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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3.02.05 09:37

[리뷰] 베를린, '다기망양' 액션과 드라마 사이에서 길을 잃다

진일보한 액션 신과 스타일의 성취는 이뤘으나, 한국형 액션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한국형 웰메이드 액션 영화. 그러나...

거대한 국제적 음모가 숨겨진 운명의 도시 베를린. 국가정보원 요원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비밀 요원 ‘고스트’, 북에서 온 암살자, 거대한 국제적 음모와 각 국 정보기관 사이의 암투와 혈전.

이런 단어들만 들어도 뭔가 근사한 한국형 웰메이드 액션 영화 한 편이 탄생할 듯하다. 게다가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게다가 전지현이라니! 또 감독은 누구인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인상깊은 데뷔를 한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 [주먹이 운다], [짝패], [부당거래] 등의 영화로 한국 액션 영화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류승완 감독이 아닌가? 상반기 가장 기대되는 한국영화 중 한 편이었던 [베를린]은 뚜껑을 열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개봉 3일만에 백 만 관객 돌파라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우선은 [아저씨]에서 이미 한 번 봤던, 간결하고도 파워넘치는 한국형 격투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본 시리즈나 기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장면들을 모방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하정우와 북한 특수요원과의 1대 1 맨손 격투 장면이나, 유리가 깨지고, 팽팽했던 와이어가 풀리며 더욱 더 긴장감을 자아내는 추락 신은 칭찬할 만하다. 총격전 또한 기존의 한국 영화와는 달리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연출해 내었다. 세계시장에서도 통하는 웰메이드 액션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과 북의 대치상황, 그리고 세습으로 인한 북의 최고 권력자의 교체, 베를린이라는 제 3의 공간, 북한군 내의 암투 등의 첩보 스릴러 영화로서의 군침도는 소재들이 영화적으로 적절히 사용되지 못하고 [본 시리즈]나 [007 시리즈]의 모방이면서도 그것들과는 차별화되지 못한 어정쩡한 작품이 되고야 말았다.

 

사회 드라마와 신파의 덫에 빠지다...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 분)는 국제 무기 밀매 현장을 감찰하던 중 일명 ‘고스트’ 표중성(하정우)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를 쫓는다. 임무의 실패 책임을 묻기 위해 북에서 동명수(류승범 분)가 베를린으로 오게 되고, 표중성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음모의 배후를 파헤치려는 와중에 아내 련정희마저 반역자가 아닐까 의심하며 심각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초반 무기밀매 현장에서 표중성이 휴대폰을 통화중으로 해놓은 채 상대방의 대화를 도청하는 장면부터 관객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요즘 세상에, 게다가 날고 기는 북한 특수요원이 테러리스트들과의 무기밀매 현장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통화상태로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으며 도청을 한단 말인가? ‘어라, 이게 아닌데, 뭔가 이리 어설프지?’ 그렇다면 혹시 감독은 일부러 그런 장면을 설정한 것인가? 서스펜스를 위해? 관객으로 하여금 표중성이 도청행위를 상대방에게 들키게끔 만드는? 그러나 표중성이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놓고 태연히 화장실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친절하게 모든 정보를 표중성과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휴대전화의 존재자체를 망각한 듯, 관객의 우려가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무기밀매 현장은 국정원 요원들과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 일당에게 급습을 당하게 되고 표중성은 급히 도망친다. 그리고 이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냉혹한(아니 반드시 냉혹하고 프로페셔널해야 한다) 킬러(?) 동명수가 베를린으로 온다. 사실 이 장면에서부터 뭔가 긴장이 풀어지고 관객들은 의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차 안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첫 등장과 달리 그가 소매치기를 죽이는 장면은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그의 주특기인 독살)이었으며, 그 이후, 피비린내 나는 긴장감이 돌아야 하는 베를린은 사실 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북의 세대교체 이후 군 고위 장성들 간의 세력다툼과 배신, 음모 등이 펼쳐져야 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대사(이경영 분)와 련정희의 이념에 대한 갈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정치인들과 현장 요원과의 갈등이라는 전형적인 컨벤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루하게, 그리고 뻔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베를린]은 화려한 액션장면과 아우라 충만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액션 장면 하나 없었던 한석규의 전작 [이중간첩]보다 더 장르적인 긴장감이 없다. 굳이 정진수는 표종성에게 연민을 느껴야 했으며, 표종성과 련정희의 관계가 신파로 흐르게 만들어야 했을까? 동명수를 그냥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전문 킬러로 했으면 안 되었을까? 전향, 임신, 도피. 이런 키워들이 꼭 영화 속에 등장했어야 하나? 흔만 할로 감정을 따라가지 말고, 본능에 충실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련정희인데,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수동적이다. 사실 련정희 역할은 굳이 전지현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캐릭터인데 왜 굳이 전지현이 출연했는가는 크나큰 의문이다. 단순한 흥행을 위해서? 류승범도 자신의 전작들에서 연기했던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영화 내내 그의 잔인한 웃음에서 냉혹한 정보요원이라기보다는 뒷골목 양아치의 모습과 비리검사의 모습이 중첩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굳이 배경을 베를린으로 할 필요가 있었으며, 주인공들을 북한 특수요원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재미난 것은 전혀 북한군 같지 않은 어설픈 대사와 어색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007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군으로 연기한 릭 윤과 윌 윤 리, 증강(심지어 그는 중국사람이다!)이 더 북한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의 [007 시리즈]가 전후 냉전상황이나 테러리즘 같은 국제 정세들을 영화적으로 시의적절하게 잘 활용했던 것에 비해 [베를린]은 김정일의 사망 이후의 북한 실정, 남과 북의 관계 변화 등의 세태를 영화적으로 잘 녹여내지 못했다. [부당거래]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데에 큰 관심이 많다. 아마도 그러한 의도가 영화 속에서 과도하게 투사되다 보니, 그러한 주제들이 영화 내 내러티브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측 관계자가 표종성의 거취문제를 놓고, 한국이냐 제 3국이냐를 고심할 때에는 학창시절 [광장]을 읽은 관객이라면 누구나 실소를 금하지 못할 것이다. 굳이 이런 장면까지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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