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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11 09:23

남자의 자격 "자연이라는 이름의 역설과 작위, 모순을 보다."

진지한 고민 없이 단지 자연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는 것에 멈추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인간의 본성은 순리를 거스르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문명을 일구더니 어느 순간 다시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탐내어 걸음을 재촉하다가도 어느새 지나온 길을 아쉬워하며 걸음을 되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길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이상 그것은 새로운 길이 되고 만다. 다시 되새기는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새로운 기억들이다. 그렇게 결국 인간이란 앞을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동물인 것이다. 인간의 눈은 앞을 보도록 되어 있다.

과연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삶이란 말처럼 자연스러운가? 말 그대로다. 스스로 그리하는 것이다. 스스로 말미암으며 스스로 비롯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다른 아무런 인위도 강제도 없는 자연상태 그대로 놓아두었을 때 인간이란 과연 어떤 반응이나 행동을 보이고 있겠는가? 과연 그런 가운데 방송에서 소개된 자연인들처럼 일부러 불편을 감수해가며 힘들고 성가신 삶의 방식을 선택할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있어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본능을 거스르고 본성을 배반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 수 있다.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자체가 이미 인간의 본능이고 본성인 것이다. 무엇이 편한 삶인가? 과연 어떤 것을 안락이라 하고 어떤 것을 쾌락이라 부르는가? 인간의 본능이 가리키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을 거슬러 자기만의 정의를 찾고 그것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차라리 덫을 놓아 짐승을 사냥하여 그 고기를 먹는 것이 동물로서의 너무나 당연한 본성이라면, 심지어 사람이 먹을 것을 탐내는 쥐에 대해서마저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공존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추구인 것이다. 그것이 즐겁고, 그것이 행복하고, 그래서 만족스럽다. 남들이야 어떻게 볼 지 몰라도 그것이 자신에게는 만족한 삶일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것을 정의할 수 있다.

주상욱의 반응이야 말로 가장 평범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일도 잘 풀리고, 그래서 바쁘기도 하고 보람도 있고,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며 여유 또한 생겼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런데 굳이 일부러 먼 울산까지 가서, 그것도 힘들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도 일부러 불편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그토록 맛없는 국수를 먹어야 할 당위란 어디에 있는가? 굳이 프로그램의 의도가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가려 하기보다는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장르 그대로 유명연예인이지만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의 솔직한 감정들을 들려준다. 진정한 행복을 찾아나선 길이지만 이윤석과 같이 선천적으로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행복을 찾아나서기 전에 자연상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을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일대의 땅이 모두 자기 소유라 말하던 이도사의 모습이야 말로 '자연인'이라는 말이 갖는 역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아무리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자연조차도 결국은 누군가의 소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선의 김씨돌씨처럼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려 해도 농사지을 땅을 구하려면 직접 사거나 빌리는 수밖에 없다. 땅을 사려 해도 돈이 들고, 땅을 빌리려 해도 소유주가 요구한 댓가를 지불할 능력이 안된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농사를 지어 돈을 벌려 하면 두더지와 작물을 나눠먹을 생각도, 시장에 내다팔 수도 없는 괴상한 모양의 당근을 기를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농사를 지어 돈을 벌어야 한다. 건강이 허락하고 경제적 여건이 허락해야 비로소 꿈이나마 꾸어 볼 수 있다.

아마 제작진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보자 말하면서도 결국 이도사와 김씨돌이라는 기존의 자연인의 삶을 소개하는데서 그치고 마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이상론에 불과한가를 이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리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한 달 뒤를 걱정해야 하며, 내년을 걱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얼마나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인가. 일곱시간에 걸쳐 국수를 끓일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란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렇더라도 그저 소개하는 수준이 아닌 멤버들 자신이 직접 그같은 삶을 체험하고 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시한을 정하고 그 기간동안 모든 문명의 이기의 사용을 금지한다. 직접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고, 그것을 다시 자연 속에서 요리해 먹는다. 만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굶어야 할 것이다. 불을 피우지 못해 요리를 못하게 된다면 그때도 날것으로 먹거나 굶는다. 처절함에서 치열함이 나오고 치열함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 남의 이야기인 양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게만 되지는 않는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바로 시청자 대신이다.

굳이 '자연인'의 삶은 이런 것이다 정의하여 보여주는 듯한 자연인들의 강박이 오히려 더 분주한 작위를 느끼게 만든다. 그냥 타고난 대로 살면 안되는 것일까? 이 또한 역설이다. 자연에서의 삶이란 지독한 작위이며 기만에 불과하다는. 그렇게 본성을 거슬러가며, 순리를 거슬러가며, 사람은 자기가 가보지 않은, 혹은 오래전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찾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굳이 인위로써 정의하려 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슬픈 본성일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남자의 자격>의 멤버들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고민이 없었다. 자연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래도 굳이 거미나 개미와 같은 곤충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청소조차 마다하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사는 모습에서는 경건한 의지같은 것을 느꼈다. 굳이 눈덮인 산을 오르며 동물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것은 본능을 넘어선 어떤 숭고함일 것이다. 이 또한 작위이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바다. 아쉬웠다. 웃기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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