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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사회
  • 입력 2011.05.28 07:19

유관순 할로윈 분장 논란을 보며...

증오와 공포, 한국의 민족주의를 생각한다.

예전 거지왕 김춘삼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왕초>에서 김두한은 민주주의가 무어냐고 묻는 김춘삼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빨갱이 때려잡는 게 민주주의지!"

어떤 신념이나 지향, 현실적인 정책이 아닌 공산주의 때려잡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최근까지 당연하게 통용되던 사실이었다. 민주주의에 자유를 더해 자유민주주의가 되면 오로지 공산주의를 적대함으로써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할 수 있다.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도, 과연 민족은 무엇이고 국가란 무엇인가? 정작 가장 중요한 해방과 독립의 과정에 대해서조차 결국 가르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했는가. 어떤 이상을 가지고 어떤 신념에 의해 어떤 나라를 세우고자 독립운동을 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루지 않고 단지 얼마나 고초를 겪었고 고통스럽게 그 댓가를 치렀는가만을 이야기한다.

결국은 일본제국주의야 말로 만악의 근원이다. 오로지 일본제국주의만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그 일본제국주의와 항거하는 것만이 - 아니 지금에 와서도 일본을 적대시하며 그들과 맞서는 것만이 민족의 정의이며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은 지금까지도 수십년이 지나서까지 형무소에 갇힌 채 고문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가야 했던 것이다. 당시에도 그래야만 했었다.

당연했다. 1945년 마침내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을 때, 해방된 조선을 다시 지배하게 된 이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협력하던 친일인사들이었다. 이승만을 받아들여 첫정권을 잡은 한민당의 주축이 바로 이들 친일지주들이었고, 이들은 이후 이승만과 결별하고 나서 민주당이라는 야당을 만들고 있기까지 했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조병옥이 친일의혹이 끊이지 않는, 4.3 제주학살의 원흉이었다. 민주당 정권에서도 4.3에 대한 규명이 쉽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만 이때 친일경찰과 군인, 관료 등의 집단은 자유당에 남아 행보가 갈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밝히자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제국주의와 손을 잡고 그들에 부역하며 부를 쌓고 권력을 누려 온 과정들을. 정작 조선의 인민을 착취하고 약탈함에 있어 그들 자신의 손을 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성운동으로 유명한 김활란과 모윤숙마저 앞장서서 조선 여성들의 정신대 동원을 독려하고 있었을 정도라면 말 다 했을 것이다. 나쁜 것은 그들이 아닌 일본제국주의여야 했다. 헌병이고 경찰이고 일본인이어야 했다.

그것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묘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게 된다. 일단 사회주의계열은 빨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이 한국전쟁 당시 퇴각하던 한국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김원봉은 친일경찰이던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하고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월북하고 말았다. 그 가족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결국 모두 살해당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묘사가 가능했을까?

어째서 그들은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으며 그들이 꿈꾸던 나라는 무엇이었는가? 아마 상해임시정부가 어떤 활동을 했는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3.1운동에서도 유관순이 어째서 아이콘처럼 여겨지게 되었는가? 사실 3.1운동에서 유관순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3.1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민족대표 33인도 사실상 독립선언문을 쓰고 낭독한 것 말고는 한 일이란 거의 없었다. 3.1운동을 주도하고 확산시킨 것은 파고다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청년들과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삶을 위협받던 노동자 농민, 그리고 기득권을 빼앗긴 부르주아등의 조선의 인민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조차도 자세히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얼마나 일본군과 경찰의 진압이 잔혹했고, 독립운동가들은 가혹한 고초를 겪었는가.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일상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며 딸이었고, 연인이었을 것이며, 친구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있었을 테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소설, 시도 있었을 것이고,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생각하는 자체가 죄가 되던 시절 그들이 독립운동으로 뛰어들게 된 현실의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역시 없다. 단지 얼마나 원대한 포부를 품고 비장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비참하게 죽어갔는가.

독립운동가들은 그렇게 이상화되었으며 우상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본의 지배가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했는가. 모든 악의 근원은 일본이었고 일본을 증오하는 것만이 정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순과 부조리, 불합리는 모조리 일본인이 가져가 버리고 일본을 증오하는 것이 애국애족 자체가 되어 버렸다.

