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25 08:43

남자의 자격 "남의 카드로 수백만원대의 혼수를? 공감이 사라지다."

일상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에 TV 너머와 이쪽의 차이만 확인하고 말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일단 재미있었다. 결혼이라고 하는 중대사를 앞둔 윤형빈, 정경미 커플과, 이들 예비부부를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이 왁자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의미도 있었다. 역시 결혼식이란 결혼하는 당사자 만큼이나 주위에서 더 즐거운 이벤트일 것이다.

축하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들떠있을 그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짓궂은 농담이나 장난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있을 그들에 대한 질투이며 긴장해 있는 그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그렇게 당사자만큼이나 설레고 긴장하며 그 순간을 함께 즐기려 한다. 행복을 빌어주고 그 순간의 기쁨을 함께 공유한다.

하지만 아쉬웠다. 아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예능이다. 재미있어야 한다. 기왕에 제작진이 멤버들의 카드를 걸고 게임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게임에서 승리한다면 멤버들이 카드를 사용해서 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게 될 자신들을 위한 혼수를 장만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왕에 멤버들의 카드를 사용해 혼수를 장만하는 것 - 아니 게임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보다 카드의 주인인 멤버들 자신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당장 윤형빈, 정경미 커플이 골라온 250만원짜리 커피머신에 이경규는 짐짓 공황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250만원짜리 커피머신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기는 연예인들인 것일까? 보통의 서민들과는 어쩌면 씀씀이부터가 다를 것이다. 160만원짜리 김치냉장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310만원짜리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일 것이다. 아니 부모의 도움을 받더라도 형편이 넉넉지 않다면 혼수 역시 그에 맞춰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식을 준비해야 그런 고가의 혼수를 준비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남의 카드를 빌려 혼수를 장만하면서도.

과도한 혼수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도 꽤 오래되었다. 더 이상 자신들만의 힘으로 혼수를 장만할 수 없으니 당연히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자신들의 부모들만을 바라보게 되고, 그것이 다시 부모세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혼수로 인한 갈등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저 필요한 만큼. 형편에 맞게. 그래서 새삼 깨닫게 된다. 연예인이란 어쩌면 TV앞에 앉은 보통의 서민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이 아닌가.

아마도 저리 쉽게 다른 사람의 카드로 수백만원대의 혼수를 장만할 수 있는 강심장은 최소한 필자의 주위에는 없는 듯하다. 예능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저들의 이야기다. 철저히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남의 카드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비싼 제품을 고를까를 고민하고, 심지어 카드의 한도를 초과한 제품을 골라서는 그 앞에 내려놓고 알아서 해결하라 말한다. 과연 이런 모습 어디에 그동안 <남자의 자격>이 내세워왔던 '공감'이 있겠는가. 그들의 이야기일 뿐.

기왕에 예능이다. 예능이라면 어느 정도 예능적인 연출도 필요하다. 보통의 부부들은 과연 어떻게 결혼을 준비하고 혼수를 마련하는가? 결혼을 앞둔 많은 예비부부들이 가장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한정된 예산 안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혼수의 목록을 뽑아보는 것도 한 재미였을 것이다. 팀을 나누어 일정한 예산을 주고 그 안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장만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더 규모있게 그러면서도 요긴하게 예산을 활용하고 있었는가. 그때 경험자들의 조언 역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충분히 재미도 있었을 수 있다.

토크는 재미있었다. 특히 부부간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조사해서 순위를 매겨놓은 것은 실제 결혼식장에서 이경규가 들려준 주례사와도 매치되며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었다. 독립된 인격체로써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차라리 지라. 차라리 거리를 두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강요하려 하지 말라.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난 선배의 진심어린 조언이었을 것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이며 진실함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도 이경규는 개그맨으로서의 본능을 잃지 않는다. 의미있고 깊었으며 또한 가장 진솔한 충고이고 조언이었다.

최근 부쩍 두드러지기 시작한 <남자의 자격>의 문제와 한계가 역시 노골적으로 드러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물론 윤현빈과 정경미 커플의 결혼은 축하할만한 경사였다. 제법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시청자와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남자의 자격>만의 특징은 많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재미를 우선하지만 그것이 꼭 공감대가 아닌 관람객으로 시청자를 몰아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막장드라마가 후련하고 재미가 있다.

리얼버라이어티란 관객이 아니다. 시청자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프로그램속 인물들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를 통해 공감과 만족을 얻는 것이다. 마치 실제처럼. 실제의 결혼이 어쩌면 전혀 모르는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문제일 것이다.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었다. 아깝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