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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07 09: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과연 오영은 오수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가?"

간절함은 때로 진실보다는 거짓된 꿈에 기대고 싶어한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과연 오영(송혜교 분)은 오수(조인성 분)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다른 사람의 거짓말은 너무나 쉽게 알아차린다. 자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혹은 지금 주위의 감정이나 현재상태가 어떠한지, 오수의 칼질소리를 듣고 그것이 이탈리안 쉐프로서는 상당히 어설픈 수준이라는 것도 이미 알아차린 바 있다. 그런데 유독 너무나 뻔한 오수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쉽게 넘어가는 듯하다.

아니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오영이라면 벌써 오래전에 오수의 정체에 대해 눈치채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만났던 사람이었다. 대화까지 나눴었다.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때 그는 자신이 그녀의 오빠가 아니라 말한 바 있었다. 다시 오빠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났을 때도 여러가지로 어설펐다. 거짓말도,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도, 그리고 자신과 오빠 오수만이 간직한 기억에 대해 머뭇거리던 모습들까지도. 이미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와 약혼자인 이명호(김영훈 분)는 오수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가고 있다. 어린시절 그리 오랜 인연도 아니었던 심중태(최승경 분)조차 오수에 대한 이상함을 눈치채고 있다.

결국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관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오수가 자신의 친오빠인지 아닌지. 어차피 그녀는 죽으려 했으니까. 죽어야 했으니까. 기억조차 희미할 오래된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빠와 함께했던 기억보다 오빠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그녀에게는 더 길다. 이제와서 새삼 단지 오빠라는 이유만으로 혈육의 정을 느끼기에는 그들이 서로 떨어져 지내온 시간들이 멀기만 하다. 그런데도 오영이 오빠인 오수에게 그토록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따라서 다른 이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오수가 보았던 오영의 홈비디오 영상이 가리키는 그대로 오빠인 오수야 말로 그녀를 지금의 절망적인 현실로부터 구원해 줄 유일한 의지처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왕비서 왕혜지에게 맡겼다. 왕혜지는 그런 자신을 지배하고 소유하려 한다. 짓누르고 옭죄인다. 왕혜지로 인해 그녀는 무기력하게 길들여져간다. 그녀의 자아는 그것을 거부하려 하지만 무력하기만 한 그녀의 현실은 왕혜지가 의도한대로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기댈 곳이 필요했다. 견딜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왕혜지의 의도대로 자아마저 희미해지는 가운데 오빠 오수가 있음으로써 그녀는 오빠 오수의 동생으로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 오빠 오수란 실제의 오수가 아닌 그녀의 안에서 만들어진 그녀를 지키고 구원해 줄 대상으로서의 오수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사실 그녀에게 오수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그동안 기다려온 그녀의 이미지속의 오수면 되었다. 오영이 오수에게 내준 숙제는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오빠는 여동생을 지켜주는 존재다. 오빠는 반드시 동생인 자신을 왕혜지와 이명호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지켜주려 할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외로운 처지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든든한 자신의 곁을 내줄 것이다. 비로소 그녀에게도 기댈 수 있고 때로 응석도 부릴 수 있는 오빠라는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다. 더구나 오빠는 이제 곧 3개월 뒤면 한국을 떠난다고 한다. 자신도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 것이 그다지 오랜 시간을 오빠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자신의 행복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다행스럽게도 그런 오빠의 역할을 오수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오수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피엘그룹의 고문변호사로 고인이 된 오세영 회장의 유언을 집행하는 한편 그 상속자인 오영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장성(김규철 분)이 정작 왕혜지나 이명호와는 다르게 오수에 대해 단 한 번도 심각하게 의심하거나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영이 좋아한다. 오영이 좋아지고 있다. 오세영 회장의 아들이라 하고 오영의 오빠로서 오영에게 웃음을 돌려주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오수가 사실은 이탈리안 쉐프가 아닌 갬블러였다는 확실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가 집행해야 하는 유언의 대상은 오세영 회장의 아들 오수였지 다른 오수가 아니었으니까.