빨갱이 때려잡는 것이 민주주의라던 김두한의 말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을 미워하고 일본인을 미워하는 것이 애국이고 애족이다. 사소한 일에도 일본이라면 신경이 곤두서고, 일본과 관련된 일이라면 곧잘 이성을 잃으며, 때로 집단적인 광기마저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그것이 정의니까. 그것이 당위니까. 그렇게 학습된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게 그렇게 당했다.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하게 당했다. 한국사람들이 외국과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당할 지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을 놓는가.

그것은 군사독재정권시절 정통성없는 정권이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나 고초를 겪었다. 이렇게나 어려움을 겪었다. 터무니없는 1000년의 외침이며 5천년 가난설도 그렇게 나왔다. 그러하니 국가의 통제에 따르라. 국가의 통제에 따라 부국강병을 이루자. 그것은 구일본제국이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두려워하며 일본의 인민을 통제하던 논리와 닮아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지키자면 총화단결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 예산의 절반을 군비에 쏟아붓느라 내정이 피폐한 상황에서도 군비에 대한 투자는 포기할 수 없었다. 차라리 침략을 하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마침내는 진주만을 공격하고.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을 상대로 상당히 선전할 수 있던 근저에는 카미카제와 같이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수단화하는 군국주의의 논리가 숨어 있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이 얼마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고 견뎌야 한다. 비장하고 단호했다. 자칫 개인의 안위를 챙기려 한다면 대일본제국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외세의 침략 앞에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말 것이다.

일본과 무척 가까웠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지만 그래서 반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이용했었다. 정부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이나 반대는 빨갱이로 몰아 반공이데올로기의 힘을 빌었고, 경제와 사회적인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서는 부국강병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과거 식민지시절 조상들은 얼마나 비참했었는가? 일본인의 지배는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했었는가. 바로 그를 위한 상징이었을 터다.

그것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이다. 아니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이고 국가주의다. 오로지 증오와 공포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누군가를 증오하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두려워함으로써만 정당화될 수 있는.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역시 공산주의 북한일 테지만, 중국과 일본 역시 그로부터 예외는 아니다. 아니 북한이란 같은 민족일 테니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중국과 일본은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일 것이다.

그래서다.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때로 과도한 폭력성을 동반하는 것은. 겁먹은 쥐는 고양이를 문다. 겁먹은 고양이는 하악거리며 털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덕분에 아직까지도 한국사회는 엄숙하고 비장하다. 아직까지도 독립운동가들은 일상의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니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고문받고 죽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아마 유관순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감옥에서 일본경찰에 의해 고문을 받고 죽었는데 그 시체를 찾고 보니 여섯 토막 나 있더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증언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다. 시위 도중 일본경찰의 칼에 베인 상처가 덧나 고통스러워했다거나, 고문으로 인해 신장을 상해 그로 인해 병을 앓았다는 내용은 있지만 시체가 토막나 있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는 없었다. 고문과 병으로 인해 시체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도 머리털을 뽑았느니 은밀한 부위를 불로 지졌느니 하는 이야기도 없었다.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1948년 상연된 한 연극에서 비롯되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필요했으니까.

그것은 무장공비에 의해 입이 찢겨야 했던 이승복 어린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참혹하게 깔려죽어야 했던 심효순 신미선 두 여중생과도 다르지 않다. 꽃이 필요했던 것이다. 증오하고 두려워해야 할 적에 의해 희생당한 순결한 꽃이. 그것은 아이여야 했고 여성이어야 했다. 죽을 당시 우리 나이로 19살이던 유관순에 대해 16살이라고 나이를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유관순에 대한 이미지는 그 순간에 멈춰 버렸다.

박칼린이 주최한 할로윈 파티에 뮤지컬 배우 최소라가 유관순의 분장을 하고 참석했던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정작 파티에 참석했을 뿐인 옥주현이 모든 비난을 혼자 뒤집어 쓰고 있는 상황이다. 비판하는 요지인 즉 어찌 그토록 참혹하게 고초를 겪고 돌아가신 유관순 열사를 그리 욕보일 수 있는가. 유관순 복장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불경이다. 능욕이다.

