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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24 08:54

불후의 명곡2 "원조걸그룹 펄시스터즈, 시간과 시간이 만나다"

전설이 음악을 통해 현재로 이어지다

▲ 사진='불후의 명곡2'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2010년 지금은 폐지된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신드롬이라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다시금 대중 앞에 돌아왔던 '세시봉'의 '트윈폴리오'가 번안곡으로 이루어진 첫 데뷔음반을 내놓은 것이 바로 1968년이었다. 그리고 바로 같은 해 펄시스터즈가 신중현이 작곡한 '님아'를 타이틀곡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가 아닌가 한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의 포크문화와 미 8군무대를 거치며 보다 세련된 해외의 음악을 체화해온 클럽문화가 마침내 화려하게 주류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트로트가 주류이던 대중음악계에 비로소 해외의 보다 선진적인 음악에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던 대중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다 젊고 새로운 형식과 장르의 음악들이 소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는 이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여러가지 면에서 펄시스터즈는 당시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있어 혁명이라 불러도 좋을 존재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저 귀로 듣고 즐기는 음악이 아닌 보는 눈까지 즐거운 최초의 아이돌이었을 것이다. 노래도 잘했지만 외모도 출중했고 무엇보다 무대매너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노래가 좋아서 듣고, 그리고 가수가 좋아서 그들을 찾게 된다. 그들이 들려주던 음악 역시 당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급속히 발전해가던 시대상에 어울리는 보다 세련된 것이었다. 막 TV라고 하는 매체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무려 40년이 넘게 지나서야 걸그룹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가 알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이야기였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적에도 펄시스터즈는 단지 전설처럼 이름만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을 뿐이었다. 노래만이 남았다. 노래만이 남아 불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이후로도 많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던 그들의 노래가, 그 이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불려지고 있던 그 노래들이 그럼에도 펄시스터즈를 기억하게 한다.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수줍으며, 여전히 활달하다. 아마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들은 펄시스터즈일 것이다. 전설이란 바로 그런 것일 게다.

김다현의 '커피 한 잔'에는 원곡이 갖는 내재된 우울함 대신 엉덩이마저 들썩이게 되는 흥겨운 신명이 담겨 있었다. 이런들 어떠한가. 저런들 어떠한가. 마치 유희처럼. 기다림마저도 장난같다. 노래란 즐거운 것이다. 민망할 정도로 그는 무대를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제는 그런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커피 한 잔'은 즐거운 노래다.

그에 비하면 왁스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그녀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 먼 시간을 거슬러 뒤돌아보는 듯한 정제된 회한을 들려주고 있다. 곪고 썩고 마침내 다시 맑아진 기억들이 흔적처럼 과거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누구나 시간과 함께 하다 보면 그렇게 돌아보게 되는 기억이 하나쯤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피리소리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듯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배인숙싸기 눈물지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노래는 또한 흥겨우면서도 이리도 슬픈 것이다.

홍경민의 '마음은 집시' 역시 어느새 중견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된 그의 현재를 실감케 해주고 있었다. 슬픔의 감정마저 시간에 묻고 삭여 어느새 웃을 수 있게 된다. 인생이 별 것 있느냐며 아픈 기억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흘리듯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노래는 흥겹고 가사는 슬프다. 노래는 흥겨워서 슬프고 가사는 슬퍼서 흥겹다. 그림자가 어울린다. 강한 빛이 비추면 그림자 또한 짙게 드리워진다. 세월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펄시스터즈가 그 노래를 불렀을 때보다 지금의 홍경민이 더 나이가 많다.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어울렸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나르샤다. '상처'는 펄시스터즈도 말했듯 상당히 지루할 수 있는 단조로운 노래다. 하지만 나르샤 자신이 직접 드럼스틱을 들고, 더구나 보다 강렬한 사운드의 자신이 속한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히트곡 '아브라카다브라'의 비트를 삽입함으로서, 노래는 전혀 다른 노래로 바뀌고 만다. 무엇보다 무대에 선 것은 나르샤 자신이었다. 나르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완성시켜간다. 이를테면 '나르샤쇼'였다고나 할까? 탤런트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놀라운 재능일 것이다. 보는 것이 즐겁다.

에일리와 배치기의 '님아'는 원곡이 갖는 처절하기까지 한 흥겨움을 제대로 잡아내어 살기고 있었을 것이다. 가사는 슬프다. 랩도 슬프다. 그러나 무대는 즐겁다. 마치 주술을 거는 듯하다. 떠나간 그 님을 향해.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분명 그들에게는 있었다. 417점의 높은 점수로 우승을 예약했을 때 이미 필자 역시 납득하고 말았다. 영원한 신인가수라는 말처럼 무대 위에서 에일리는 너무나 해맑다. 그 순수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욕심이다.

확실히 '포맨'은 팀이라는 것을 알겠다. 신용재 혼자서 무대에 섰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신용재의 보컬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필자마저 '포맨'의 무대 앞에서는 경건해지고 말았다. 말 그대로 경건해졌다. 인간의 목소리가 갖는 위력에. 노래가 갖는 힘에. 극한에 이른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전해주는 그 경이와 기적에. 노래란 기적이다. 각각의 목소리보다 하나가 된 목소리가 더 아름다운 팀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놀랐다. 아주 작은 차이였을 것이다. 누가 우승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에는 그 세대에 맞는 정서와 감각이 있을 것이다. 명곡이 명곡인 이유는 그렇게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며 새롭게 더해질수록 더 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불후의 명곡2>의 이유일 것이다. 40년의 시간이 그대로 출연자들의 새롭게 편곡된 노래들을 통해 전설석에 앉은 펄시스터즈와 바로 이어진다. 앞서간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의일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새롭게 재탄생된다.

과연 지금 세대들 가운데 펄시스터즈의 이름이나마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알 것이다. 그보다는 노래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노래를 통해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랜만이라 정말 반가웠다. 아니 거짓말이다. 반갑다고 할 만한 기억도 필자에게는 거의 없다. 단지 그들이 존재함에 고마워하며 기뻐할 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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