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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6 08:04

남자의 자격 "폐를 끼쳐야 하나가 되는 거야!"

외롭고 아름답고 충만했다.

 
하마트면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릴 뻔했던 김국진이 겨우 가방을 찾아가지고 야영장으로 향하는 도중 미안해하며 말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누구한테 폐끼치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그러자 이경규가 김국진을 말린다.

"국진아 괜찮아! 남한테 왜 폐를 못 끼쳐? 끼쳐야 돼! 그래야지만이 서로 하나가 되는 거야."

당연한 말이다. 그 사람과 얼마나 친한가? 그 사람과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가? 그 기준은 과연 어디까지 폐를 끼칠 수 있고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가?

"아냐, 아냐! 야, 국진아! 형 미안하다고 얘기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미안해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하니 어쩌겠는가?

"형, 미안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경규는 김국진을 불편해하고, 김국진은 이경규를 탐탁해하지 않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것들 따위 상관없지 않은가. 미안하다고 하기 꺼려지면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미안하다 여겨지면 사과하면 된다. 가장 쉬운 일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거의 대부분의 이유들이다. 괜찮다는 한 마디를 그리 못해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그리 하기 싫어서. 한 마디로 어떻게든 손해 보기 싫어서. 서로를 위해서라도 그런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도로도 충분히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이 즐거운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도시생활에서 그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고 끼침을 당하며 살아갈 일이 무에 있을까? 전통적인 촌락사회에서 이웃사이가 돈독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만큼 모자르고 아쉬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도시란 혼자 살아가기에도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오히려 더 좋다.

혼자인 것이 외로운 순간,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필요한 때일 것이다. 만남이 소중하고 더없이 절실해 질 때.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것 없이 불편한 것 투성이일 때. 텐트를 치려는데 헤매고 있으려니 스스럼없이 다가와 도와주는 낯선 외국인이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아마 누구의 도움도 없이 텐트를 치려 했다면 한참을 더 그러고 고생해야 하지 않았을까?

김태원이 텐트를 지지하는 줄어 머리를 부딪히고 이윤석이 걸려 넘어질 뻔했을 때도 한 노인이 다가와 걸리지 말라고 줄에 하얀 천을 묶어주고 있었다. 댓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그러고 싶었기에 번거로움을 무릎쓰고 그리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자기만의 스테이크비법을 가르쳐주고 맛보게 하고 별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중에는 연락처까지 주고받는다. 여행 가서 우연히 나누게 된 연락처 모으면 필자 역시 인맥이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늘 아래 나 혼자. 확실히 그렇겠다. 길이 하늘과 닿아 있다면. 한참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면 어쩐지 울적해지고, 막막한 하늘 아래 말을 나눌 이 하나 없음에 외로워지기도 하고. 사람이 그리워진다. 일행이 있으면 또 그건 그것대로 간절해지고 관대해진다. 관광이 아닌 여행이다.

문득 길을 가다가 만나는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들. 아마 도로표지판에 쓰여 있던 "CABLA 12"라는 글자는 카블라까지 12마일 남아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아직까지도 마일을 많이 쓴다. 1마일이 1.6킬로미터이니 얼추 맞아 떨어진다. 해는 지고 어두워 길은 보이지 않는데 전혀 가 보지 않은 길이니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조차 모른다. 지도란 참고하라는 것이지 그것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제작진 앞에 두 손을 들고 마는 아득한 절망감이란. 패배감이란. 그리고 그 끝에 발견한 목적지 카블라 홈스테드. 얼마나 반가운가.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득한 길을 하염없이 달리는 고독이며, 그 사이로 발견하는 놀랍고 새로운 경이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빠지게 되는 수렁까지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데 그 가운데 위험이 어찌 없을까. 모르는 길을 간다는 것은 모르는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잠깐의 방심이 차를 움직일 수 없는 말 그대로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이경규는 화를 내고 김국진은 달랜다. 놀란 윤형빈을 위해서 운전석에서 빼내주며. 아니 그것은 배려인 동시에 놀라고 당황한 윤형빈으로 인해 다시 위험에 처할 것을 막기 위한 예방차원이기도 하다. 그렇게 외로우면서도 함께 간다.

확실히 처음 가는 길은 어디나 멀다. 이사를 하고 차에서 내려 골목을 걸어가는데 어쩌면 이리 먼가? 아마 지금 다니는 시간의 세 배는 걸린 것 같다. 모든 게 생소하고, 그래서 모든 게 무섭고 불길하고, 그 어둡고 좁은 골목길이 지금은 가장 친근하고 마음 놓이는 장소다. 옆에 누군가 있으면 그렇게 든든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래서 누군가 가까이 있어주기를 바란다. 서로 놀리고 서로 괴롭히고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도. 하늘 아래 혼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은 혼자가 아니게 된다는 뜻과 같지 않을까.

도대체 어떻게 저런 엉터리 영어로도 말은 통하는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대화는 이어진다. 서로 마주 앉아서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더니만, 하지만 통하려 하니 어떻게든 통하지 않는가. 사람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그러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때문이다. 말은 단지 전체의 30%만을 전할 뿐이다. 함께 웃을 수도 있다.

정말 약오를 정도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언가 대단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대단하게 재미있다거나 대단하게 웃긴다거나. 호들갑떨며 설명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고 즐기고 있는가. 마치 내가 저 자리에 있는 것처럼.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텐데. 어쩐지 그러고 싶어서 냉동실에 있던 쇠고기를 구워 와인과 함께 먹었다. 소시지도 하나 굽고. 양파도 굽고. 후추가 똑 떨어져서 소금만 쳤다. 고추장은 안 찍어 먹는다. 나도 함께다. 그렇게 믿는다. 호주는 아름다웠다. 무척. 딸 서현에게 보여주려 쉘비치의 조개껍질을 한웅큼 모아 카메라에 가져다 댔을 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이었구나. 외로워지고.

약간은 설정의 느낌도 나는 이경규와 김국진의 앙숙관계가 조금은 거슬리기도 했지만 <남자의 자격>답게 잘 찍어 편집한 영상이었다. 이래서 내가 <남자의 자격>을 좋아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평안한 시간이었다. 그 역시 아름다웠다.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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