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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2.01 15:03

대풍수 "정몽주의 죽음과 조선왕조에 흐르게 될 피의 예고"

실제역사와 너무 다른 어설픈 선죽교의 장면이 드라마의 한계를 보여주다.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래 정몽주와 이성계(지진희 분)는 매우 돈독한 관계였었다. 이미 동북면에서 삼선과 삼개가 난을 일으켰을 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거니와, 이성계의 승전 가운데 유명한 아지발도와의 전투에서도 탁월한 군략으로 크게 공을 세우고 있었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도,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킬 때도, 그리고 공양왕을 즉위시키기까지 정몽주는 이성계와 정도전 등과 같은 입장에 있었다. 피폐할대로 피폐한 고려의 내정을 일신하기 위해서는 그같은 극단적인 처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정몽주와 이성계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공양왕이 즉위한 이듬해 아직 조정에 남아있는 반대파를 일소하기 위해 이성계와 그 일파가 꾸며낸 윤이와 이초 사건이었다. 윤이와 이초라는 이가 명조정까지 찾아가 이성계의 역심을 고발하고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하는 내용으로써 이는 이성계로 하여금 조정내 반대세력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정몽주는 공양왕의 명을 받들어 그같은 이성계 일파의 무차별적인 숙청작업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정몽주가 바란 것은 고려의 개혁이었지 권력을 쥐기 위해 피를 부르는 숙청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고초를 겪었다.

정몽주가 공양왕의 편에 서서 이성계와 대립하게 된 이유였다. 물론 고려왕조를 무너뜨리려는 특히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과격파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고려를 일신하겠다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마는 현실에 대한 회의였다. 그리고 그같은 입장의 차이가 가장 친한 친구이며 동지였던 그들이 다시 서로 죽고 죽이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성계가 낙마하여 몸져눕고 정몽주가 그 틈을 노려 이성계 일파를 공격했을 때 이성계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고려의 모든 실권은 이성계와 그 일파에게 있었고 정몽주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게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정몽주의 힘은 다름아닌 그동안 이성계와 함께 여러 전장을 떠돌며 쌓아온 군부내 인맥에 있었다. 모두가 우선해서 이성계를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성계가 물러났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로 정몽주 자신이었다. 이성계가 병으로 누웠을 때 정몽주가 전에없이 강력한 추진력으로 이성계 일파를 몰아붙일 수 있었던 근거였다. 이성계에 반대하는 세력은 물론 이성계를 추종하는 무리들 가운데서도 정몽주를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을 때 이성계가 불같이 화냈던 것은 따라서 진심이었다. 설사 서로 입장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정몽주는 이성계의 가장 오랜 벗이자 동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그같은 역사적 사실따위 아주 대놓고 무시해 버린다. 어차피 목지상(지성 분)이 정도전과 정몽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성계에게 군략을 건의하는 것도 목지상이고 조선건국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목지상이 역할이다. 따라서 목지상의 소개로 만난 이성계와 정도전의 모습이 많이 낯설다. 서로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전과 정몽주의 모습도, 이성계와 담판을 짓는 정몽주의 모습도 그래서 많이 어색하다. 어째서 정도전이 정몽주를 고려에서 가장 무서운 자라 말했는지. 어째서 정도전이 조정의 실권과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던 이성계 일파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써 대두될 수 있었는지. 심지어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는 장면마저 그래서 참을 수 없이 어설프다.

선죽교 다리 위에서 이성계와 담판을 짓고 돌아가는 정몽주를 쫓아가 이방원은 뜬금없이 하여가를 읊는다. 그리고 정몽주는 저 유명한 단심가로 그에 답한다. 원래 시조란 노래였다. 그렇게 드라마에서처럼 무미건조하게 읊어대는 시가 아니라 정해진 가락에 가사를 붙여 노래로써 부르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조영규였을 장사가 철퇴로 정몽주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은 상당히 실감이 났다. 이방원이 그렇게 무른 인물은 아니었을 텐데.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철혈의 군주가 정도전에 놀아나는 어설픈 애송이로 그려진다. 당시라면 이미 이방원도 장년에 들어서는 나이였다.

