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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2.12.22 08:38

위대한 탄생3 "오디션의 냉엄함, 그리고 인간의 따뜻함..."

우리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하거든요, 다같이 붙을 수는 없기 때문에...

▲ 사진제공=M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우리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하거든요. 다같이 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오디션인 것이다. 단 한 사람만이 승자로서 살아남게 된다. 마지막 우승자가 가려지는 그 순간까지 매순간 탈락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한 겹 한 겹 살점을 베어내듯 한 사람 한 사람 탈락자가 되어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당장 '위대한 캠프 합동미션'의 무대에 오른 자신들조차 그렇게 누군가의 탈락을 딛고 올라온 이들 아니던가. 누군가는 탈락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 무대를 양보할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말이다.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것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탄생 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 그대로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고자. 그렇다면 그 목적에 충실해야 했었다.

하긴 바로 이런 것들이야 말로 아마추어다운 모습이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실력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다른 사람의 개성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받쳐준다. 넘치는 개성을 덜어내어 비슷하게 맞추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개성을 채워주며 더 높은 곳에서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프로다. 그만한 실력과 경험과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개성을 죽였다는 말 그 자체가 프로로서의 자신감을 넘어선 자존감의 결여를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물론 조화는 중요하다. 다섯이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노래가 제각기 따로따로 놀며 듣기에 좋지 못하다면 그것은 듣는 사람에 대한 실례이며 모욕일 것이다. 자신의 최선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결과물이 일단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을 때 가능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심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을 감추고 한 발 물러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 뒤에 숨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설사 못하는 노래일지라도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심사위원 앞에 서야 한다.

과연 김태원의 말처럼 전원합격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전합'팀은 죽음의 조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살렸다. 무리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자신을 뒤로 물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며 또한 다른 이들이 들려주는 최선을 살려준다. 모두가 최고가 된다. 조화란 이렇게 이루는 것이다. 깎아내고 덜어내고 양보하고 회피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인으로서의 자존감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개성도 훌륭하고 다른 이들의 개성 또한 훌륭하다. 그것이 프로다.

상당히 잔인한 말이다. 다섯 가운데 하나. 다섯 가운데 혹은 둘. 하지만 바로 그것이 오디션이다. 바로 그것이 <위대한 탄생>이다. 그래서 김태원은 위대한 10대 팀 가운데 추가탈락자로 선택된 이에게 이같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아픔을 조금 더 일찍 맞이한다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런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서로가 좋게좋게 서로의 재능과 역량을 칭찬해주며 함께 해나가는 무대가 아닌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딛고 올라가야 하는 말 그대로 서바이벌의 무대인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받는 위치에 선 그들과 다른 부분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아쉽고 안타깝더라도 심사위원들은 어떤 순간에도 그같은 사실을 잊지 않는다.

권세은씨의 탈락은 아쉬웠다. 예선에서 들려주었던 권세은씨만의 놀라운 개성들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 자신의 큰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납득했다. 무대에서 권세은씨의 목소리는, 그녀의 놀라운 개성들은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 그것이 바로 프로다. 단지 노래만 잘해서 프로가 아니다. 언제 어떤 무대에 서든 그것을 자신의 무대로 만드는 것이 프로다. 자기만이 아닌 모두의 무대를 만들 수 있어야 프로다. 아직 미치지 못했다.

멘토선정방식을 바꾸었다. 그래서 흥미롭다. 차라리 김태원의 말처럼 돌림판을 돌려서 결정했으면 어땠을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운과 우연에 맡기고 멘토와 멘티를 결정한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미리 여섯 팀 씩 그룹으로 묶어 각각의 멘토에게 임의로 결정해준다는 설정은 나름 참신한 부분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이들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까. 전혀 의도하지 않은 개성의 만남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가장 큰 반전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끝내 <위대한 탄생3>를 보기 위해 지금도 TV앞에 앉아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단 한 팀만 구제할 수 있다. 수많은 20대 여성 참가자 가운데 단 한 팀만이 살아남아 장차 멘토와 만나 멘토스쿨까지 가게 될 네 그룹 가운데 한 곳에 속하게 될 것이다. 누구를 살릴 것인가?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살려 멘토스쿨까지 올려보낼 것인가? 심사위원들 아니 멘토들은 철저히 참가자와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했다. 아주 기분좋은 배반이며 반역이었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어디에 있던가? 한 사람이라도 더 합격시켜주고 싶어 심사위원들이 참가자 가운데 팀을 만들어준다. 탈락자 가운데 서로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참가자를 골라 팀을 이루어 네 명을 한 팀으로 합격시켜준다. 원래는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세 명이나 더 많은 네 명이 그렇게 멘토스쿨까지 진출한다. 참가자를 무엇보다 음악을 하는 선배로서 음악을 꿈꾸는 후배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TV화면 너머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만난 팀이지만 진정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팀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은 기적이다. 인간의 따뜻함이 만들어낸 기적.

차갑고 따뜻하다. 냉정하고 뜨겁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나머지는 언젠가는 떨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제하고자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다. 교수라는 별명 또한 그런 후배들을 향한 김연우의 자상함일 것이다.

즐겁다. 경쟁의 냉혹함과 그러면서도 인간이 갖는 본연의 끈끈함이 체온처럼 TV화면 너머로 흐른다. 오랜만에 기분좋게 본 프로그램이었다. 오디션이라는 것도 잠시 잊었다. 그러면서도 오디션임을 어느때보다 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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