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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3.02.08 05:31

[리뷰] 영화 남쪽으로 튀어, '정말 극장 밖으로 튀고 싶게 만드는 영화'

이 시대착오적인 영화를 보라. 개연성없는 캐릭터가 가장 큰 문제.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남쪽으로 튀어

감독: 임순례
출연: 김윤석, 오연수, 김성균, 한예리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며,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이자 자유인 최해갑.(김윤석 분)국민연금이나 세금납부는 물론 공과금납부조차도 국가의 간섭과 자유침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인기없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나름 매니아적인 소수의 팬클럽도 보유하고 있고,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다.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위험인물로서 공안요원들로부터 늘 감시를 받는다. 젋었을 때 별명이 체 게바라일 정도로 과격한 투사인 해갑은 들섬에서 올라온 고향후배 만덕(김성균 분)이 국회의원 김하수(이도경 분)를 테러하는 사건에 연루돼 가족들과 함께 남쪽(들섬)으로 떠나게 된다. 가족들은 점차 섬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고 자연 속에서 순박한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던 중 뜻밖의 일에 봉착하는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모순적인 인물 최해갑.

한 때, 화염병의 완만한 포물선과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익숙하던 시절이 있었다. 40대 이상의 국민들에게는 독재타도, 유신반대, 호헌철폐, 이러한 구호들이 아직도 귀에 메아리치고 있을 것이다.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그 시절의 지식인들은 이제는 현실에 안주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기득권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투쟁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그 시절에 살아가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최해갑이다. 같은 운동권 출신으로 화염병을 던져대던 투사 안봉희(오연수 분)와 결혼해 민주, 나라, 나래 세 남매를 낳고는 방치에 가까울 정도의 교육을 한다.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이기를 거부하며, 어떠한 간섭과 구속도 용납하지 않는, 공권력과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인 해갑이 아이들의 이름을 민주나 나라라고 지은 것은 아이러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소설에서의 전공투 세대의 화신 주인공 이치로와 과거 [우중산책],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실제 모습이 이 영화에서 해갑의 캐릭터에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영화 수준의 머물러 있는 임순례 감독.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주체적인 권리라 당당하게 부르짖는 시대착오적이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 최해갑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인물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영화, 어딘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유기농 초콜렛에 익숙해진 우리 입에 어렸을 적 설탕을 태워서 먹던 달고나가 들어올 때 느끼는 그러한 낯섦과 불편함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영화 점유율이 50프로를 넘으며 극장에 가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태가 되었다. 요즘 세상에서 아직도 한국영화를 방화라 부르며 폄하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제는 소위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만듦새를 자랑하는 웰메이드 한국영화들이 넘쳐나는 판국에 90년대 감수성을 80년대의 영화적 시선으로 찍어대면 어쩌자는 것인가? 사실 이 영화를 보면 영화적 문법이 투박하다기보단 아예 문법 자체가 상실된 느낌이다.

 
 

일단 시나리오가 문제다. 밋밋하고 개연성 떨어지는 플롯과 설득력 제로의 인물들은 관객들에게 당혹감마저 안겨준다. 만덕과 들섬 순경은 그렇다 치자. 요즘에도 그러한 순박한 사람들은 있을 수가 있으니깐. 그러나 국정원 비밀 요원 이 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지나치게 착하고 순진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인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건 아니어도 너무 아닌 거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국회의원과 권력의 하수인 청년회장, 형사반장 등은 장르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인데 반해 공안요원이나, 아이들, 봉희, 민주의 담임선생 등은 비현실적이며 착하다 못해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져 영화 속 캐릭터들 간에 이질감과 불균형이 느껴진다.

또한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캐릭터인 해갑도, 한국 영화사상 유일무이한 인물이 아니라 기존의 건들건들하고 넉살좋은, 소위 먹물 양아치 캐릭터와 큰 차별점을 느낄 수가 없다. [완득이]에서의 김윤석과 [남쪽으로 튀어]에서의 김윤석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지나치게 호흡이 긴 편집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보는 내내 마음 속으로 ‘컷’,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게 만든다. 롱테이크나 풀샷이 어떠한 영화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영화들도 있지만(분명히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나쁘지 않았다) 이 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분명히 장르영화이다.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아니란 말이다. 분명히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감독이 그렇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우.생.순]에서 우리가 느꼈던 실망감과 상통한다.

 

영화 속에서 해갑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부수며, 더 이상 국가로부터 호구취급을 받지 않겠다며 텔레비전 수신료는 물론 전기요금까지 내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임순례 감독이 우리들을 호구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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