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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1.29 09:43

야왕 "하류의 눈물과 주다해의 오열, 가난한 그녀의 선택"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몰리듯 선택해야 하는 그녀의 절박함과 간절함.

▲ 사진제공=베르디미디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잠시 헛바람이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무언가 단단히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게다. 조금만 다잡아주면 다시 원래의 주다해(수애 분)으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별이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엄마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니었다.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닌 하류(권상우 분) 자신이었다. 그녀가 어떤 각오로 자신을 떠나고자 결심하게 되었는지. 엄마로써 그토록 목숨처럼 사랑하던 딸 한별이마저 저버리고 선택한 길이었다. 몇 번이고 혼자서 미안해하고 보고싶어 하면서도 끝내 그녀는 한별이를 찾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주다해의 울먹이는 목소리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하다. 그녀 또한 그토록 필사적이었다.

아마 하류 역시 그러한 그녀의 처지를 상당부분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류 자신도 호스트바에서 뭇여성들을 상대로 옷을 벗고 웃음을 팔지 않았던가. 몸까지 팔아야 했었다. 지금껏 주다해와 딸 한별이에게 거짓말을 해왔었다. 호스트바가 아닌 호프집에서 일한다고. 호스트가 아닌 호프집 지배인이라고. 하류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같은 사실이 만에 하나라도 밝혀진다면 더 이상 주다해와 한별과의 관계가 전과 같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그가 주다해를 위해 대학등록금까지 마련하려 할 때 달리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솔직하게 주다해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거짓이었다. 기만이었다. 하류가 말하고 있는 행복이란 그같은 거짓과 기만 위에 불안하게 쌓아올려진 모래성과도 같았다. 지금처럼 모든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 주다해와 딸 한별이 받을 충격과 상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을 터다. 그래서 더욱 하류는 필사적으로 그같은 사실을 숨기고 장차 주다해와 딸 한별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주다해가 알게 된 것이었다. 지금껏 자신이 먹고 입고 자는데 쓴 모든 비용이, 자신이 대학공부를 마치고 딸 한별을 기르는데 소용된 모든 것들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주다해의 상처를 안다. 그것은 하류 자신의 상처이기도 할 것이다.

억지로 부여잡으려 할 뿐이었다. 그것이 전부였기에. 하류에게는 주다해와 딸 한별이 전부였다. 아니 주다해보다는 딸 한별의 엄마가 더 소중하고 간절했을 것이다. 고아라는 하류의 출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끝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가족이란. 엄마같기도 하고 누이같기도 한 홍안심(이일화 분)이 있고,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는 양택배(권현상 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피를 나눈 혈육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느새 딸이 태어났고 그 딸의 엄마가 자신과 함께 살을 맞대고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하류는 어느새 기적처럼 찾아온 지금의 행복을 지키려 그토록 필사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다해는 달랐다. 주다해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쪼들리자 주다해를 포함한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겨우 자신을 찾은 친엄마를 따라 들어간 의붓아버지의 집에서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따로 나와 살게 되었을 때는 절망과도 같은 지독한 가난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끝내 어머니는 죽고 그녀는 세상 속에 홀로 내팽개쳐졌다. 어쩌면 벅차도록 따뜻해야 할 가족이라는 단어조차 그녀에게는 시린 현실 속에 그저 불안하고 약하기만한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딸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로서의 자신마저 포기하고 말겠다.

그같은 진심이 충돌한다. 서로를 이해한다. 충분히 서로의 입장을 안다. 서로가 또한 같았을 테니까. 하류라고 모를 리 없다. 주다해라고 모를 수 없다.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알면서도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런 자신이. 그런 서로가. 그래서 주다해는 독하게 울고 하류는 허탈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자신에게 간절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하류에게도 주다해에게도. 가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주다해의 캐릭터가 드라마를 살린다. 아니 수애의 연기가 드라마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을 것이다. 탐욕에 자신을 맡긴 그런 흔한 악녀의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의 독기에는 슬픔이 있다. 그녀의 지독한 이기에는 그보다 더 지독한 비극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게까지 내몰릴 수밖에 없는 필연의 사연들이 있다. 그러나 악하다. 그러나 독하다. 그녀는 악녀다. 그 모순을 이토록 훌륭히 입체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달리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새 연민하게 되고, 다시 어느 순간 그녀를 비난하게 된다. 동정하는가 싶더니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자신이 있다. 마치 가면을 쓴 듯하다. 눈빛과 표정 모두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을 쓴 듯 작위적이고 가식적이다. 그것을 의도하여 연기한다. 그런가 하면 하류와 마지막 통화를 하면서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오열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 하류와 다시 대면했을 때도 그녀는 어쩌면 가면을 쓴 채 울고 있지 않았을까? 마녀의 가면을 쓴 채 누구보다 여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서.

딸이 걱정되어 찾아갔으면서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현관의 기둥 뒤에 숨어 자신을 원망하며 욕하는 모두의 말소리를 듣는다. 오열하지만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바뀌지 않는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본능인 때문이다. 비극은 시작된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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