하지만 영웅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날 문득 파티가 있으니 다른 누군가로 분장하고 나오라 한다. 그러면 어떤 대상으로 분장하고 나가게 될까? 싫어하는 대상? 혐오하는 대상? 어째서 영국왕실의 해리왕자가 나치 복장으로 파티에 간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었을까? 과연 조롱하고 모욕하겠다는 생각으로 굳이 유관순의 분장을 하고 파티에 가겠는가? 해외에서도 특정한 행사가 있으면 건국의 영웅이나 전쟁영웅 등 역사적인 위인의 복장을 하고 놀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Hero란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인간에 대한 칭호다. 그들은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 죽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페르시아의 위협이 현실화되자 무려 천 년의 시간을 넘어 부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군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영웅이 죽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가까운 가족이 죽었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게 되듯 영웅이란 그렇게 기억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그들이 위인이고 영웅이라면 가장 영광된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아오내에서 만세를 부르던 그 순간을. 고문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만세를 외치던 그 순간을. 비참하게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에 의해 죽어가던 그 순간이 아니라. 아니 죽어가던 그 순간에 대해서조차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떳떳하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신념을 지키느라 그리 되신 것인데 애써 감추거나 무리해서 과장해가며 엄숙하게 기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죽은 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지금에서도 일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안 되는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용서하지 못하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너무 존경하고 너무 사랑해서 죽은 이를 욕보일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작은 불경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모두가 모여 즐기는 자리에 유관순이 되어 참석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자연스런 감정조차 용납못할 어떤 죄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전히 유관순은 고문실에서 신음해야 하고, 여섯 토막이 나서 참혹하게 죽어 있어야 한다. 슬퍼해야 하고 비감해야 하며 증오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과. 한국민족주의의 현실이랄까?

그것이 드러난 것이 지난 황우석과 심형래 감독의 <디워> 파동이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는 민족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는 최첨단 SFX로 미국시장에서 당당히 헐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것이다. 여성들은 자궁을 내놓으라.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디워>를 보아야 한다. 비판하지 말라. 듣기 안 좋은 소리는 아예 하지를 말라. 폭력이 자행되었다. 그에 대한 다른 의견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박재범과 타블로가 그리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것도 그들이 각각 미국국적과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적잖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항상 나오는 말, 양키, 캐나디언. 그들은 이방인이었으며 타자였다. 한국에는 한국사람만이 살아야 한다. 한국의 부국강병에 동참하려는 사람들. 한국이라는 공동운명체를 함께 하려는 사람들. 유관순이 여전히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토막나 죽어가고 있기에 그 밖의 사람들은 받아들일 여유 자체가 없다. 외국인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가. 결국은 국가와 민족 앞에 대동단결.

정히 그렇게 엄숙하고 싶더라도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유관순에 열사를 붙이기보다는 누나, 언니라 부르고 싶어 하고, 유관순에게 다양한 화려한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 일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유관순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엄숙해지고 경건해지지 않더라도. 그런 것까지 거부하고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 듣고 상당히 당황했었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란인가. 박칼린 감독이 원래 미국 사람이다. 마이클 잭슨은 미국 대중문화의 영웅이다. 마이클 잭슨의 제사상을 차려 놓은 것이 불경이라면 박칼린 감독 자신이 그것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여상하게 받아들이고 즐겼다. 그 역시 박칼린 나름대로 마이클 잭슨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을 싫어하는데 누가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할까. 유관순 역시 각자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방법이 다를 텐데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가르쳐 왔고, 그렇게 배워 왔고, 그렇게 익숙해 왔고. 그리고 더구나 무려 6개월이나 지나서야 이슈화. 사실은 그렇게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필요가 생겼으니 감작스레 경건해지고 엄숙해지고 있을 뿐. 결론이 있고 이유가 뒤에 붙는다.

불행한 현대사의 잔흔이라 할 것이다. 죽어서도 죽지 못한 조상들의. 죽어서조차 편안히 눕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신음해야 하는 의사와 열사들이. 여전히 살아서 함께 숨쉬고 있어야 할 영웅들이 죽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죽은 이들의 시체마저 이용하려 드는 탐욕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 <49일>에서도 나온다. 죽은 이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무얼까? 슬퍼하는 것? 괴로워하는 것? 자기를 학대하는 것?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라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그로 인해 불행한 일이 없도록. 과연 우리는 그들로 인해 불행한가? 아니면 행복한가?

답답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가신 이를 부여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편안하게 보내지 못하고, 살게 하지 못하고 고통받게 하는 모습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익숙해 왔으니. 그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에 의해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물며 이제 그것을 다시 다른 이를 두렵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이용하려 들고 있다면.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살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이용당하며. 남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자 그리 가신 것이 아닐 텐데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눈물겹도록 아픈 역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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