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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03 12:13

불후의 명곡2 "문주란의 눈물과 불후의 명곡이 아름다운 이유"

첫출연 첫우승 왁스의 활약을 기대하다.

▲ 사진='불후의 명곡2'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던가? 자기가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 자기라고 하는 존재가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후인들일 것이다. 자기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이거나 혹은 자기의 길을 따라겉는 후배들이거나. 선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배들이 모여서 만드는 트리뷰트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대단한 영광이고 감격이겠는가. 이리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틀리지 않았다, 가치있었더 의미있었다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에도 많은 선배음악인들이 <불후의 명곡2>에 전설로 출연해서 적잖이 눈물을 그렁이고 있었다. 자기의 노래를, 자신의 수많은 사연과 기억들이 깃든 노래를 자기들의 색깔대로 편곡해 들려주고 있었다. 인생이야 그야말로 한순간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노래는 아직까지도 후배들에 의해 이리도 새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지고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 그것을 바로 앞에서 직접 지켜보고 있다. 전설이라는 존경받는 선배의 위치에서. 자신을 위한 그것도 후배들의 무대를.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문주란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없다. 아마 어느 수업이 일찍 끝난 맑은 날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버스기사가 켜놓은 라디오를 통해 한 노래를 듣게 되었다. 바로 이번 <불후의 명곡2>에서도 엠블랙에 의해 불려진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였다. 그때는 아마 노래 때문인지 문주란이 이미 결혼도 했고 가정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로 아버지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도대체 문주란이란 어떤 가수인가고.

"저음은 정말 최고였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무래도 필자의 세대에게 문주란 세대의 음악이란 가수를 특정하지 않고 들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필자가 좋아한 많은 노래들이 그의 노래였고, 필자가 좋아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또한 문주란이라 이름한 그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아!' 그 말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 가요사에 다시 없을 심연의 심금을 후비는 매혹의 저음의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요즘 자주 쓴다.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었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다른 방송사에서 명절이라고 특집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벌써 화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인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이. '그녀'라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성별을 뛰어넘은 전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성 이전에 가수이고 원로이고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 세대들조차 단 한 번의 무대만으로 단숨에 휘어잡았을 정도로. 누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 했는가. 그들은 어쩌면 영원히 그들의 노래와 함께 우리 안에 살아있을 것이다.

팝핀현준은 오만해도 좋다. 그의 퍼포먼스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최소한의 간결한 동작에 깃든 깊은 한과 그것을 형상화한 스프레이 퍼포먼스. 온갖 페인트로 얼룩진 그 모습이야 말로 수많은 회한으로 얼룩진 우리들 자신의 삶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수도 없이 덧칠된 상처와 후회들이 어느새 잿빛이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가지게 된다. 그조차도 멋이 되고 낭만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삶이, 그 깊은 내면이 그렇게 박애리 명창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 위를 흐른다.

아이비는 아무래도 줄을 잘못섰다.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와 그 만큼이나 매력적인 퍼포먼스가 돋보인 무대는 그러나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가 만들어낸 그 깊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MC 정재형의 말이 정답이다. 이런 리듬에 이런 노래를 이렇게 섹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수는 아이비 뿐이다. 흐느적거리는 듯 나른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은 강한 자아가 강요하듯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잡아끈다. 그녀는 매력적이다. 마지막 무대라는 것이 사심까지 더해 정말 아쉽고 아깝다.

바로 이런 것이 밴드의 힘일 것이다. 어쩌면 노래실력 한 가지만 놓고 본다면 데이브레이크의 보컬 이원석의 노래는 그렇게 다른 출연가수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래 자체만으로는 솔직히 다른 가수들에 비해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채워주는 밴드가 있다. 보컬에 최적화된 그와 함께 하는 동료들, 동지들이 있다. 몽환적인 밴드의 사운드와 함께 들리는 이원석의 목소리란 얼마나 매혹적인가. 침잠하는 슬픔과 그 슬픔 위로 쏟아지는 감정들이 밴드사운드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된다. 데이브레이크의 무대였다. 그들에 갈수록 빠져들게 된다.

나르샤의 힘을 뺀 가녀린 미성이 처절한 슬픔을 토해낸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처절한 허무와 공허를 담은 퍼포먼스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을 살린 것은 결국 가수 나르샤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가수란 무대 위에서 연기자가 된다.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농축된 드라마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녀가 주인공이었다. 진정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타고난 가수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동안의 솔로곡들보다 <불후의 명곡2>에서의 특히 뽕끼 가득한 트로트 무대에서 그녀의 노래를 빛을 발한다. 성인돌이란 어쩌면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녀는 어른이다.

엠블렉의 무대는 도발적이고 신선했다. 노래 자체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랩과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만의 무대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젊은 그들 자신에 비해 마치 80년대 백댄서가 당연히 가수의 뒤에서 춤을 추던 시절의 무대를 떠올리고 말았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강렬함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심심한 무대가 아니었을까. 나르샤의 경우와는 반대로 그래서 그들은 아직 소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인생이 즐겁고 밝기만 하다.

왁스는 참으로 위험한 선택을 했다.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을 것이다. 원곡을 그대로 살리며 그것을 자기 노래로 소화해 부른다. 쉽지 않다. 원곡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불러도 원곡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문주란이라면야. 하지만 그녀 역시 이미 베테랑이라는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중견의 위치에 와 있다. 노래가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아름다워서 감동적이다. 그녀의 무대였다. 무대에서의 '백치 아다다'는 그녀의 노래라 해도 좋았다. 청중평가단의 선택은 옳았다. 그녀의 앞으로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문주란의 눈물을 보며 보고 있던 필자 자신도 울컥함을 느꼈다. 어쩌면 원조라 할 수 있는 <나는 가수다>에 비해 <불후의 명곡2>가 더 긴 호흡으로 꾸준히 대중들에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세대의 교감이 있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이 있다. 문주란의 세대와 지난주 임재범의 세대, 출연 가수 가운데도 왁스가 있고 엠블랙이 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선배로부터 후배로. 그 연속선상에 <불후의 명곡2>는 있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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