치열하고 가혹한 조건에서 자신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바로 해고되어 버릴 수 있고, 잠시의 방심으로 재계약에 실패할 수도 있다. 정규직으로의 길은 멀기만 한데 매순간순간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된 시간들이 이어진다. 멋을 부리기보다는 보다 싸움에 유리한 복장이 그들에게는 어울린다. 금빛나(전혜빈 분)의 하이힐과 정주리(정유미 분)의 운동화는 그렇게 대비된다. 출근하는 대중교통에서도 비정규직 정주리는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차피 아버지가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은행의 은행장이다. 회사와도 중요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 회사도 오래 다닐 생각이 없다. 결혼하고 나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다. 부모의 돈으로 장만한 차로 느긋하게 출근하며, 출근을 앞두고서도 여유롭게 꾸미고 멋을 부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금빛나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월급쟁이들의 치열함이란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공토스러운 전장이었을 것이다. 금빛나의 손을 붙잡고 지하철에 오르는 정주리의 모습은 차라리 여전사의 그것과도 같다. 이제 그녀도 생존하는 법을 알아간다. 금빛나의 잘못임에도 해고당하는 것은 비정규직인 정주리 자신이다. 모를 수 없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기 위해 지리한 협상을 벌인다. 몇 번 쓰지도 않을 러시아어를 굳이 배워 자격증까지 따고,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그곳을 비집고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다. 전쟁이다. 난항에 빠진 협상을 타개하고자 나선 미스김(김혜수 분)의 모습은 그래서 차라리 전장에 나선 전사의 그것과도 같았다. 조근조근 이치를 따지고 논리를 헤아려 대화로써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기세를 높여 상대를 짓누르고 윽박질러 계약을 강요한다. 강한 자가 승리한다. 승리한 자가 강하다. 장규직(오지호 분)이 회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러시아어 자격증을 땄듯 미스김 또한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웠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미스김만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에 모두가 허둥대면서도 하나가 되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동안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며 때로는 경멸하던 모든 감정들이 이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회사를 위해 계약을 성공시켜야 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계약은 차질없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 순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낸다. 그런 수많은 월급쟁이들이 있기에 수많은 기업들이, 그리고 이 사회가, 이 사회의 경제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다. 그들은 세포이며 혈관에 흐르는 혈액이다. 금빛나의 화려한 차림보다 정주리의 허술함이 그래서 그 순간 더 빛나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정한(이희준 분)과 장규직의 대비는 의도적인 것일 게다. 장규직은 누구보다 상승욕이 강하다. 현시욕도 강하다. 한 마디로 야심이 크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한다. 더 대단한 자리까지 스스로 오르고자 한다. 무장하는 그런 욕심이 없다. 장규직의 매몰차기까지 한 단호함과 무정한의 무른 배려가 그래서 대조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조차 무정한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한 발 더 앞서기 위해 장규직은 잠시도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친구다. 그들은 똑같이 비정규직인 미스김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 그 순간에조차 무정한은 장규직과 경쟁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고 만다. 무정한 나름의 생존법이었을까? 장규직이 있는가 하면 어디에나 무정한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사랑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일 게다. 예정되지 않은 우연이 예정된 필연을 만들어낸다. 전혀 이상형이 아니다. 도저히 인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싫다. 거부감마저 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면 상대에게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치며 부정하려 애써 보아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들로 확정되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의 함정이 그래서 운명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거부할 수 없이, 운명처럼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야 말로 가장 오래고 가장 흔한 소재이고 장르일 것이다.

하필 정규직이다. 하필 계약직이다.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정규직의 정점에 있다. 회사를 위해,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매순간을 잠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투자하고 헌신한다. 미스김 또한 계약직으로써 살아남기 위해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이 한 직장에서 만났다. 우연히 만났고 부딪혔고 오해했고 갈등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다. 아직까지는 장규직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다. 그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두 전사가 서로를 마주보고 달려가고 있다.

정주리의 마음이 다시 무정한에게로 옮겨간다. 그러나 무정한은 이름처럼 잔인하도록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는 무심하다. 자신의 감정에조차 그는 무정하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있어 특별하지 않다는 뜻과 같다. 모두가 무시하고 차별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무정한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겠지만, 무정한의 친절은 심지어 자신과 같은 대상에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장규직에게까지 베풀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무정한에 비하면 경멸이라는 감정이나마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규직 쪽이 더 친절하다.

이번회차는 정주리가 주인공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내세울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정주리지만 그녀는 이미 전사였다. 오히려 비정규직이기에 생존을 위해 더욱 자신을 내몰아야 하는 전사가 되어 있었다. 살기 위해 싸운다.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을 싸워나간다. 허술하지만 그런 그녀가 강하고 아름답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 체념하거나 만족하고 안주하기보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목표를 가지고 매순간을 최선을 다한다. 비록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지만 회사가 자기가 평생을 일할 직장이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약없는 최선을 매순간 다하려 한다. 어눌하기까지 한 순수가 그래서 더 돋보인다.

부장 황갑득(김응수 분)은 리더였다. 때로 정주리가 비정규직이라고 더 매몰차게 가혹하게 대하는 속물적인 모습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같은 비정규직임에도 그는 미스김의 능력을 누구보다 높이 인정하고 또 존중하고 있다. 냉정한 듯 보이면서도 결국 정주리가 팀의 일원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녀를 인정하는 또다른 일면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홀대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얼마나 팀에 도움이 되고 기여를 하는가. 얼마나 자기 몫을 하고 있는가. 언제든지 얼마든지 그는 정주리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의외로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미스김의 과거가 조금씩 밝혀지려 하고 있다. 조각난 파편들이 마치 퍼즐처럼 조금씩 그녀의 모습을 그러내고 있다. 나레이션처럼 어째서 그녀는 지금과 같은 계약직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어째서 그녀는 벽을 두르고 갑옷으로 무장한 채 거리를 두고 세상을 대하는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장르는 로맨틱코미디지만 다루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로맨스는 꿈이지만 그들이 서있는 직장은 현실의 전장이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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