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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28 09:45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 오영 울다."

살아갈 이유를 찾고 살아가도 되는 이유를 찾았을 때, 차라리 진심이기에 시작되는 비극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주는, 다만 믿고 의지할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사랑받고 있다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면 또한 사람은 죽을 기력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누구도 자신의 죽음따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바람처럼 흔적조차 없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소멸이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무위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흔히 남녀의 만남을 두고 서로의 반쪽을 찾는다고 말하는 바로 그대로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만 닮아있다. 죽으려 하는 이유가, 그러면서도 끝내 살고자 하는 그 모습들이다. 오수(조인성 분) 또한 불과 얼마전까지 오영과 마찬가지로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해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영이 굳이 이명호(김영훈 분)와 술을 마시다 말고 오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를 죽이러 오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를 구하러 오라. 나를 구해달라. 그러니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

어째서 오영은 오수에게 자기를 죽여달라 말하면서 항상 자신의 유언장 내용을 빼놓지 않고 곁들이고 있는가. 만일 자기를 죽여준다면, 자기가 죽게 된다면 그때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오수에게 줄 것이다.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자기가 가진 가장 가치있는 것이기에 그것으로라도 자기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그것으로라도 자기가 살다 간 의미로 여겨달라고. 아니 여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자신은 죽어서 더 의미있는 존재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 당장 죽는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남길 것도 남겨질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죽으면 끝이다. 그것이 서럽고 시리다. 정작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자신의 존재가 차라리 애닲기조차 하다. 하기는 이때까지도 오수는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에 대해서조차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어차피 자기따위 살아갈 자격도 행복할 자격도 없다. 무언가를 바라고 기댈 자격다위 이미 자기기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오수가 오영을 찾아간 문희선(정은지 분)의 뺨을 때리고, 다시 그녀의 진심을 듣고 난 뒤 굳이 박진성(김범 분)의 부모를 찾아간 것도 그래서다. 비로소 친부모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대하는 박진성의 부모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자신도 이렇게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니 문희주가 죽은 것으로 인해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고만 여겼던 문희선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단다. 박진성의 부모는 자신을 아들이라 불러준다. 그리고 형제처럼 여자를 사이에 두고 핏대를 세우는 박진성이 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던지고 굴렸으며, 사랑하는 여자마저 그리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런 그녀를 잊고 이제는 행복해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준다.

오영을 통해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자신에 의해 의도된 기만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충실히 자신을 오빠라 불러주고 응석을 부리려 하고 있었다. 아치 아기처럼 자신의 품에 기대 천진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면서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고 맹목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직접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거짓된 관계이지만 누군가의 오빠가 되어 이토록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놀라움이고 감격이었다. 오수가 문희선이 오영을 찾아간 것을 알고 바로 달려가 그녀의 뺨을 올려붙인 것도 비록 거짓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비로소 찾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 더 컸을 것이다. 만일 문희선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면 오영과의 관계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오영은 자신을 필요로 한다. 문희선 또한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박진성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그의 옆을, 뒤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을 아들이라 불러주는 박진성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좀더 아들로써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는 또한 사람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반성은 나아갈 의지와 의욕을,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것은 그리고 오수 자신에게도 누구보다 필요한 것은 오영 그녀다. 그녀만큼은 절대 배신할 수 있다.

금고털이는 범죄다. 남의 재산을 무단으로 가로채려하는 것은 또한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 대한 배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돈을 노리고 동생에게 접근한 오빠만은 되고 싶지 않다. 돈을 노리고 동생에게 접근해서 끝내는 그 동생의 목숨까지 노리는 파렴치한 오빠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 금고털이는 차라리 세상에 죄를 짓는 것이지만 끝까지 오영을 속이거나 그녀에게 직접 해를 끼쳐 돈을 얻어내려는 것은 오영의 믿음에 죄를 짓는 것이다. 박진성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오수는 선택한다. 차라리 세상에 죄를 지어 범죄자가 될지언정 마지막 순간까지 오영의 오빠이고 싶다.

