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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22 09:24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용서하고 싶은 여자와 용서받지 못한 남자, 사랑하지 못하다"

솔직해서 잔인한 진실과 솔직해서 용서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 울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마 이런 때 쓰라는 말은 아닐 테지만 그래서 옛말에도 '미운 놈 떡 하나 주고 예쁜 놈 매 한 대 더 때린다' 하는 것일 게다. 미운데 오히려 야단을 치기 보다 떡을 손에 쥐어주고 마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일도 관심을 가지려 노력할 일도 없기에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방치한다. 차라리 매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인 것이다.

오영(송혜교 분)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임에도 오히려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맞추러 가고, 가는 도중에도 왕비서의 지난날에 대해 묻고 들어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어떤 예감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왕비서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할 때 그것은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영은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떠나보내려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비난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더 이상 왕비서는 자신과 함께 할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 정도야 얼마든지 하고픈대로 원하는대로 그녀가 바라는 모습으로 있어줄 수 있다.

반면 오영은 오수(조인성 분)에 대해서만큼은 매몰차지려 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를 속이고 기만했다. 복수였다.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일부러 그를 곤란케 하고 그를 당황하게 하며 그를 비웃고 조롱하고 싶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오수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오영도 알았다. 오수 또한 자신이 오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저열한 악의로 그를 놀려주고 골려주며 그에게 상처주고 싶었다. 오수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그에게 자신을 속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도록.

그런 한 편으로 오영은 오수에게서 변명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그 말보다는 네가 어린 날 쓰레기처럼 버려진 상처 때문에 쓰레기처럼 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눈 먼 나보다 네가 더 아팠다고 말하는게 나한테는 더 위로가 됐겠다.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알면서 갖고 노는 너도 정말 재미있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게 더 위로가 됐겠어!"

용서하고 싶었다. 용서해주고 싶었다. 용서를 빌었다면. 무릎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며 이해를 구했더라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말로 용서를 빌고 이해를 구했더라면 그녀 또한 마음껏 원망하며 분노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낸 뒤 전처럼 자신만큼이나 힘들고 아팠던 그를 동정하며 위로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진정 오수에게 분노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자신 만큼이나 그가 자신을 간절히 사랑하고 진실하게 원하고 있었더라면. 어째서 용서해달라 말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도 사랑한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자신의 곁에 남아 있고 싶다고 애원하고 사정하지 않는 것인가? 오수의 어쩌면 냉정하기까지 한 솔직하고 담담한 모습은 그러나 그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스스로 그녀의 곁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이제와서?

어쩌면 오영 자신도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오빠인 줄 알았던 오수가 사실은 진짜 오수가 아니었다. 친오빠라 여기고 간절히 믿고 의지해왔던 그가 사실은 돈을 목적으로 오빠를 사칭한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화가 나야 하는데 그런데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며 기다려왔던 친오빠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는데 슬픈 감정조차 지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안심마저 깃든다.

오빠를 사랑했다. 오빠라 여겼던 오수를 사랑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금단의 사랑이라 여겼는데 그 오수가 오빠가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혀 남이라고 한다. 사랑해도 좋다. 마음껏 사랑해도 좋다. 자신을 속여 돈을 뜯어내려 한 사기꾼이라는 사실보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더 다행스럽다. 아마도 그녀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은 오수가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오빠의 죽음마저 잊을 정도로 여전히 오수만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오수는 용서를 구하기보다,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곁에 남아있기보다,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떠날 결심을 굳혔다.

오수의 강압적인 입맞춤에서 오영은 다시 한 번 그것을 아프도록 깨닫고 만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아프게 파고드는 진실한 고백이었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간절한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명하지 않는다. 용서도 구하지 않는다.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구차한 모습으로 그녀의 곁에 남아있기보다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나려 한다. 그것은 오영이 왕비서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수의 그녀를 향한 작별인사였다. 사랑하니 곁에 있어달라는 간절한 구애가 아닌 사랑하기에 떠나겠다는 일방적 선언이다.

사랑이라는 게 항상 솔직해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까닭이다. 때로 거짓말도 필요하다. 뻔한 거짓말인데도 속아주는 연기력도 필요하다.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상대의 곁에 있고 싶고, 상대를 곁에 머물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같은 간절한 집착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인 것이다. 때로 듣고 싶어하는 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하고, 필요치 않다면 진실을 속이지는 않더라도 감출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다. 솔직한 것은 차라리 상대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이기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속이고 기만하는 마음의 죄까지 기꺼이 짊어져가며 사랑할 줄 아는 용기와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오수가 진정으로 오영을 사랑해서 어떤 모습으로든 그녀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다면 굳이 그런 식으로 솔직해지려 진실해지려 했을까? 그것이 오영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럼에도 그의 그런 잔인한 솔직함을 그녀는 미워할 수 없다.

차라리 미워할 수 있다면. 차라리 원망하며 비난을 퍼부울 수 있었다면. 아니면 그를 동정할 수 있었다면. 가엾게 여기며 눈물 한 방울 떨구고 만다. 그럴 수 없다. 그만큼 오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오수 자신을 사랑한다. 그런 오수를 자신도 사랑한다. 그게 더 아프고 화가 난다. 오수에 대해. 그런 자신에 대해. 그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절망이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프게 흐른다. 오영의 혼란스런 감정이. 그리고 어느새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오수의 체념이.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원망하려 하고, 그래서 미안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기에 그들은 더 아프다. 특히 이제 겨우 오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오영이 더 아프다.

막바지로 치닫는다. 오수의 정체는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더 이상 오수는 오영의 오빠가 아니다. 오영의 오빠가 아닌 오수는 그녀의 곁을 떠나려 한다. 왕비서의 실체도 드러났다. 이명호와도 파혼하고 이제 오영은 희망을 기약할 수 없는 수술대 위에 눕게 될 것이다. 박진성(김범 분)을 둘러싼 김사장의 음모가 다시 오수를 옭죄려 한다. 조무철(김태우 분)의 생명도 아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하지만 아직도 계속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거의 마지막에 다가왔음에도 드라마의 끝에 따라붙는 예고편이 신선하다. 아직도 여유분이 있다. 여유를 두고 촬영을 한다. 드라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갖춰진 배우와 스태프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조각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강박으로 화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결론지어질까? 심장마저 옭죄는 듯 아파온다. 드라마에 빠져든다.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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