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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05 09:21

힐링캠프 "배우 한석규의 탐욕, 고민과 열정을 듣다."

항살 슬럼프이고자 하는 탐욕과 진지함, 엉뚱한 매력이 즐겁다.

▲ 사진출처=SBS ‘힐링캠프’방송캡처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쩌면 유한을 살면서 무한을 꿈꾸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일 것이다. 육신이라는 현실의 한계에 갇혀 살면서도 그 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신이라고 하는 무소불위의 절대의 존재에 닿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항상 두려워하고 항상 초조해 하면서도 또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탐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저는 앞으로도 평생 그 슬럼프에 시달리며 살 것 같아요, 살 거에요!"

꿈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현실은 그를 따라주지 않는다. 목표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저 높은 곳에 있는데 자기의 앞에 놓인 현실이란 그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고 비루할 뿐이다. 그래서 나아가려 한다. 비천하고 비참한 지금의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아우성친다. 그 이상이 높을수록, 지금의 자신에 대한 분노가 클수록 더욱 필사적이 되어간다. 인간이란 그렇게 지금의 고도의 문명을 이룩해 왔을 것이다.

의외였을 것이다. 한석규 자신도 인정했듯 그는 무명생활이 상당히 짧았다. 한 순간에 스타가 되었고 이내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었다. 처음부터 스타였던 것처럼 성우로 활동하며 단련된 정확한 발음과 발성에 단정한 외모는 귀티마저 느껴지는 것이 그런 고민들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때문이었다. 짧지 않았던 공백과 긴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스타였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배우였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니.

문득 재작년 종영된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이 연상되었다. 누구보다 올곧은 뜻을 품고 그를 위한 집착에 가까운 탐욕을 보이던 왕 세종의 모습이 곧 <힐링캠프>의 한석규의 모습이었다. 왕이고자 했던 세종에 비해 그는 배우이고자 했고, 왕으로써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세종처럼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고단하지만 그의 탐욕은 지칠줄도 멈출줄도 모른다. 멈추는 순간이 물러나는 순간이다. 더 이상 탐욕도 집착도 설레임도 실망도 없을 때. 기대도 희망도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하여 안주할 때.

아마 한석규가 말한 자기가 그만두어야 할 때란 바로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을 때. 부족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그런 자신의 앞에 놓인 연기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자신의 연기가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설레임이 익숙함 속에 흐려져갈 때. 그 순간부터 그에게 연기란 단지 습관이고 관성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배우 한석규가 한석규가 아니게 된다면 더 이상 연기를 할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 또한 배우로서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며 탐욕이고 집착이었을 것이다.

이경규가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역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이들만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었을 것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그야말로 한결같이, 많은 동료연예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설레어하며 두려워한다. 더 나아지지 않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며 그런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친다. 잠시의 위기에도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나락에서도 그는 다시 일어나 지금의 최고의 자리로 돌아왔다. 끊임없이 변신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한때 이경규보다 더 대단했던 연예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이경규 한 사람이다.

이경규의 연륜이 돋보이고 있었다. 적확하게 게스트를 이해하고 게스트를 유인하는 한편 그에 어울리는 리액션을 선보인다. 때로는 속물처럼, 때로는 예능MC로서 재미없는 돌발멘트에 반발하며, 때로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한혜진은 그런 이경규의 파트너로써 무모할 정도로 정직한 직구로써 지루해질 수 있는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렇게까지 이경규를 웃음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는 예능인이란 참으로 오랜만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가씨마냥 스스럼없이 이경규를 놀리고 공격한다. 한석규의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진지함과 예능의 웃음으로 버무려진다.

한석규가 어째서 대배우인가? 지금도 고민한다. 아니 지금도 그는 탐욕한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작품과 연기를 위해. 슬럼프가 차라리 도움이 되었다 말한다. 위기였지만 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고민한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한다. 지금도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한의 존재로써 무한의 세계를 탐욕하고 있다. 그의 엉뚱함은 그의 깊고도 거대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려 하고 있다.

한석규라고 하는 배우를 더욱 좋아하게 된 <힐링캠프>였을 것이다. 한석규가 힐링받은 것이 아니었다. 한석규라고 하는 배우를 통해 보고 있던 시청자 자신이 힐링받고 있었다.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보이는데도 탐욕하여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여전히 끓어오르며 넘치려 하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석규를 위해 준비한 세트가 돋보였다. 지금까지 한석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소재로 세트를 구성하여 힐링을 위한 완벽한 자리를 준비한다.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속깊은 이야기들을 수다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이경규의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힐링캠프>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갖는 힘일 것이다. '힐링'이 된다. 치유가 된다.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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