차라리 그쪽이 편하다. 여자 오영과 남자 오수보다는. 기대가 불안을 불러온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기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자기를 더 이상 오빠로 여기지 않게 된다면 어찌하나. 그녀의 오빠일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가. 배신자보다는 나쁜놈이 낫다. 상처를 주더라도 믿음을 배신한 것보다는 처음부터 순수하지 않은 목적을 가진 나쁜놈인 쪽이 더 낫다. 약해졌다. 그리고 독해졌다. 성급해졌고 그것이 그를 위기로 내몬다. 설마 그곳에서 하필 왕혜지(배종옥 분)와 마주치게 되다니.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다시말해 누구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다. 저들은 자신을 사랑하는가? 저들은 과연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주는가? 자기란 저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것은 자존감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된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다. 울 수조차 없었다. 웃지조차 못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나날들을 그저 죽지 못해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자꾸 자기를 들쑤시지 못해서 안달이 난 듯한 오빠 오수가.

시험하고 싶다. 아니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빠에게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배신이 두려워 의심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속해서 구원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도와달라. 살려달라.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을수록 더욱더 오빠에게 매달렸고, 그녀의 죽여달라는 말은 단지 살려달라는 어린 동생의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오빠는 자신을 돌아봐줄 것이고 자기를 구원해 줄 것이다. 비로소 눈물을 펑펑 흘린다. 그동안 흘리지 못했던 눈물들을 한꺼번에 봇물처럼 몰아 흘리며 오빠를 다짐시킨다. 다만 한 사람 자기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오빠로 남아있어 달라고.

물론 드라마이다 보니 모든 것이 그렇게 뜻한대로 순탄하게만 풀려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살아도 되는 이유를 가지게 되는 사이 그들을 사이에 두고 주위 또한 바쁘게 흘러간다. 조무철(김태우 분)의 증오와 박진성의 우정이, 문희선의 사랑이, 왕혜지의 집착이, 그리고 이명호의 야망이. 오수와 오영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거짓과 기만에 의해 시작된 그들의 사이는 균열과 뒤틀림을 예고하게 된다. 오수에 대한 조무철의 악의가 오영마저 노리게 되고, 조무철과 오영으로부터 오수를 지키고자 하는 박진성의 진심은 또다시 오수로 하여금 비틀린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다. 오수가 오영의 금고를 털고자 숨어든 모습을 목격한 왕혜지와 다른 여자가 있음에도 야망을 위해 오영을 잡으려 하는 이명호의 욕망은 오영을 한방향으로 계속 내몰게 된다. 그들은 과연 되찾은 순수 만큼이나 마침내 행복할 수 있을까?

왕혜지가 그토록 오영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나온다. 오영의 아버지 오대표를 사랑했다. 그의 여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오대표는 왕혜지에게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순간의 충동이었고 잠시의 필요였다. 그녀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한 남자의 여자이지도, 여자로서 한 아이의 엄마이지도 못했다. 그런 자신을 동생은 경멸하며 비난하고 외면하고 있다. 집에조차 찾아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그녀가 가질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렇게 그녀 또한 오영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오영이 아무것도 못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기력한 채로 남겨진 것은 그런 오영이 -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오영이 그녀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고대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의 왕자는 갈파하고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희망도, 절망도, 기대도, 좌절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간다. 기대고 기대하며, 쓰러지고 괴로워하면서도, 겁먹고 주춤거리다가도 작은 한 가닥 줄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선다. 산다는 이유란 그렇게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왜 사는가? 과연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아있기에 살고 죽을 수 없기에 산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이유를 찾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운명이라 말한다.

오해가 풀리고 갈등이 해소된다. 관계에 진전을 보인다. 이대로 드라마가 끝날 리는 없다. 진소라(서효림 분)가 오수를 찾고 있다. 조무철은 여전히 오수를 노리고 있다. 이명호의 야심이 드러난다. 왕지혜와 오수의 갈등 또한 본격화된다. 오수를 사이에 두고 문희선이, 다시 문희선을 사이에 두고 박진성의 감정이 엇갈린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울기 위한 전단계였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 표정없이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 말했을 때는. 아무런 느낌 없이 오빠 오수의 이야기를 하며 이명호와 술자리를 가질 때도. 그리고 오수에게 전화를 건다. 오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더 큰 비극의 전조일 것이다. 어차피 거짓에 의해 만들어진 파국을 예고한 그들의 관계였을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감정의 선이 섬세하다. 작은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있다. 한 가지 표정만 짓고 있는 캐릭터가 한 사람도 없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해체된 감정의 조각들이 겹치고 맞물려 아름답지만 기괴한 그림을 그려낸다. 이것이 삶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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