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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14 11:30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 나 살아있으니까 살고 싶다!"

버림받은 이들의 처절한 갈구, 무의미와 무가치가 이유를 찾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기를.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를. 존경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또한 자신이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여기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도 아침에 눈 떴으니까 살고 숨쉬니까 살고... 왜? 사는 의미가 없는 놈은 살면... 안돼? 이렇게 사는 게 쪽팔린 거면 난 지금 쪽팔린 건데, 그래도 말이다 희선아... 나 살아있으니까 살고 싶다!"

오수(조인성 분)의 처절할 정도로 비루한 이 짧은 대사야 말로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사는 의미란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는 이유와 목적따위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 그렇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되든 자기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고. 그러나 조무철(김태우 분)의 칼이 자신의 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주저없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삶을 선택하고 만다.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사고로 죽은 동생을 대신해 그 가족을 속이는 비참하고도 비굴한 선택을 하고 만다. 어째서일까?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조차 결국은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살고 싶었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었다. 버림받았음에도. 낳아준 어머니에게서까지 버림받은 한심한 자신임에도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와 목적을 찾고 싶었기에 그래서 이유도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던 터였다. 사기를 치려던 대상인 오영(송혜교 분)에게 그가 자신도 모르게 먼저 손을 내밀고 만 이유이기도 했다. 그 순간 오영은 간절히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까.

오영 역시 오수와 같았다. 오수는 어머니에게 버려져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의 이름의 수자는 그가 버려졌던 보육원 근처의 나무를 뜻한 수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한 번 어머니가 자신을 보러 온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도 고작 몇 만 원 손에 쥐어준 채 어머니는 도망치듯 자기에게서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에게 자기란 그런 존재다. 어머니에게 자신이란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찾고자 한다.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를. 자기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자기가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찾고자 그는 그렇게 방황하며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영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오영의 친오빠 오수는 자기가 어머니와 함께 동생 오영을 남겨두고 떠나왔다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선택되어 어머니와 함께 오영을 아버지에게 남겨두고 떠나왔다. 그래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보육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기구한 자신의 삶에도 대기업의 오너인 아버지의 밑에서 귀하게 자라고 있을 여동생에 대해 오히려 걱정하며 오빠로써의 책임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에 비해 집을 나서는 엄마와 오빠의 뒤를 무작정 울며 쫓아가야 했던 오영의 절망과 좌절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버려졌다. 오빠로부터 남겨졌다. 아버지에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오영은 짐짓 강한 자신을 연기해 보이려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주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더구나 앞을 보지 못한다. 남들처럼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또다른 큰 좌절로 다가온다. 더욱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그녀는 점차 자신의 주위에 성을 쌓아간다. 두껍고 높은 성을 쌓아 주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내면은 집을 나서던 엄마와 오빠의 뒷모습을 울며 쫓아가던 작고 어리던 여자아이의 그것에 머물러 있었다. 속옷을 갈아입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문을 닫는 오수의 모습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이유다. 그동안 그녀가 기다려 온 것이었다.

오영이 오수에게 냉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빠의 존재를. 오빠의 다정함에 기대는 자신을. 그런 오빠에게 기대고 응석을 부리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벽이 한순간에 허물기에는 너무 높고 단단했다. 어색하다. 무엇보다 불안하다. 혹시라도 오빠가 다시 자기를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어쩌면 오빠는 동생인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불안은 의심이 되고 의심은 확신이 되어 망상 속에 그녀는 끝없이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오수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히 바라기에 그녀는 그렇게 응석을 부리듯 짐짓 독하게 오수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들이 만난다. 하기는 오수(서효림 분)를 함정에 빠뜨리는 진소라 역시 오수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문희선(정은지 분)의 언니 희주 또한 오수에게서 버림받고 오토바이사고로 죽고 말았다. 박진성(김범 분)은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오수가 최악의 궁지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그만은 팔이 빠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와중에도 오수를 위해 당당히 김사장에 맞선다. 그는 어쩌면 바보같다. 그가 희선과 더불어 유일하게 오수의 곁을 지키는 이유일 것이다.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에게는, 그리고 오영의 약혼자 이명호(김영훈 분)에게는 과연 어떤 아픔들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들은 간절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 오수는 오영에게서 비로소 살아갈 이유를 발견한다. 오영은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주는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 비록 자신이 아닌 이미 죽은 그녀의 친오빠 오수지만 자신의 존재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애써 강한 척 하면서도 오영 또한 더 이상 강해지지 않아도 되는 오빠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럼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이 가장 믿지 못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그들은 이끌리고 만다. 서로의 상처가 본능처럼 서로에게 이끌리도록 만들고 만다. 조무철의 악의와 왕지혜와 이명훈의 비밀이 그들과 만난다.

일본드라마가 원작이라고 했다. 첫회를 보는 순간 바로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스산할 정도로 외롭다. 인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파편화되어 고립되어 있다. 그런 만큼 서사나 관계보다는 파편화된 개인의 내면에 집요할 정도로 깊이 파고들려 한다. 노희경 작가의 깊이있는 관조가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드라마를 살려낸다. 어느새 연륜을 느끼게 된 조인성의 연기는 원작의 와타베 아츠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송혜교는 여전히 아름답다. 품위가 느껴진다.

여러 장의 정지된 사진을 연속으로 보는 듯하다. 그만큼 영상과 동선들이 깔끔하고 미려하다. 다만 한국드라마 특유의 질척거리는 치열함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이 예쁘다. 약간의 느끼는 아쉬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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