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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사회
  • 입력 2012.12.20 22:39

총선과 대선의 결과, 민주당이 그동안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이유...

햇볕정책이 시대의 요구이던 때로부터 다시 한 세대를 지나가고 있음을 이해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햇볕정책의 유효기간이 끝났다. 지난 총선과 이번 대선 그것을 확인해주었다. 심지어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지지한 유권자들 가운데서도 민주당의 대북유화정책에 대한 반감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런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계층에게 있어서야 북한은 적일 뿐이다. 빨갱이와 공산당은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되는, 용서될 수 없는 악 그 자체에 불과했다. 우리 외삼촌도 한국전쟁 당시 반공지하결사를 주도하시다 북한군에 끌려가 생사를 알지 못한다. 큰아버지는 아직 10대인 소년 가장으로 인민군에 끌려갔다 반공포로로 겨우 풀려나시고 계셨다. 부모세대가 북한에 대해 갖는 감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만큼 전쟁이 남긴 상처는 크고도 깊었다.

하지만 그런 한 편으로 그들 세대에는 북한과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한이 고향이거나 북한에 친인척을 두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바로 어제까지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던 이들이었다. 햇볕정책 대북화해 포용정책은 바로 그러한 이율배반적인 기성세대의 인식에 근거한 정책이었다. 한국전쟁세대 이후 민족을 자각하고 북한을 언젠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 하나가 되어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는 세대들이 나타나며 그것을 지지해주었다. 이른바 386이라 불리던 세대들이다. 북한은 더 이상 적이어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그나마 부모세대를 통해 북한에 대한 민족적 동질성을 학습할 수 있었던 이제는 장년이 되어 버린 이들 세대에 비해 벌써 다시 한 세대가 지나버린 탓이었다. 부모의 부모세대의 일이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남북은 분단되어 있었고 첨예하게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 최소한 '우리'로 묶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도저히 합리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북한이라는 비상식적인 국가도 아닌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적이었다. 마땅히 무너뜨려야 할 설사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이대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악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에 대한 화해포용 및 협력은 시대의 화두였다. 그러나 이제 시대의 주류로 성장한 젊은 세대에 그것은 더 이상 당위가 아니었다. 굳이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북한과 통일을 이루기보다 이미 분단된 지금 이대로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북한이 지금처럼 상식을 부정하고 막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오히려 과거에 갇혀 화석이 되어가던 것은 민주당 자신이었던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같은 바뀐 대중의 요구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층에서도 더 이상 민주당이 내세우는 대북유화정책은 통하지 않는다. 통일이라는 당위를 잃어가는 세대에게 북한이 같은 민족임을 강조해봐야 더 이상 어떤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 그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그럼에도 이성과 감정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박근혜 당선자도 공약했듯 북한과의 대화는 지금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로 말미암은 안보의 위협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경제력에 비해 지나치게 강력한 군대를 보유해야 하고, 그를 위해 다시 젊은이들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황금기의 2년을 군대에서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할 전쟁기술을 배우며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연평도 포격에서 보았듯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국경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치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북한이라는 위협요인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화시켜야 한다.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고사되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은 얼핏 훌륭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북한의 배후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체제가 고사되어 붕괴될 때 그 혼란의 여파가 바로 우리에게 미칠 경우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북한의 체제가 무너질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전략에 대한 것도 그를 위한 대비일 것이다. 결국은 평화일 것이며 그것은 대화로써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렇더라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온정적 이상론은 통하지 않는다. 철저히 국경을 마주한 외국으로서 상호주의에 입각해 대응한다.

대북정책에 있어 강경한 입장을 갖는 것은 젊은 청년세대나 나이든 노년세대나 같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이렇게 다르다. 오히려 더 냉철하다. 냉정하다. 차라리 북한을 증오하면서도 같은 민족이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노년세대들에 비해 청년세대들은 그조차도 없이 단지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 집단으로서 북한을 혐오할 뿐이다. 그래서 더 강하다. 이슈에 넘어가지 않는다. 더 이상 소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고 하는 퍼포먼스는 통하지 않는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이 얻어야 할 교훈일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노년층은 물론 청년층으로부터도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외면당할 뿐이다.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여전히 살아남아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할 부분일 것이다. 어째서 유권자는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를 선택하려 했었는가? 문재인이 안철수의 안보관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다시 한 세대가 지나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그들만의 체험에 근거한 그들만의 가치관으로 시대를 주도해간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그것을 빠르게 읽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분발을 촉구하는 바다. 시대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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