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28 09:15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오영이 진정 용서하지 못하는 것, 바람이 불다"

노력하지마, 이해못해도 사는데 문제없어! 오수 떠나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더 용서할 수 없다. 벌을 준다. 과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서 떠나간 그가 더 고통받겠는가, 아니면 남은 자신이 더 고통받겠는가? 상처줌으로써 상처입는다. 그것은 자신이 가졌던 악의에 대한 댓가다.

오영(송혜교 분)은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를 진심으로 미워해서 떠나보내려 했던 것일까? 미워하며 살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도 있다. 분노하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그것으로 살아갈 이유로 삼는다. 모든 것이 그의 탓이고 모든 잘못과 문제가 바로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위안을 얻는다. 죽고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기만 했던 자신에게 그것은 딛고 일어설 힘이 된다.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그만큼 그녀에게 의지했다.

결국 오수(조인성 분) 때문이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오빠 오수가 사실은 가짜였고 돈을 목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속았는데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보다는 차라리 그가 오빠가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 당황스럽다. 혼란 속에 그녀는 자신을 극단의 궁지로 몰아넣는다. 왕혜지를 내쫓고 오수를 떠나보내려 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벌이었다. 그런 그들을 믿었고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들을 의심하려 하는 자신에 대한 벌. 무엇때문인지도 모르게 그녀는 그렇게 가장 믿고 의지하던 이들을 벌줌으로써 자신마저 벌주려 한다. 상처가 너무 아프면 차라리 그 상처를 눌러서 더 아프게 함으로써 잠시 상처를 잊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오영의 심리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오수가 다시 걸어놓은 풍경소리를 듣다가 이내 창문을 닫고 커튼으로 가리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풍경은 곧 오수였다. 오수가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해 그녀는 창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풍경을 외면하고 창문을 닫는다. 커튼으로 자신을 가린다. 그렇다고 풍경을 다시 떼어내 버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풍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단지 자신만이 그 풍경을 애써 외면하려 할 뿐이다. 상처받기 싫으니까. 그것이 더 큰 상처가 됨을 알면서도 차라리 스스로에게 상처입히고 만다.

그러나 안다. 용서가 갖는 힘을. 그래서 이해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왕혜지에 대해서도. 오수에 대해서도. 하지만 오수는 그런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전혀 사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 오수는 오영을 사랑한다. 그것만은 거짓없는 진심이며 진심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지도,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지도 말라. 중요한 것은 오롯한 자신의 진심이며 진실일 것이다. 오영 자신도 오수로 인해 기뻤던 순간이 있었다는 바로 그것이야 말로 그녀가 진정 간직해야 할 한 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오영은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작 가장 상처입은 것은 오영 자신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왕혜지는 오영의 엄마로써 오영의 징벌까지도 기꺼이 자신의 의무로써 받아들인다. 딸을 위해 상처입는 것은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다. 딸을 대신해 상처입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머니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받아들인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그것이 오영을 위하는 것이라고. 그런 왕혜지의 모습이 더 오영에게는 상처가 된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왕혜지의 무의식이 오영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떠나가는 왕혜지의 모습은 오영에게 비수가 되어 그녀를 헤집고 있었다.

오수는 너무나 큰 것을 받았다. 오영을 사랑했다. 오영 또한 자신을 사랑했다. 오영에게서 이해나 용서를 구하기보다 오로지 그 하나만을 남기려 한다. 오영이 건넨 돈을 가져가지 않은 것은 그래서다. 오영만을 담고 가기에도 그는 너무 버겁도록 벅차다.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잔다. 자궁속의 태아처럼 한참을 자고서 후련하게 깨어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는 담담히 자신의 운명을 맞으려 한다. 죽을 이유를 찾지 못해 여태껏 연명하며 살아왔듯 이제 살아갈 의미를 찾았기에 기꺼이 후회없이 마지막을 맞을 수 있다. 그는 죽으려 한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오수와 조무철(김태우 분)이 형제인 이유일 것이다. 원작에서 오수와 조무철은 하나였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며 조무철에 의해 오수와 조무철은 둘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언제 죽어도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는 오수와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미련이나 후회를 남겨봐야 소용없는 조무철, 그리고 그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려 하는 김사장이 있다. 하나에서 갈라져 둘이 되었다면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죽음일까? 아니면 삶일까? 오수는 그래서 조무철을 형이라 부른다. 아직 조무철은 그에 대한 답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그래서 형제다.

바람이 그들을 이어준다. 문득 이는 바람에 들려오는 풍경소리가 두 사람을 서로 이어주고 있다. 마음이 서로를 이어준다. 굳이 서로의 마음이 가 닿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마음이 서로에게로 향하고 그런 자신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서로를 찾지 않는 것은 결국은 자신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을까. 아니 오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을 용서했다. 용서했기에 죽을 수 있다. 이제는 오영의 차례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왕혜지가 있다. 진정 그녀가 용서해야 하는 것은 왕혜지가 아닌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야 한다. 그녀는 살아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서로 이어질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바람이 부는 까닭이다. 그 겨울 유독 바람이 불었던 까닭이다. 이제야 제목이 와 닿는다. 어째서 그 겨울에는 바람이 부는지. 삭막하기만 하던 그들의 일상에 바람이 서로의 온기를 전해준다. 서로에 대한 자신의 진심이 온기가 되어 그들을 데워준다. 추운 겨울이기에 그것이 저리도록 따뜻하고 포근하다. 외롭지 않다.

막바지로 치달아간다. 하기는 벌써 다음 드라마의 예고편이 성미급하게 뒤따라 나오고 있다. 삶인가? 죽음인가? 삶이란 행복이며 운명일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 그들의 필연이 내놓을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풍경소리가 영롱하다. 풍경에 자신의 마음을 맡긴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한없이 원망하고 그리고 미워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결국에는 이해하고 용서하고 마는 것.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어느새 그들은 서로에게 길들어 있다. 그렇게 남기며 모자란 채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 겨울, 그래서 바람은 불어온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