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1.11 08:57

대풍수 "역사라고 하는 피의 강물 위에서..."

역사라고 하는 강물에 휩쓸리는 수많은 이름없는 이름들에 대해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역사는 수많은 이름없는 이들의 피 위에 쓰여지는 것이다. 이성계(지진희 분)가 왕이 되었다. 왕위에 올라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이후의 시대를 조선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역사는 과연 그런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록해 전하고 있는가?

고작 어느 아버지의 아들들에 불과하다. 6번 향가에 모여 있던 죄수들도 누군가의 아들들이었을 것이다. 혹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연인이었으며, 누군가는 아직 어린 아이를 둔 아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지상(지성 분)은 더 가치있는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이들을 목숨을 담보잡으려 한다. 이성계의 모반을 염려하여 그 아들들을 볼모로 잡아두고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도망치려 하고 있다. 뒤쫓는 입장에서 죄인의 목숨까지 염려해가며 이성계의 아들들을 쫓으려 할까? 아니 죄인들 스스로 이성계의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이정근과 그 병사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죽거나 다친다.

하기는 비단 6번 향가에 모인 죄수들만이 아니다. 목지상은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영지옹주(이승연 분)마저 이성계의 아들들을 위해 속이고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렵게 찾은 어머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서 지켜주러 간절하게 유언했던 그 어머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조차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야 한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오랜세월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있던 여인에게 어머니를 거짓말로 속이라 시키고 있었다. 아마 이성계가 필요하다 했다면 목지상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으려 했을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위해서. 더 대단한 목적을 위해서. 그를 위해서는 모든 것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최영(손병호 분)도 그래서 이성계를 죽이려 한다. 최영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고려와 고려 왕실이었을 테니까. 우왕은 그래서 수련개(오현경 분)와 이정근(송창의 분)의 부추김에 아무런 망설임없이 이성계의 아들들을 찾아가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이성계에게 보낸다. 절대 이성계에게 자신의 왕위를 내줄 수 없다. 개인이 탄 승용차는 얼마든지 길가의 고양이를 보고서도 멈춰설 수 있지만, 수백수천의 사람이 타고 있는 기차는 설사 선로 위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이더라도 멈출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백수천의 더 많은 승객들을 위험에 놓이게 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던 이성계이건만 최영은 그래서 기꺼이 그 이성계를 고려를 위해 희생시키려 한다.

아니 이성계만이 아니다. 이성계를 죽이기 위해 딸려보낸 5만의 병력이 그 희생양들이다. 백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비로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함께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있는 좌군도통사 조민수마저 그것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우왕(이민호 분)과 최영 역시 마찬가지다. 하기는 그들의 목숨이 그리 중하고 아까웠다면 그같은 무모한 원정은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정복군주에게는 그를 위해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다. 그나마 요동을 실제 정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단지 이성계가 위협이 되니 그를 죽이고자 5만의 병사와 함께 그리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비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병사들이 상하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가 6번의 죄수들은 기꺼이 목지상의 명을 받들어 이성계의 아들들을 위해 자신들의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고 있었다. 목지상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성계의 아들들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내놓고 있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에게마저 자신의 어머니를 거짓말로 속이는 역할을 맡기고 있었다. 이성계의 둘째아내 강씨(윤주희 분) 역시 혹시라도 자신과 아들들이 이성계의 대업에 방해가 될까 평소 독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방원과 다른 아들들도 기꺼이 아버지의 대업을 위해 필요하다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라. 타인에게만 잔인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잔인해진다. 목지상의 아버지 목동륜도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을 죽여주기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믿는다. 목지상도. 아마도 작가 자신도. 시청자들 또한 역시. 아니라 믿는 것은 어쩌면 이성계 한 사람 뿐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조차 아들들을 걱정하고, 아버지와 같은 최영을 걱정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죽어가는 병사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 다시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것은 이성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독한 아이러니일 것이다.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고, 다시 병사들과 고려의 백성들을 살리고자 군을 돌리려 하면 최영을 비롯 많은 이들의 피를 보아야 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영웅이 된다. 죽음을 딛고, 그들의 시체를 밟고, 그들이 흘린 핏속에 앉아 세상을 굽어볼 수 있을 때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그로 인해 역사는 기록되어진다.

잔인하다. 난폭할 정도로 무정하고 무심하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시대란 이런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영웅은 만들어진다. 어쩌면 영웅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성계 자신이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이성계 자신마저 흐름에 휩쓸리고 만다. 이성계는 사실 왕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왕이 되기에는 그는 너무 무른 사람이었다. 그것이 결국 아들인 이방원에게 사랑하는 다른 자식들과 가장 오랜 친구를 잃게 되는 비극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성계를 왕위에 오르도록 만든 것이 정도전을 필두로 한 신진사대부의 강렬한 의지였다. 이방원의 의지 또한 한 몫 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태종이 되었다.

<대풍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목지상은 풍수가 아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잇던 풍수에서 사람의 관계를 재고 다루는 책사가 되어 버렸다. 드라마의 중심도 목지상에게서 이성계로 완전히 옮겨가 버렸다. 이 또한 역사가 갖는 속성일 것이다. <대풍수>라고 하는 드라마마저 이성계라고 하는 영웅에 잡아먹히고 만다. 제아무리 목지상이 풍수의 지식을 활용해 대단한 일을 벌이려 하더라도 이성계가 만들어가는 역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로서는 더 좋지만 어쩐지 아쉽다. 풍수를 중심에 둔 드라마를 기대했었다.

피가 흐른다. 켜켜이 목숨들이 쌓여간다. 어쩌면 목숨보다 소중했을 무엇들이 피의 강물에 쓸려 사라져간다. 목지상과 해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반야 또한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휩쓸림에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더 지독한 피비린내나는 역사가 그들의 앞을 기다린다. 시청률이 오르기 시작한 이유가 있다. 피의 유혹에 이끌리고 만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