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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8.04.22 19:04

[권상집 칼럼] 명백한 여론 왜곡, 닐로의 음원 조작

여론 조성이 아닌 여론 조작을 위한 음원 사재기의 폐해

▲ 닐로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정치권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자면 인터넷 댓글 조작 파문일 것이다. 수많은 유령 아이디를 동원해서 여론을 조작하는 행태가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댓글 여론 조작은 여당과 야당의 뜨거운 정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못지 않게 여론을 조작하는 분야가 있으니 그 분야가 바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소비자는 비합리적이다’ 라는 전제 하에 신인 가수를 데뷔시킬 때마다 마케팅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끊임없이 ‘우리가 키워낸 스타가 최고의 스타’라는 슬로건을 팬들에게 세뇌시킨다.

이 와중에 2017년 10월 31일 발매한 닐로의 ‘지나오다’가 음원차트에서 6개월만에 역주행을 거듭하자 음악산업은 또 다시 음원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닐로의 소속사 리메즈 컴퍼니는 “사재기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음원차트 정상 등극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나 구체적인 반론이 없어 의구심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리메즈 컴퍼니는 “바이럴 마케팅의 노하우일 뿐 사재기는 결코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한 마케팅의 노하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팬들과 언론을 향한 속시원한 해명은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음원 사재기 이전에도 도서 및 음반을 사재기 하는 풍토는 과거부터 문화콘텐츠 업계 불문율이었다. 출판사 및 음반사가 도서 및 음반을 대량 사들여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게 하는 건 해당 회사 영업사원들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였다. 당시 종로의 대형 서점, 강남의 대형 레코드 회사가 이들의 집중 타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대 기획사가 음원 사재기의 배후세력이라는 소문이 한동안 업계를 강타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SM, YG, JYP 등 주요 기획사가 연합하여 음원 사재기 브로커를 적발하는데 힘을 모았지만 음원 조작 형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있다.

닐로의 노래가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은 이유는 과거 음원 조작 패턴과 닐로의 순위 등극이 동일하다는데 있다. 보통 새벽 시간에 주요 아이돌 그룹을 누르고 정상에 오르는 것이 기존 음원 조작의 패턴이었는데 이번에도 닐로는 새벽 3~4시간 동안 엑소, 트와이스 등을 누르고 음원 1위를 차지해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의심을 받았다. 거대 팬덤을 통해 음원 순위를 장악하는 아이돌을 차트에서 꺾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지도와 골수 마니아 등 팬들의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아티스트여야 하는데 누가 봐도 닐로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인디 가수이기 때문이다.

닐로의 소속사는 바이럴 마케팅(이른바 입소문 마케팅)을 통해 SNS를 적절히 이용, 음원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반박했다. 다만, 바이럴 마케팅이 어떤 구조와 프로세스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밝히는 건 영업기밀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소속 가수의 순위를 끌어 올리는 전략이 인디 뮤지션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타당한 방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는 비정상적인 플레이는 사전 차단이 되기에 음원 차트에서 닐로가 1위를 차지한 사항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번 의혹을 일축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핵심 문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활용되는 바이럴 마케팅이 과연 합리적인 여론 조성 수단인가에 있다. 보통 SNS에서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이나 언론 또는 팬들 사이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 없이 페이스북을 비롯해서 SNS 플랫폼 상에서 콘텐츠가 홍보, 유통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자본을 투입하면 페이스북 등 플랫폼이 반응하고 이 구조 속에서 음원 순위는 쉽게 조작된다. 업계 금기사항인 음원 어뷰징(abusing: 합법적이지 않은 방식을 통해 이득을 취함)이 소위 머니 게임을 통해 발생되는 것이다.

닐로의 소속사 리메즈 컴퍼니 대표는 “대형 기획사의 방송 출연 등 물량 공세는 타당하게 인정하면서 왜 영세한 기획사의 바이럴 마케팅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 신문이 지난주 밝힌 바에 의하면 닐로의 소속사인 리메즈 컴퍼니는 자신들이 소유한 스텔스 계정(소유자를 알 수 없게 감추어 둔 계정)으로 닐로의 음원을 마케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유령 아이디로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권의 구태와 동일한 현상이 음원 사이트에도 이미 정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공정한 가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힌 리메즈 컴퍼니는 뮤지션과 대중 사이에 진입장벽 없이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스텔스 계정이 팬들과 뮤지션의 장벽을 없애는 통로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방송국은 인디 뮤지션에게 장벽이 높기에 소셜 마케팅을 활용했다고 밝힌 리메즈 컴퍼니. 자신들의 노하우로 뮤지션을 홍보하기 이전에 인디 가수의 역량을 높이는데 과감히 투자하고 해당 인디 뮤지션들의 공연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게 그들이 말한 공정한 가요 생태계 복원의 길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바이럴 마케팅과 음원 조작은 주로 영세한 중소형 기획사들이 자신들의 뮤지션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 변질되고 있다. 이른바 악의 연대기가 일부 기획사와 뮤지션들 사이에 되물림되는 형국이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음원 차트 조작 논란에 대한 수사 요청 목소리까지 등장했다. 음악에 대한 고민과 노력 이전에 마케팅으로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려는 기획사들의 안일한 전략 그리고 부조리한 음원 조작을 눈감고 이를 부추기며 중간에서 이익만을 착취하려는 음원 사이트의 행태. 음악산업에 대한 불신과 몰락을 부추기는 지름길로 점점 가고 있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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