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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6 08:43

내사랑 내곁에 "이소룡과의 우연, 고석빈과의 엇갈림"

작은 무대에 모든 배우들이 모였다.

 
아예 드러내놓고 드라마다. 마치 작은 소품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필 추리소설에서 사건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모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연극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면 편하다.

강정애 회장(정혜선 분)의 회사에 강정애의 외손자로 여겨지는 이소룡(이재윤 분)이 이미 취직해서 다니고 있고, 더구나 이소룡의 할머지인 사라 정 - 정말자(사미자 분)는 강정애의 오랜 친구다. 여기에 당연히 강정애의 사위인 고진국(최재성 분)의 조카 고석빈(온주완 분)은 인척으로써 특혜를 받아 기획실장으로 회사에 발령받고, 그런 회사에 다시 주인공 도미솔(이소연 분)마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아무리 공교롭기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기는 도미솔이 방송국 시험에 합격하면 이번에는 고석빈의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과 함께 일하게 되기 쉬울 것이다.

간단하다. 서로 각자 뿔뿔이 흩어 놓아서는 서로 잇기가 힘드니까. 고석빈이 끝내 도미솔을 발견하고서도 그녀와 만나지 못한 것과 같다. 도대체 아예 멀리 떨어져서 일하는데 도미솔과 이소룡이 얽힐 일이 무에 있겠는가.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아봐야 그것이 고석빈과의 갈등으로 발전하려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계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 장소에 모여 있게 한다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지향일 것이다. 같은 진성기업을 배경으로 하고도 매번 엇갈리고 마는 고석빈과 이소연처럼.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이 같은 진성에서 일하게 되고, 정직원과 아르바이트로 서로 얽히게 되고, 마침내는 키스까지 하게 되는 것처럼. 좁은 공간에 모아 놓고 밀도 있게 서로의 관계와 그에 따른 개인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것이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협소한 배경과 한정된 관계로 인해 심심하고 단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역량에 따라서는 보다 심도있게 밀도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내가 <내사랑 내곁에>라는 시청율도 잘 나오지 않는 드라마에 호감을 가지고 매번 챙겨보며 리뷰까지 쓰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대상, 배정자(이휘향 분). 어쩌면 가장 비열하고 악독한 악녀일 테지만 그녀의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내면의 묘사가 자꾸만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번회차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매몰차게 임신중절을 강요하고 아예 살지 못하도록 내쫓더니만 우연히 발견한 영웅의 존재에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인근의 모든 유치원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끝내 지우지 않고 낳아 버린 도미솔을 원망하는 듯 싶지만 영웅을 찾고 무심코 내뱉은 그녀의 말은 오히려 고마움이고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석빈이랑 똑같아! 석민이 애기 때랑 너무 똑같아! 그 망할 기집애가 끝내 애를 낳았나봐!"

하필이면 아들 고석빈과 닮은 구석을 찾고 나서. 더구나 그대로 잊고 외면하고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애써 찾아가며. 결국에 그녀는 다른 드라마에서의 악녀들처럼 자신의 핏줄을 외면할 만큼 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한 번 외면한 아이를 눈에 띄었는데 끝내 모른 체 하고 말 정도로 독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고석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나 놓고서 여전히 도미솔을 찾는다. 도미솔을 찾으면서도 아내 조윤정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어긴 것을 미안해하며 그녀를 끌어안는다. 도미솔에 대한 미련과 미안함, 그리고 조윤정에 대한 정과 또한 미안함. 어느 하나로 정하지 못한 채 짐짓 냉정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아니 가면은 아닐까?

아무튼 매우 작위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지난 9회서부터 계속 이소룡과 도미솔이 만나는 자리에 고석빈도 함께 하고 있었다. 신장개업하는 호프집 앞에서, 그리고 이소룡과 고석빈이 함께 다니고 있는 진성식품 앞에서, 또다시 고석빈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이소룡과 도미솔은 나란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우연은 겹치며 이소룡과 도미솔의 관계는 깊어지고, 그런 어긋남은 고석빈과 도미솔의 관계를 예고하는 듯하다. 지난회에서도 지적했던 멜로의 비극을 내포한 고석빈과의 관계와 로맨틱 코미티 득유의 우연과 운명을 보여주려는 듯한 이소룡과의 유쾌한 헤프닝도 역시 비교된다. 그 의도가 읽히지만 그것이 바로 드라마라는 것일 테니까. 드라마란 곧 픽션이다.

리얼리티라는 것은 반드시 리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의도가 적절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었을 때. 배우들의 연기가 그래서 빛을 발한다. 자칫 너무 뻔할 수 있는 그런 작위적인 설정들이 젊은 배우들조차 훌륭히 연기로 소화해냄으로써 전혀 어색하지 않게 보여지고 있다. 정혜선과 사미자, 이휘향과 김미숙, 이소연, 이재윤, 온주완과 같은 배우들. 배우들이 있어 아름다운 드라마다. 재미없을 것 같은데 재미있다. 역시 드라마는 스토리보다 텔링이다. 이야기보다는 그 묘사다.

이제 마침내 도미솔의 엄마 봉선아(김미숙 분)의 동생 봉우동(문천식 분)마저 이소룡의 고모 이소리(이의정 분)과 얽히며 드디어 도미솔의 가족과 고석빈의 가족, 이소룡의 가족이 한 데 얽히고 섥혀 모이게 생겼는데. 무대가 제한된 만큼 그만큼 집중해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깊게 밀도있게 그려나갈 것인가.

어쩌면 상당히 평이한 올드하게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임에도 이렇게 끌리고 마는 것. 역시 맛깔나게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연출하고 또 연기한 작가와 감독, 연기자 모두의 공일 것이다. 누구 한 사람만 잘해서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촐하기에 오히려 그러한 노력들이 더욱 섬세하게 느껴진다. 정말 보물같은 드라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재미있다. 삶에 대한 외경을 잃지 않은 도미솔의 의지와 용기가 아름답고, 그런 도미솔을 틱틱거리면서도 동정할 수 있는 이소룡의 따뜻함이 좋으며, 위악적이면서도 위선적인 고석빈과 배정자 모자의 복잡한 내면도 즐겁다. 좋은 드라마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며 보고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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