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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2.12.27 09:50

전우치 "잠시의 휴식기, 전우치가 홍길동이 되다."

장차 더 큰 위기와 드라마를 위해 잠시 분위기를 바꿔보다.

▲ 사진제공=초록뱀미디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노선을 수정하기로 한 것일까? 이제까지는 무협액션스릴러였다. 어둠속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의 존재와 그와 정면으로 맞서는 비밀의 히어로. 하지만 긴장감이 없었다. 유일하게 김갑수(마숙 역)만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전우치(차태현 분)와 마강림(이희준 분) 사이의 대립구도가 사라지면서 장막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어야 할 마숙이 지나치게 빨리 전면으로 나서며 급속히 소모되고 있었다. 벌써부터 전우치와 마숙이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나올 이야기란 무엇이 있는가? 무협소설에서처럼 새로운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끝은 아닐 것이다. 홍무연(유이 분)이 살아있다. 마숙, 마강림과 함께 은광에 파묻혔던 홍무연이 그러나 멀쩡히 살아 전우치와 만나고 있다. 홍무연이 살아있다면 그보다 더 강한 마숙도 살아있을 것이다. 마강림도 어쩌면 살아있을지 모른다. 더 깊은 어둠으로 숨어 더 치명적인 음모를 준비한다. 아직 드라마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부디 웃어야 할 곳에서는 웃더라도 긴장해야 하는 곳에서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기를. 마숙을 두려워하고 마강림을 혐오한다. 다만 당분간은 잠시의 여유를 즐겨도 좋을 것이다.

전우치가 홍길동이 되어 버렸다. 정확히는 슈퍼맨이다. 안경과 오늘날의 기자에 해당하는 조보서의 기별서리라는 관직, 무엇보다 누구도 전우치와 이치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고작 안경 하나 얼굴 위에 쓰고 있을 뿐임에도. 물론 이치의 여동생인 이혜령(백진희 분)조차 전우치와 이치가 동일인물임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둘은 아마도 설정상 전혀 다른 외모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시청자가 보는 입장에서는 둘 다 같다. 같은 배우가 연기하니 당연하다.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역할을 바꾸는 모습도 비슷하고, 다만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역할은 고유의 의적들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전우치와 같은 시기 호접랑이라는 의적이 실제 탐관오리의 재산을 훔쳐낸다.

아마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설정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도박을 즐기며 일은 뒷전인 천하의 한량인 조보서 기별서리 이치와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다니는 신비의 도사 전우치가 같은 차태현의 얼굴이되 전혀 다른 존재로써 반전의 재미를 준다. 시청자는 안다. 전우치가 누구인지. 이치의 본래 청제가 무엇인지.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아무도 모른다. 전우치를 잡으려는 자와 전우치를 도우려는 자, 그리고 기별서리 이치의 일상, 그러고 보니 이치의 여동생으로 이치의 행세를 하게 되는 전우치와 엮이게 될 이혜령의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다. 이치의 일상이 - 다시 전우치의 일상이 사라져 버린 때문이다. 역시 마숙이 지나치게 일찍 전면으로 나서며 드라마가 급속히 거대서사로 흘러가 버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치와 전우치 사이의 괴리와 그로 인한 반전의 재미가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

사실 이것도 원래의 전우치와는 전혀 별개라 할 정도로 한참 거리가 있는 각색이었을 것이다. 전우치의 스승이 홍길동이라더니 지나치게 홍길동을 의식하고 있다. 저자에 터를 잡고 아무렇지 않게 도술로써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원래의 전우치와는 다르게 드라마속 전우치는 적극적으로 도술을 활용해 사람들을 돕고 잘못을 바로잡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천하를 노리는 악의 괴수와의 싸움보다는 보다 전래의 소소한 영웅담과 닮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이제까지의 드라마가 가지고 있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듯 나오고 있다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 것이다. 괴리가 느껴진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드라마의 분위기가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차태현의 연기가 아쉽다. 이희준과 비슷한 이유인 듯하다. 차태현은 코미디 연기가 전공이다. 하지만 히어로 연기는 그다지 경험이 없다. 자기도취에 빠져 있어야 한다. 내가 정의다. 나만이 정의다. 나만이 정의를 지킬 수 있고 이룰 수 있다. 수줍은 듯 머뭇거리다 보니 전우치의 대사에서는 어떤 감정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유이는 어떻게 된 것이 마숙의 계략에 의해 독충에 감염되었을 때가 더 감정을 실어 연기하고 있었다. 마강림도 사라지고, 이혜령도 존재감이 약해지고, 그렇게 드라마는 실체를 잃고 흩어져간다.

아무튼 마숙은 다시 돌아온다. 마숙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드라마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끝은 사건의 마무리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누군가다. 적이다. 악역이다. 마숙이 아니더라도 그 역할을 맡을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주어야 한다. 홍무연과 이어지든, 아니면 이혜령과 어떤 인연을 만들어가든 결국 모든 것은 그 핵심사건에 의해 결정되어질 것이다.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다시 말하건대 만일 마강림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존재감을 보여주기를.

긴장감이 부족하다. 그것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긴장이 있어야 이완도 있다. 긴장이 있어야 웃을 때도 더 크게 웃을 수 있다. 마냥 가볍기만 해서는 힘이 빠진다.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균형과 어중간함은 비슷하지만 거의 끝에서 끝이라 할 정도로 너무 다르다. 처음부터 가벼웠으면 좋았을 뻔했는지도 모르겠다. 계기가 주어졌다. 전환점이다. 드라마에 새로운 에너지가 불어넣어지기를. 좋은 소재에, 좋은 구성, 좋은 배우들이다. 아직까지는 오히려 아까울 따름이다. 기대를 가져본다. 기대란 기회다. 새로운 느낌의 분위기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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