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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10 19:08

불후의 명곡2 "발라드의 원조 변진섭, 왁스 노래하다."

부르는 노래에 감동하고 보이는 노래에 감탄하다.

▲ 사진='불후의 명곡2'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그는 그야말로 혜성과 같았다. 어느 순간 나타나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그리고 다시 어느 순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때 그가 얼마나 크고 빛났으며 아름다웠는지. 물론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90년대를 준비하는 르네상스의 시기였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시도되었고, 주류무대를 통해 대중들에 알려졌으며, 대중들 역시 한결 수준이 높아진 우리의 대중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처음으로 단일앨범으로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밀리언셀러가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변진섭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문세가 그 그 첫 문을 열었을 것이다.

이문세가 시작하고 유재하가 완성한 대한민국 발라드의 문법을 화려하게 폭발시킨 것이 바로 변진섭이었다. 바로 변진섭에 의해 발라드라는 장르는 대중들에 그 이름을 알리고 그 정체성을 확고히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변진섭 이전에도 말했듯 음악으로서의 발라드는 존재했을 테지만 주류음악의 한 장르로서의 발라드는 엄밀히 변진섭에 의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변진섭에 의해 발라드라는 단어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변진섭의 성공이 있었기에 황제라고까지 불리우며 발라드의 계보를 잇게 되는 신승훈 역시 세상에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만큼 그의 전성기는 짧았다.

어느 순간 그는 있었다. 문득 그의 노래가 들렸고, 어느새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으며, 마침내 그의 음반을 사기 위해 음반가게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다지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마도 노래의 힘이었을까? 대신 주위의 많은 여자아이들은 그를 두고 귀엽다 말하고 있었다. 볼에 살이 많아 동글동글한 것이 만화속 둘리를 닮았다 해서 그의 별명을 둘리라 붙여 부르기도 했었다. 하기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대신 선이 곱고 선량한 모난 곳 없는 인상이었다. 그런 그가 부르는 애절한 발라드는 그만큼 더 진심을 담아 전해졌으리라.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꿈처럼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꾸준히 음반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의 화려함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초라하기까지 한 아쉬운 시기들이었다. 걸출한 후배 신승훈이 있고, 서태지와 아이들에 의해 폭발한 또다른 랩댄스의 유행이 대중음악을 지배하고, 그리고 듣는 음악만이 아닌 보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찾게 된 대중들로 인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발라드 한 가지만을 추구하던 변진섭은 점차 대중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발라드의 시대를 연 것은 변진섭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는 대중들과 다른 시간 다른 감성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음악이 갖는 가치와 감동들이 그 빛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손호영의 '새들처럼'은 그야말로 공원에 가득 내려앉은 비둘기떼들마냥 수선스러웠다. 답답하고 지루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증이 마냥 들떠서 뛰어노는 어수선함으로 바뀌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즐거웠고 앵무새의 퍼포먼스는 놀랍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뿐. 하기는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져가던 80년대와 도시에서 태어나 살면서 그 자체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진 지금의 가치나 감성과는 또 다를 것이다. 새들도 도시속에 산다. 새가 날아가는 곳도 도시다. 새는 무대에서 날아 하늘로 날개짓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관객석의 또다른 사람의 손에 자연스럽게 내려앉는다.

나르샤는 참 노래를 잘 부른다. '홀로된다는 것'이라는 노래가 갖는 처절할 정도로 슬픈 감정을 가녀린 미성으로 너무나 잘 표현해 들려주고 있었다. 다만 확실히 같은 여성출연자로서 왁스와 비교되는 부분이라면 감정의 깊이가 조금 얕지 않았나 싶다. 뻔히 읽히는 감정이랄까? 알아달라고 일부러 드러내는 감정의 표현이 감동을 약화시켰다. 노랫말처럼 담담하게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 부르던 변진섭의 원곡이나 원숙한 감정으로 철저하게 자기의 이야기처럼 안으로 삭이며 들려주었던 왁스의 '그대 내게 다시'는 어째서 나르샤의 무대가 그 풍부한 감정과는 달리 평가를 받지 못했는가를 납득하게 해준다. 경연이란 단지 자기만 잘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특별함을 요구하는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두께가 조금 아쉬웠다.

투빅의 '너에게로 또 다시'는 역시 감정표현이 직설적인 요즘의 노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변진섭 특유의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심지어 고음조차도 너무나 쉽게 그냥 뽑아내는 듯한 무대와는 달리 투빅의 무대에서는 눈물이 흘러넘치려 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울고 있었고 나중에는 아예 통곡을 하고 있었다. 힘이 있다고나 할까? 무게감있는 자신들의 몸매 만큼이나 감정에 힘을 실어 밀어붙이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러나 역시 이 노래는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부르는 쪽이 그 처절한 비극의 회한을 더 잘 살릴 수 있다.

데이브레이크는 역시 강하다. 도입부의 막 사랑에 빠진 이의 고백을 듣는 듯한 속삭임에서 이어진 사랑의 열정과 환희에 들뜬 듯한 모습까지. 보컬의 목소리와 함께 하는 밴드의 연주가 있기에 그 감정은 열 배 스무 배 그 이상 커지고 깊어질 수 있다. 마치 처음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던 그 순간들을 들려주는 것처럼. 데이브레이크만이 들려줄 수 있는 '숙녀에게'였을 것이다. 표현의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에 빠진 남자의 반응이란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즐거웠다.

왁스는 과연 진짜였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자신의 목소리로 확실히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었다. 노래에 심취해서, 표정 하나 눈빛 하나까지 노래의 일부가 되어서, 출연자들이 말한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서 우아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말로써 전하는 노래인데 발레리나의 몸짓처럼 말 이전의 - 혹은 말로써 전하는 그 이상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 게 원래 노래였구나. 가수는 많지만 어쩌면 <불후의 명곡2>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노래만을 부르는 가수는 드물지 않을까.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무대였다. 마지막 '그대 내게 다시'라는 가사를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울컥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치밀 것만 같았다. 감동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최고였다.

왁스가 노래의 끝을 들려주고 있었다면 김다현은 퍼포먼스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뮤지컬을 압축해 놓은 듯 다양하고 화려한 볼거리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그러고 보면 '희망사항'이란 무척이나 장난스러울 정도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노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김다현의 표정이나 노래들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도록 무대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보는 즐거움이라는 한 가지만 고려했을 때 그동안의 <불후의 명곡2>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퍼포먼스의 끝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왁스의 무대가 가장 좋았지만 김다현의 우승이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자격은 충분하다.

새삼 변진섭이라고 하는 가수의 대단함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쉬운 노래들이 없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리도 쉽게 부르고 있었다. 원한이 깊다. 그 평온한 표정에 속아 노래방에서 도전했다가 좌절했던 아픈 기억들이 있다. 마치 남의 노래처럼 표정변화 없이 담담하게 부르는 가운데 보다 압축해서 전해지는 감정들을 또한 다시 떠올리고 만다. 굳이 슬프게 부르지 않아도 노래가 슬프면 슬프다. 가수가 울지 않아도 노래가 슬프면 청자가 운다. 훌륭한 무대들이었지만 그런 점에서 과연 변진섭은 전설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차고도 넘친다고나 할까.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래를 연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듣는 노래만이 아닌 보는 노래도 있다. 왁스의 노래는 듣는 노래였다. 김다현의 노래는 보는 노래였다. 즐거움 또한 감동이다. 왁스에 감동하고 김다현에 감탄한다.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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