그에 비해 왕혜지와 이명호는 설사 오수가 진짜 오영의 친오빠인 오수가 맞다 하더라도 일단 의심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다. 오영에게 오빠가 있어서는 안된다. 오영이 소유한 것들과 무엇보다 오영 자신을 나눌 수 있는 오빠가 존재해서는 그들로서는 곤란할 따름이다. 어차피 진짜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일단 의심부터 하고 할 수 있으면 가짜라 몰아세워야 하는데 정작 나타난 오수는 어설퍼도 너무 어설펐다. 아니 어설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수를 의심하고, 이제서야 장성은 오수를 의심하게 되었고, 오영은 여전히 오수를 믿는다. 진실이야 어찌되었든 오수야 말로 그녀가 기다려온 오빠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 그녀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오수의 말에 감격하여 그의 뺨에 키스하려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오수의 뺨은 그녀가 오수에 대해 느끼는 어떤 경계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입술을 피해 키스를 한 것은 그 대상이 자신의 오빠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만, 그러나 또한 굳이 키스라고 하는 흔하지 않은 수단으로써 고마움을 표현하려 한 것은 그에게서 혈육으로서의 오빠만이 아닌 타인인 남성을 함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수 역시 잠들어 있는 오영에게 키스를 하려다 이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멈추고 만다. 오수에게도 그녀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거짓이 만든 오빠와 동생의 관계다.

알지만 속아주고, 알면서도 일부러 속고, 혹은 속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무시한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오빠가 가짜라는 가정따위. 오빠가 사실은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당위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빠 오수의 존재다. 지금 자신의 곁에서 오빠로써 존재하고 있는 오수의 존재 자체다. 자신을 창립기념연회의 단상으로 이끌어주던 그 손길처럼. 그래서 그녀는 모른다.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빠 오수면 족하다. 그렇게 믿고 만족한다. 시험은 통과했다. 누가 되었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순간 반전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아무튼 오수로서는 고통스런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오영더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수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비겁한 거짓과 비루한 기만으로 쌓아올린 자신만의 세계가 서서히 허물어진다. 모든 것이 의미없는 가짜이고 가치없는 허깨비에 불과한 그의 세계가 어느새 오영에게 진심이 되어 버린 자신과 함께 허물어져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자신의 거짓에서 비롯된 관계를 통해 만난 여동생 오영과 그녀에게 진심이 되어 버린 진실한 자신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인데 진실하다. 이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녀에게 진실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그녀와의 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자신이 거짓을 까발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당연히 그녀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거짓된 관계만을 붙잡으려 한다면 그녀를 향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부정하고 외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오영과 멀어지는 것도, 그렇다고 오영에게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의 죄에 대한 벌일 것이다. 거짓에 대한 가장 큰 벌은 바로 진실이다. 진실해지는 자신을 그는 견디지 못한다.

조무철(김태우 분) 또한 뇌에 병이 있는 모양이다. 의사의 소견으로 앞으로 채 2달을 살지 못할 것이라 한다. 아마 이때쯤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려 할 것이다. 더 살고자 하는 기약없는 욕망을 포기하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조무철이 어째서 그토록 오수에게 집착하며 그를 곤란으로 내모는가. 어쩌면 그에게 오수의 존재야 말로 삶의 마지막에서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해묵은 숙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오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모두 털어내고 훌훌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접는다. 죽은 문희주에 대한 사랑이 아닌 그녀에 대한 미련과 집착에 대한 마지막 정리다. 오수에 대한 원한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지막을 앞둔 이의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는 진정 오수를 죽이려 하고 있을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영은 오빠 오수의 손에 기대어 피엘그룹의 후계자로서 모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인정까지 받게 된 그 순간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녀 역시 그녀 자신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그녀 자신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이 있는가? 사는 것은 오롯이 왕혜지와 이명호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죽는 순간 만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자유로워진다. 무엇보다 오수가 떠나기 전 가장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하게 끝을 맞이하고 싶다.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란 사실 아무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자신을 보살피고 길러준다면 설사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의 종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물을 수조차 없는 절박함과 간절함 앞에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오영에게는 오빠가 필요했고, 오영이 오빠에게 기대한 모든 것들을 오수는 보여준다. 오영에게는 그것이면 족하다. 오수는 떠난다.

조무철의 다른 모습이 그 단면을 드러낸다. 조무철이 갖는 비극과 그의 마지막 순수가 드라마에 또다른 변수를 던진다. 오영은 지금 경계에 있다. 그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현실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오수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공존하며 충돌한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 꿈에서 깰 것인가? 아니면 꿈에서라도 행복한 꿈에 젖을 것인가? 죽음은 그 꿈을 영원 속에 박제로 만들어 화석이 되게 한다. 아직은 꿈을 꾸어도 좋다. 아련하다. 슬픈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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