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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04 09:10

남자의 자격 "불쌍한 친구들과 웃음의 이유..."

슬픔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웃음의 위대함을 보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래 희극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과 같을 것이다. 내 일이면 비극이지만 남의 일이면 희극이다. 혹은 내 일이기에 희극이며 남의 일이기에 비극이다. 당장 이번주 <남자의 자격 - 불쌍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그렇다. 과연 자신이 윤정수나 홍인규의 입장에 있었더라도 그렇게 기분좋게 웃을 수 있었겠는가.

우연히 길을 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을 본다. 그 모습이 자못 우습다. 하지만 정작 넘어지는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신경써서 차려입고 나선 길에 온몸이 알록달록한 페인트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무심코 웃어 버린다. 그러나 역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고 울 것만 같은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사자마저 웃어버린다면 모두는 부담없이 마음껏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코미디다.

코미디가 갖는 힘일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였어도 긍정하며 웃을 수 있다. 어떤 절망과 좌절이 닥치더라도 낙천하여 웃으며 넘길 수 있다. 페이소스라 부른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해학이라 부를 것이다. <흥부전>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착한 흥부가 복을 받고 욕심많은 놀부가 벌을 받는다는 고전적인 권선징악의 주제보다, 오히려 비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극한의 가난 속에서도 넉살을 잃지 않는 흥부와 흥부 가족의 모습에서 어떤 통쾌함마저 느끼게 되는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고 또한 웃을 수 있다. 물론 흥부와 흥부 가족 당사자의 입장은 또 다를 것이다.

어찌보면 악취미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남의 불행을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삼는가? 그래서 이성욱이 떨어졌다. 이성욱이 들려준 사연 또한 나름대로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긍정하지 못했다. 낙천으로 승화시키지도 못했다. 타자화시킨다. 그것을 웃음으로 바꾼다. 코미디언이란 가장 위대한 직업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기는 이유다. 예능이 대세를 이룬 이유일 것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만 여기지도 않는다. 보증을 잘못서서 전재산을 날리고서도 그것을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고, 불우했던 어린시절이나 지금의 모습을 소재로도 어떻게든 사람을 웃기려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웃을 수 있다. 그들 스스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으니까.

처절하기조차 하다. 고정도 아닌 일회성 이벤트다. 여기에서 합격한다고 무언가 크게 좋아지는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기는 그래서 우습기도 하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우스워지려 하고 있었다. 필사적이었다. 이나마라도 기회를 부여잡기 위해 모두는 필사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역시 이성욱은 가수였다. 김태원의 부재가 참으로 아프다. 가수로서 매우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예능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슬프고, 또는 아프고, 그러면서도 남의 일이기에 안심하며, 그것을 웃음으로 삼을 수 있는 출연자들에 함께 후련하게 웃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것따위. 그런 일들 따위. 내 일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떨어지고 나서도 오히려 넉살을 잃지 않으며, 무려 4시간을 기다려 다시 기회를 노려 도깨비의 역할을 따내고 말았다. 그런 게 웃음 아니던가. 그렇게 사람은 언제나 웃을 수 있다. 이것이 김수용의 예능이고 코미디다.

드디어 창극 <흥부전>을 무대에 올리려 한다. 지루할 수도 있는 연습기간이 이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흥부처를 뽑고, 흥부의 아들을 뽑고, 그때마다 주제를 달리한다. 매력적인 여성들과 그리고 우울하기만 한 남자들. 그들을 가운데 놓고 마음꼿 웃고 놀며 즐긴다. 그렇다고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자 바쁜 와중에도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배우고 익히는 모습들이 그 열기가 TV너머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실력도 일취월장하여 '불쌍한 친구'들을 소개할 때도 그 모습들이 제법 그럴싸했었다. 지금은 더 나아졌으리라.

기대가 된다. 물론 아마추어다. 심지어 초보들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해서 올리는 무대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다. 전혀 전문적이지 못한 더구나 급조한 무대지만 그래서 더 국악은 벽을 허물고 우리들 자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 게다. 그를 위한 미션이 아니었겠는가. 국악은 그리 멀지도 어렵지만도 않다. <남자의 자격> 자신처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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