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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12 09:37

야왕 "그녀를 죄짓게 하는 것들, 경계에서 멈추어 버리다."

막장과 명작의 경계에서 한 말을 내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다.

▲ 사진제공=베르디미디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쯤되면 드라마의 마지막에 캐릭터가 하나 추가되어야 할 듯하다. 죄와 증오로써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앞에 누군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한 바다."

그는 어쩌면 신일 것이고, 혹은 신에 준하는 초월적 존재일 것이다. 우연히 딸 은별을 죽게 만들고, 백도경(김성령 분)의 말 리사를 죽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하류(권상우 분)의 친형 차재웅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모두가 누군가 의도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연히 운이 나빠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연들이 마치 필연처럼 주다해(수애 분)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어느새 죄인이 되어 간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아니 설마 잠시 풀어놓았다고 트럭에 치여 죽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백도경의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백도경인데 그런 백도경이 아끼는 말이 주다해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죽는다. 그 후폭풍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단지 하류의 집을 직접 찾으려는 백도경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고자 백도경이 가장 아끼는 말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죽고 말았다. 심지어 고모 백지미(차화연 분)는 말을 죽인 것이 주다해라 단정짓고 있었다.

차재웅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류라고만 생각했다. 하류와 쌍동이로 똑같이 생겼기에 하류라 생각하고 납치하여 단지 위협을 하려 했을 뿐이었다. 설마 하류에게 쌍동이 형이 있었고, 그 형이 출소하는 하류를 마중하기 위해 엄상도(성지루 분)와 함께 교도소 앞을 지키고 있었으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필 하류를 납치해서 다시는 주다해의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손봐주려는 순간 하류라 생각한 차재웅의 머리 아래에 뾰족한 돌이 튀어나와 있었으리가고 미처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정작 차재웅을 주먹으로 내리친 당사자인 주양현(이재윤 분) 자신이 흥건히 흐른 피에 더 놀라고 있었다. 주다해가 받은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물론 그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기적인 좋지 못한 의도로 그리 하려 했던 것이었다. 엄연히 타인의 말인데 임의로 풀어 놓아주었다. 아무리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는 하지만 강제로 납치하려 위협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말을 죽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 하물며 죽은 사람이 죽은 딸의 아빠이며 자신에게는 은인인 사람이다. 더구나 그 일로 인해 하류와는 완전히 원수가 되어 버린다. 최소한 차재웅의 죽음과 관련해 주다해에 대한 하류의 증오는 정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다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었고 오해였다면?

악의적이다. 그야말로 두 사람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리 몰아가려는 듯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하기는 필션일 것이다. 작가에 의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쓰여지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결론지어지든 뒷맛이 개운할 리 없다. 하류의 복수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향한 목수인가? 은별은 사고로 죽었다. 차재웅의 죽음 또한 사고였다. 무엇을 가지고 어디까지 주다해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는가? 주다해는 어디까지 자신의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할까? 자꾸 악역이어야 할 주다해를 연민하게 된다. 차라리 누군가 초월적인 존재가 드라마에 등장해서 정리해주는 쪽이 옳을 듯하다.

"이 모든 것이 곧 나의 의도이며 의지다. 내가 그리 만든 것이다. 너희는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했을 뿐."

모든 죄와 모든 증오와 모든 분노가 그에게로 향하도록. 사람에게는 사람이 지은 죄만큼. 그 죄에 대한 댓가만큼. 모자라도 문제지만 넘쳐서 좋은 것도 아니다.

역시 수애라는 배우가 대단한 배우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모와 연기가 모두 받쳐주는 몇 안되는 톱클래스의 젊은 여배우일 것이다. 한 마디로 톱스타다. 톱스타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예우가 뒤따르게 된다.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 스타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데 그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듣거나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해서야 모두에게 손해일 것이다. 드라마의 입장에서도 스타의 이름값이 필요하고, 배우의 입장에서 드라마는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굳이 배우가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배려해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공중파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보편의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시청자 일반이 상식으로 여기는 가치와 규범의 선을 너무 넘으려 해서는 반감만 살 뿐이다. 특정하지 않은 보통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 있어 그 표현의 폭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자신이 직접 댓가를 지불하고 구입하여 소비하는 만화나 영화 등의 장르와는 다르다. 아무리 막장이네 뭐네 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지금 주다해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자칫 선을 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사실 이쯤 되었으면 죄에 짓눌려 점차 변해가는 주다해의 모습이 나와주었어야 한다. 죄에 치이고 짓눌린 나머지 스스로 죄로 빠져들은 숙명적 모습과 그로 인해 변해가는 악녀로서의 주다해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말이 죽은 것은 우연이었다 할지라도 차재웅이 죽는 것은 하류를 죽여서라도 자신을 지키려는 주다해의 나약한 이기와 비겁한 악의에 의한 것이었어야 했다. 하류의 주다해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그로 인해 정당성을 얻는다. 하류의 복수가 당위를 갖는다.

그러나 여전히 주다해는 우연에 의해, 마치 운명에 떠밀리듯 죄에 쓸려가는 나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닌 죄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선량한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래서야 주다해에게 복수하려는 하류만 우스워진다. 그렇지 않아도 은별의 죽음에 대해서는 주다해에게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 내러티브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주다해는 악녀여야 하고 복수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철두철미하지 못하다.

아쉽다. 더 재미있어질 수 있었다. 더 깊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리며 필요한 한 조각을 놓치고 만다. 어설프고 미묘하다. 그럼에도 하류는 주다해를 죄인이라 여기고 복수를 하려 한다. 주다해 자신도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고 자신을 놓아버리려 한다. 가엾다. 드라마가 가엾은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속 사람들이 가엾은 것인지.

애매하다. 목이 마른데 수통에서는 물이 나오다 만다. 샤워를 하는데 비눗기만 겨우 가시니 물이 끊기고 만다. 일단 목은 축였으니 어떻게든 당장의 갈등은 해소된 듯하다. 그러나 그 찜찜한 안타까움은 무엇인가? 명작과 막장의 경계란 그렇게 위험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고 멈춰버린 아쉬움만은 못할 것이다. 기대가 컸던 탓일 것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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