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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21 14:50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전력으로 부딪히는 오수와 왕비서의 증오, 오영 울다"

스스로에게 상처입히며, 다른 이를 상처주며, 상처입은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오영(송혜교 분)이 울고 있다.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묻어두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보고 싶은 것만 - 듣고 싶은 것들만을 보고 듣고 행복한 꿈을 꾸며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행복한 꿈을 꾼 채로 남은 시간들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 하지만 잔인한 진실을 그녀를 비켜가지 않았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병을 꾸미거나, 심할 경우 심지어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어 자해하는 정신과적 질환의 하나다. 뮌하우젠 증후군과 반대되는 것으로 다른 대상에게 거꾸로 상처를 입히고 그것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얻고자 하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정신과적 질병도 있다. 결국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사회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매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굳이 정신과적 질병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와 비슷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남자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버림받았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줄 알았다. 자기라는 존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바람이었고 자기는 그저 그를 위한 잠시의 수단에 불과했었다. 철저히 잊혀졌고 무시당했다. 그리고 그같은 모욕은 가족의 경멸로 이어지고 말았다. 자기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며 - 자기란 존재는 과연 어떤 이유와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우연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자기도 한 아이의 엄마 대신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자기를 그토록 비참하게 내던져버린 남자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아이의 엄마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산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다. 그러나 기억이 있기 전 그는 바로 그 부모로부터 어느 공원 나무 근처에 버려져서 이름도 지금의 오수가 되었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어머니라는 사람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손에 약간의 돈만을 쥐어주고는 도망치듯 그를 외면하고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버려졌다. 가장 사랑받고 가장 의지해야 했던 대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지고 말았다. 아이는 그럼에도 부모에게 가장 사랑받고 부모에게 가장 의지하고 싶어한다. 차라리 자기를 탓하고 비난한다. 학대한다. 내가 못난 탓이다.

오수(조인성 분)의 방황은 그런 자신에 대한 징벌인 동시에 이처럼 가혹하게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는 자기에 대해 알아달라는 하소연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포자기하여 쓰레기처럼 오물투성이로 구르고 있다. 동정해달라. 관심을 가져달라. 하다못해 욕이라도 해달라. 박진성(김범 분)의 부모가 자기에게 베푸는 온정이 그래서 어색하고 거북하고, 죽은 연인 문희주가 자기에게 보내는 사랑 또한 부담스럽고 버겁기만 하다. 스스로 그것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래서 저지르고 자학하고 그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서 다시 스스로에 대하 조롱한다.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단 한 마디, 오영이 그에게 들려주었던 그 단 한 마디의 위로였을 것이다.

"네 잘못이 아냐."

반면 왕혜지는 스스로에게 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다. 동정이 아니다. 존경이다. 인정이다. 자기라고 하는 존재를 과시하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장성(김규철 분) 변호사가 회사의 중역들이 죽은 전회장의 심복을 회장에 앉히려 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 전회장에게 심복은 오직 자신 뿐이었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존경받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를 - 자리를 확보하고 싶었다. 차라리 다른 이를 상처주려 한다.

그들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오수와 오영이 닮은 것처럼 오수와 왕혜지 역시 혐오스럽도록 서로와 닮아 있었다. 자기의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혐오스러운 부분들을 바로 서로의 모습에서 찾아내고는 한다. 다만 선택이 다르다. 그럼에도 살려 했던 오수와 죽고자 하는 오수가 다르듯, 자기를 상처주려다 다른 사람들마저 상처입히고 만 오수에 비해 다른 이를 상처주려다 왕혜지는 자기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고 만다. 자기의 존재라고는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은 오영의 비밀방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큰 상처를 스스로에게 입히고 말았다. 그런데 고작 오수따위가 오영에게 입을 맞추다니. 자기는 이렇게 비참하고 아프기만 한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것은 또한 서로의 가장 아픈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를 헤집는 일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네까짓게. 당신따위가. 그들의 팽팽하던 신경전은 그렇게 사소한 계기로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까지 오가게 된다. 오영이 있는 집안에서 오영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들은 밝혀서는 안되는 진실까지 밝히고 만다. 지금껏 오영을 위한다는 이유로 애써 묻어두고 감춰두고 있던 진실들이다. 어쩌면 사람이란 이리도 슬픈 것일까?

