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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1.27 09:58

불후의 명곡2 "노래에 스민 한처럼 불우한 삶을 살았던 천재 김정호를 만나다"

불우했던 삶 만큼이나 아름다운 음악에서 예술의 영원함을 보다.

▲ 사진='불후의 명곡2'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70년대야 말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였다고. 한국전쟁 이후 급속히 유입되기 시작한 미국문화와 아직도 기층에 뿌리내린 전통의 여운이 빠른 경제성장과 맞물려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배고파서 시작한 미군무대에서 어느새 지성과 낭만을 말하던 대학가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대중에게까지 70년대 파급되게 된다.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10년 이상 후퇴시킨 바로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김정호 역시 바로 그러한 시대의 희생양 가운데 하나였다. 누구보다 전통에 가까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문화의 첨병에 있었다. 유전자에 새겨진 전통의 뿌리와 환경이 만들어준 세련된 새로운 문화는 김정호라는 천재를 대한민국의 대중에게 선물해 주었다. 마치 시대를 말해주는 듯 차라리 체념에 가까운 서럽기까지 한 슬픔의 정서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과도 너무나 닮아 있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대마초가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집행된 적도 없고 정부당국이 그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 적도 없었다. 그렇게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방관하는 가운데 특히 해외의 청년문화가 급속히 유입되더 대중문화 종사자 사이에 호기심에라도 대마초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시작은 이미 정부의 눈밖에 나 있던 신중현이었다. 그리고 정부와 기성의 권위에 도전적이던 청년문화였다. 공중파는 물론 밤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밴드들까지 일대철퇴를 맞았다. 방송은 물론 음반취입도, 심지어 무대에 서는 것까지도 제제를 받았다. 한 마디로 음악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이장희는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사랑과 평화'에 곡을 줄 수밖에 없었고, 아예 해외로 망명하듯 이민을 떠나는 이들마저 있었다. 김정호 역시 모든 활동을 제약당한 채 절망과 가난 속에 병을 얻었고 쓸쓸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약물로 죽어간 이는 있어도 그것이 그들의 대중예술인으로서의 업적에 조금도 흠이 될 수 없었던 해외의 경우와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만일 그가 그런 고초를 겪지만 않았어도 - 최소한 법이 방치하고 있었던 부분을 감안해 유예만 해주었어도 김정호의 이름은 대한민국 대중에게 조금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음악만큼이나 슬픈 삶을 살았던, 그 음악이 너무 아름답기에 그 삶이 너무나 처절했던 한 불우했던 천재에 대해서. 그렇게밖에 천재를 예우하는 방법을 몰랐던 우울한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사회에 대해서. 그러나 지금도 그의 음악은 살아남아 동시대의, 그리고 수많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불려지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던가? 그러나 권력 또한 예술 만큼이나 긴 것 같으니 그 또한 무상하다 할 것이다. 그토록 많은 비극과 아픔을 만들어냈건만 풍요와 질서라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그 시절은 추억된다.

허각의 노래는 김정호 그 자체였다.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 안으로 삼키는 슬픔을 넘어선 쓸쓸함을 허각은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 들려주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진정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가수다. 넘치지 않게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수줍어하거나 양보하는 모습 없이. 이 노래는 내 노래다. 허각의 노래에는 가수로서의 허각의 자의식마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가슴으로 노래를 부른다. 필자 역시 동의한다. 눈을 감고 들었다.

인피니트H의 시도는 참신하고 좋았다. 신나고 즐거웠다. 그러나 하필 그 자리에는 김정호의 오랜 팬클럽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노래가 갖는 슬픔을 넘어선 내재된 쓸쓸함의 정서를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탓일까? 그러나 역시 인피니트H에게는 바로 그런 무대가 어울렸을 것이다. 1승에는 실패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색깔을 고스란히 내보일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있었다.

김다현의 무대는 대기실로 돌아온 김다현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뒤에 더 있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뮤지컬의 무대와 대중가요의 무대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일 것이다. 뮤지컬에서 부르는 노래는 전체 가운데 일부다. 수많은 대사와 연기 가운데 그 일부로써 노래는 배우에 의해 불려진다. 그러나 대중가요는 다르다. 대중가요의 무대에서 노래는 전부다. 3분 남짓한 시간 안에 가수는 그 노래가 갖는 모든 서사와 서정을 대중에 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연기하는 듯 보였다. 뮤지컬 무대에서. 다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몰입하며 듣게 만드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잘생기고 노래도 잘한다. 눈빛연기도 일품이다. 더 이상 욕심낸다면 오히려 필자가 화가 날 것 같다. 진지하지만 엉뚱한 매력을 예능감으로 살려낸 문희준과 대기실 멤버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다. 조금 더 <불후의 명곡2>에 익숙해진다면 더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야다'의 멤버라는 사실에 흥미가 생겼다. 해외공연 때문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만남을 기대해 본다.

아이비의 무대는 허각의 무대와 정확히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수줍은 듯 양보하는 듯 삼키며 노래했던 허각에 비해 아이비의 경우는 멜로디의 뒤를 끌어올리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보이려 하고 있었다. 경연에서는 그것이 옳다. 자신을 강조해야 한다. 자신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쓸쓸함이라는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치 윽박지르며 따지는 듯 들렸다. 무서워졌다. 그녀는 21세기의 가수다. 시대의 변화는 이런 곳에서도 드러난다.

박애리와 팝핀현준 부부의 무대는 뭐랄까... 슬펐다. 울컥 저 깊은 곳에서 치미는,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 슬픔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쓸쓸함일 것이다. 마치 세월처럼, 삶처럼 작은 의자를 힘겹게 끌고나와 그 위에 몸을 누이고 흐느적거리던 팝핀현준의 춤사위에서. 힘겹고 고되고 외롭고 슬프고 아픈 그럼에도 끝내 앞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그 말없는 몸짓에서 말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언제고 세월도 가고 젊음도 가지만 그 짧지만 한스런 세월을 자신 또한 말없이 묵묵히 걸어간다. 예인인 것일까? 박애리의 노래가 있어서 더욱 그 메시지는 확실하게 대중들에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이 있기 전 몸짓은 가장 훌륭한 언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였을 것이다. 아름답다.

정동하의 목소리가 갖는 특별함일 것이다. 강하게 내지르는 동안에도 마지막 순간 살짝 삼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을 막힌 듯 답답하게 들린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 정동하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노래들은 한결 더 슬프게 들린다. 부활의 정서와 맞닿는다. 부활이 갖는 쓸쓸하도록 우울한 정서와 정동하의 목소리는 더없이 잘 어울린다.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경연이라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나레이션은 소름이 끼치도록 잘 어울렸다. 비주얼 또한 무기다. 조금 더 여운을 남기며 불렀으면 좋았을 뻔했다.

시대의 비극을 되새긴다. 아픈 시대였다. 만일 그 시대만 아니었다면. 송창식의 옆에 김정호가 나란히 있다. 후배가수들이 송창식과 김정호를 직접 만나 그들로부터 보고 듣고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간다. 그러나 너무 많은 선배들이 그 시대 사라져가고 없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가장 큰 아픔이며 손실일 것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누구도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비극이다. 그래도 음악은 아름답다. 반가운 시간이었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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