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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지난 4년의 웃음과 감동, 예정된 이별을 향해"

도전과 꿈, 희망, 일상의 공감과 감동을 들려주던 4년의 시간을 기억하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남자의 자격이란 도전이다. 꿈이다. 희망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상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문득 돌아보게 되는 자신의 거울과도 같았다. 언제나 곁에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혹은 일부러 외면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아마 네번째 미션이었을 것이다. 세번째 미션인 '해병대'편은 많이 실망이었다. 고작 이런 정도밖에 안되는 구나. 너무나 흔한 소재였고 진부할 정도로 익숙한 구성이며 전개였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볼만한 <남자의 자격>만의 개성을 드러내기는 무리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주 '육아편'이 방송되었다.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그들만의 미학이 완성되어가는 기점이었다.

마치 어느 영화에서처럼 일곱명의 남자에게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아이들을 보살피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당황스럽다. 아이란 무척이나 사랑스럽지만 그러면서도 특히 많은 남자들에게 있어 낯설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고작 아이돌보기라 하겠지만 쉽지 않기에 허둥대며 곤란한 모습들을 보이고 만다. 애써 일부러라도 아이들이 좋다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즐겁고 보람되다는 속에 없는 말을 꾸며내지 않는다. 아이라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보통 남자들의 생생한 모습이 방송으로 보여진다. 웃을 수밖에 없다.

하기는 원래 <남자의 자격>이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전성기에도 예능프로그램치고 그다지 웃음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능프로그램으로써 웃음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항상 직면해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자격>이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남자의 자격>만의 웃음 이전의 웃음이라는 공감의 코드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금연편'에서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장면들로 인해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인데. 아이는 여자 혼자 낳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들 역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아이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더구나 예능프로그램인데 그렇게 싫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때로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웃는다. 바로 자신의 모습일 테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이고, 아버지의 모습이며,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이다. 남편이기도 하고 주위의 아는 누군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주어진 미션이기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그런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웃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웃음들이 있다.

대부분의 미션들이 그런 미션들이었다. 꽃중년도 되고 싶고, 식스팩도 가져보고 싶고, 남다른 취미도 가져보았으면 좋겠고, 자격증도 하나쯤 따보았으면 좋겠고, 대학시절의 낭만과 막 사회로 나와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을 무렵의 어설픈 꿈들과 땀이 갖는 소중한 가치들. 어느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더 어린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들려주기도 한다. 밴드의 꿈도 이루어 보고, 아이돌에 열광도 해보며,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지키고, 또 아내를 위해 선물도 마련해 본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집을 고치고 꾸미는 일도 해본다. 어쩌면 마라톤이나 철인삼종처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남자의 자격>을 보고 나면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아진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결코 적은 나이들이 아니다. 시작할 당시에도 벌써 평균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새롭게 도전을 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나이일 것이다. 스스로와 타협하며 그런 자신에 익숙해져가는 나이이기도 할 것이다. 20대의 도전과 30대의 도전은 다르다. 40대의 도전은 또 다르다. 체력이 다르고 지켜야 할 것들이 다르다. 이미 자기만의 일이 있고 생활이 있다. 하필 미션마다 하기 싫은 티를 전혀 숨기지 않는 이경규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닌 이윤석과 김태원의 존재는 그래서 전제가 되어준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 만큼만 즐긴다. 이윤석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김태원도 지리산을 오른다. 어쩌면 자신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는 감동만큼 자신도 직접 그것을 느껴보고 싶다.