그런 점에서 보면 박진성(김범 분)은 세상 근심걱정 하나 없이 해맑기만 하다. 아낌없이 주는 방법을 안다. 오로지 오수 뿐이다. 자기의 불편함이나 자신의 고통따위 그에게는 전혀 아랑곳할 바가 못된다. 사랑받고 자란 탓이다. 자신의 등록금을 소값으로 날려버린 아버지를 미워하기에도 그는 사랑받는 것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랑이 넘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말썽꾸러기 여동생까지. 친형제도 아닌 오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다. 그런 그이기에 오수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대상을 찾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우면서도 두려운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오수나 왕혜지와는 달리 박진성과 문희선(정은지 분)의 커플이 보여주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해맑기만 하다.

오수와 왕혜지가 서로를 향해 절망처럼 전력으로 부딪히게 된 계기였다. 오수가 승자였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었다. 자기의 이유와 의미와 가치에 대해 비로소 찾고 확인할 수 있었다. 오영을 사랑한다. 오영을 사랑하기에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 그녀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기쁨이다.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오영을 위해 그는 존재한다. 오영 그녀만이 그를 존재하게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왕혜지는 그럼에도 오영의 주위에는 자신의 자리란 없다는 것을 오영의 비밀방에서 확인하고 만다. 왕혜지의 오수에 대한 우월감과 여유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격렬한 증오 뿐.

그렇다면 과연 오영의 입장이란 어떠할까? 왕혜지의 의도대로였다. 오영은 왕혜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그녀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왕혜지에 대한 자신의 모든 의혹과 불편한 감정들마저 억지로라도 잊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자신의 기억이고 추억이건만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온실 작은방에 가둬두고 만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굳이 갑작스레 나타난 오빠의 존재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일 게다. 이대로면 좋다. 왕혜지는 여전히 왕비서인 채로, 오빠는 오빠인 채로. 그녀가 갑작스레 결혼을 서두르려 한 것도 그를 통해 지금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진실이 밝혀지고 만다.

당황스럽다. 그녀의 무의식은 벌써부터 오수가 친오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식은 애써 그같은 가능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오빠로서만 오수를 대하려 했었다. 왕혜지에 대해서는 잊었다. 굴복하고 받아들였다.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현실을 선택했다. 그런데 아니라고 말한다. 파국이 찾아온다. 오빠가 오빠가 아니고, 왕혜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그런데 어쩐지 그것이 나쁘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빠가 아닌 남자 오수를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왕혜지를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과정 몰랐던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데 대한 분노이고 절망이었을까?

하필 문희선에게 오빠 오수에 대한 감정을 묻고 난 뒤였다는 것이다. 오수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난 다음이었다. 오빠가 아닌 오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앞에서 오수가 사실은 오빠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수가 더 이상 오빠가 아니게 되었다고 그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까? 그보다는 오영의 눈물이란 자신의 앞에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까발려 보이고 있는 그들의 추하면서도 아픈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 내면의 혼란과 그에 대한 혐오, 그리고 오수에 대한 갈등이 흐릿한 그들의 모습과 함께 눈물로 솟구치고 만다.

사람들은 누구나 닮아있다. 그토록 자신의 상처를 잊기 위해 오수를 상처입히고 끝내 스스로 상처입으려 하는 조무철(김태우 분)처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자신을 함부로 내굴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그는 짧은 방황을 시작한다. 오수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 다른 누군가를 위하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는 이기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항상 늦다. 진소라(서효림 분)는 여전히 자신을 위한 사랑만을 하려 한다.

파국이 아니라 계기일 것이다. 이제껏 안개처럼 가려져 있던 거짓과 기만들이 걷히는 전조일 것이다. 여전히 왕혜지는 자신을 고집한다. 그러나 그 고집은 결코 길지 않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안다. 그녀가 슬픈 것은 누구보다 영리하고 현명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리석지만 오수 또한 진실을 향해 한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다. 오영은 선택한다. 그녀의 시간이 조금만 더 길다면 그녀의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력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가 영상보다 더 아름답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심지어 들릴 리 없는 그들의 숨소리까지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고,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며,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귀한 작업일 것이다. 인간을 보여준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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