이방원과 훗날 신덕왕후가 되는 이성계의 둘째부인 강씨부인과의 관계 또한 상당히 작위적이기도 하다. 정도전이 모든 빌미가 되어준다. 이방원을 부추겨 정몽주를 죽이도록 하고, 그로 인해 이성계의 화가 이방원에게 집중되자 강씨부인을 들쑤셔 이방원을 노리게끔 만든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신덕왕후의 소생인 심지어 막내인 방석이 다른 형들을 제치고 세자로 책봉되는데 정도전이 큰 역할을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동북면에서 일족의 안정을 위해 맞아들은 본처와 개경으로 가서 살벌하기까지 한 개경의 정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맞아들인 유력한 집안 출신의 2부인과는 그 의미부터가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신덕왕후는 정도전에게 조선을 건국하기까지 동지의 입장에 있었을 것이다. 이방원과는 또다른 의미로써 여겨질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어차피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다른 부인을 자식이 어머니로 섬겨야 할 의무따위 정해진 바 없었다. 세종 대에도 세종 자신부터가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 정도로 아버지의 아내라 해서 그를 어머니로 섬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었다. 더구나 고려말이라면 아직 모계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어머니가 재가하면 그 남편을 아버지로 섬겨도 아버지가 재가하여 아내를 맞으면 그와는 전혀 남남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버지가 다르더라도 같은 어머니에서 낳온 형제가 형제이지 아버지가 같을 뿐 어머니가 다른 형제는 결혼까지 가능한 남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목지상과 이정근(송창의 분)이 영지공주를 매개로 형제로써 서로를 의식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신돈이 죽을 때도 그래서 그의 이부동복형제가 함께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니다. 아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지존의 자리에 대한 욕망과 다툼이다. 그를 위해서 신덕왕후 역시 힘을 다해 변경출신의 촌놈에 불과하던 이성계를 도왔던 것이고, 이방원 또한 이성계에 앞서 그의 정적들을 제거하며 조선건국에 앞장섰던 것이었다. 차라리 어미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고, 그래서 아무런 유대 없이 그저 거추장스러운 경쟁자로서만 여겨졌더라면. 목지상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들어감으로써 정도전마저 이렇게 작아지고 만다.

아무튼 역시나 이번에도 무리수였을 것이다. 이성계의 개경처다. 이성계가 가장 신임하는 형제로까지 여기던 부장이다. 그에 비하면 목지상은 이성계를 따르는 수많은 부하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목지상의 정혼녀와 이성계의 개경처가 갖는 무게가 같을까? 목지상의 정혼녀는 서슴없이 불태워 죽일 수 있지만 이성계의 처라면 그것이 곧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어줄 수 있다. 정몽주도 그렇게 바보가 되어 버린다.

참고로 그러면 어째서 정몽주와 같은 이들마저 당시 이성계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가.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신진사대부들에게 정신적 지주와도 같던 목은 이색이나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최영이나 모두 기존의 권문세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 또한 결국은 고려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득권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동북면의 변경출신의 촌놈에 불과하던 이성계는 개경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조야의 주목을 받던 처지였다.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보이지 않는 완고한 기득권과 아직 텅텅 비어 기회가 남아 있는 신진세력,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공양왕의 편에 서서 이성계와 대립할 때 정몽주는 이미 상당한 실력을 스스로 길러낸 뒤였다.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정몽주가 죽었다. 정몽주의 죽음은 곧 이성계와 맞설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고려의 죽음이다. 굳이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고려는 멸망하고 만다. 이제는 그 다음이다. 이인임이 예언했다. 피로써 세워진 나라에는 피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사람의 목숨마저 권력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왕 가운데 한 사람이다. 태종의 손자인 세조에 이르러 적손인 단종마저 숙부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그 도도한 피의 역사가 흘러간다.

이정근이 궁지에 몰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성계를 죽이려 한 것 때문에 우야숙이 죽으며 이성계의 부하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정몽주마저 죽으면서 공양왕에게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그의 곁에는 반야가 있다. 목지상이 그를 찾아간다. 그를 살리기 위해. 그는 살아날 수 있을까? 해인은 살아났다.

어쩌면 이성계는 자미원국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실과 관련해 전해지는 민담 가운데 하나다. 절사손장자. 제사를 모실 장손이 제 명에 죽지 못하는 저주다. 조선왕조가 이어진 600년 27대동안 과연 장자로서 왕위에 올라 천수를 누린 이가 몇이나 되던가. 자미원국은 어느샌가 드라마에서 사라져 있다. 과연. 목지상의 역할이 궁금해진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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