남자들만이 아니다. 중년의 아저씨들만이 아니다. 보다 젊은 세대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기성세대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여성들 역시 자신들은 미처 알지 못하는 남자들만의 날 것의 모습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한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 최전성기에는 물론 주시청자층은 장년 이성의 남성들이었지만 여성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는 했었다. 꾸미지 않은 남자의 모습이란, 그들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연령 다른 성별에게 있어 흥미의 대상일 것이므로. '남자'라고 하는 자체가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요소였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쉬운 장면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을 궤도로 올려놓았던 원래의 신원호PD가 자리를 옮기면서 두 번에 걸쳐 PD와 멤버들이 바뀌는 가운데 원래의 <남자의 자격>의 취지는 어느새 잔뜩 일그러지고 흩어져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남자'들만의 미션을 강조하지만 심지어 남성들 자신들부터 그로부터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케 만들던 이전의 방식들과는 달리 단지 나열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어쩌면 더 재미있을수도 있지만 전과는 달리 굳이 방송을 보며 그와 같이 하고 싶다는 충동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한다.

안좋은 일로 중간에 하차해야만 했던 김성민 역시 <남자의 자격>에는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크나큰 악재였을 것이다. 모두가 진지하게 미션에 임하는 가운데 가장 앞장서서 분위기를 흐트리며 활력을 불어넣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가장 최전방에서 시청자를 웃게 만드는 공격수이며 최후방에서 다른 멤버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주는 수비수이기도 했다. 전천후란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김성민의 하차 이후 <남자의 자격>이 급격히 조용해진 넋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성민의 하차는 이정진의 하차로 이어진다. 팀웍이 흐트러진 가운데 새로운 청춘합창단을 진행핮 않으면 안되었다.

공감이 사라지고 난 <남자의 자격>에는 그래서 남은 것이란 웃음기라고는 없는 재미없는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교양프로그램이었고 정보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에 불과 1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만 주상욱과 김준호의 분량을 절반 가깝게 편성한 것도 그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까지 김준호에 맞춰 콩트를 보여주는 주상욱의 넉살은 채 <남자의 자격>을 통해 다 보여지지 못했다.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만으로도 얼마든지 더 많은 분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하모니편'에서의 남격합창단의 성공은 <남자의 자격>에 있어 치명적인 독이 되었을 것이다. 2011년에도 전현무와 양준혁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고 얼마 안있어 '청춘합창단'을 시작하고 있었다. 2012년에는 김준호와 주상욱이 합류하고 얼마 안 있어 역시 '가족합창단'이 몇 달에 걸쳐 방송되고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멤버들이 프로그램에 안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흐트러지고 멤버들 역시 자리를 잡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합창단'이 아니었다면 김준호와 주상욱도, 그리고 그들과 기존멤버들 사이에 확고한 어떤 무언가가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오랜 기억들인 양 싶다. 불과 4년 전인데. 아니 어떤 것들은 바로 작년, 재작년에 방송되었던 것들이었다. 그만큼 오래다. 시간이 오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오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래서 너무 멀리 표류해 있었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기에는 더 이상 <남자의 자격>만의 특별함을 기대할 수 없다. 폐지는 수순이었다. 단지 시기가 문제였을 뿐. 익숙한 사람들과 더불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이 아쉬움을 짙게 드리운다. 아쉬운 만큼 너무 멀어져 있다.

그래도 작별의 시간이라도 주어졌기에 아쉬움을 덜 수 있다. 기억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한다. 떠남을 예약한다.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안좋은 기억은 묻어둔다. 즐거웠던 시간들을 잊지 않겠다. 지난 4년간 <남자의 자격>이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거울을 보듯 <남자의 자격>을 보곤 한다.

이제 한 주 남았다. 4년이라는 시간이 이제 앞으로 한 주로 마무리되려 한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예정된 이별이기에 담담하다. 사람이라면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이 있겠지만 프로그램이란 지나고 나면 동영상으로나 다시 볼 수 있을 뿐이다. 즐거웠다. 많은 것을 느꼈고 배우고 또한 체험해 보았다. 대미를 그린다. 멋진 그림이 될 것이다.

첫회가 기억난다. 그때는 소설가 이외수가 멘토였다. 이외수 이후로 여러 사람이 번갈아 멘토로 출연했었다. 굳이 멘토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던 일상의 사람들도 있었다. 낯설던 얼굴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울 것이다. 즐거웠다. 헤어짐은 아쉬워도 기억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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