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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2.12 09:57

드라마의 제왕 "어느새 넘쳐나는 진부한 신파, 드라마가 길을 잃다."

시청률 낮은 드라마의 흔한 선택, 드라마로 드라마를 보여주다.

▲ 사진제공=SSD&골든썸픽쳐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극중 드라마 '경성의 아침'이 앤서니(김명민 분)가 돌아선 순간의 시청률 그대로 반등없이 동시간대 최하로 첫방송을 마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회, 3회, 4회, 방송은 계속 이어지는데 시청률은 오르지 않고 지지부진하다.

역시 드라마에는 멜로가 있어야 한다. 남자는 아닌 척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진심에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미처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라이벌의 존재는 필수다.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 남자의 옛연인이 서성이고 있다. 남자의 감춰진 진실이 조금씩 여자에 의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한 편으로는 스케일을 키운다. 더 큰 더 강한 적이 등장하면 좋다. 더 이상 오만한 강자가 아니다.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며 자기의 능력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약자가 된다. 얄밉기까지 하던 모습에서 가련하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적이 악이라면. 오진완(정만식 분)으로는 부족하다. 차라리 오진완은 앤서니의 되돌리고 싶은 과거를 맡게 된다. 오진완이 앤서니를 증오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으며 앤서니에게는 제국회장의 악의와 더불어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그는 오진완의 용서를 마침내 그와 화해의 악수를 나눌 수 있을까? 하기는 '경성의 아침' 자체가 '강철 무지개'라고까지 표현되었던 일본제국주의라는 열강과 맞서싸우던 남자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기왕에 주인공이 앤서니이고 그에 대한 관심이나 호응이 높으니 그와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 보다 비중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강현민(최시원 분)이 더 인기가 좋은가? 아니면 성민아(오지은 분)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더 높은가? 그도 아니면 제 3의 조역 가운데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는가? 과거의 사연들을 통해 주인공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그를 동정하고 연민케 한다. 궁극적으로 주인공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대중의 관심을 드라마로 돌리고자 한다. 느닷없는 신파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부정하는 자식 앤서니, 그리고 앤서니에 의해 아버지 임종도 보지 못한 오진완. 하필 어머니가 위독할 때 앤서니는 제국회장과 오진완의 음모에 휘말려 검찰에 체포되어 있었다.

출생의 비밀도 좋다. 아마 조만간 앤서니의 진짜 아버지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반지를 건넸던 존재. 앤서니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간 바로 그가. 다만 하필 그 대상이 드라마국장인 남운형(권해효 분)이었다는 사실은 조금 신선했다. 설마 남운형이 제국회장의 아들이었을 줄이야.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흔한 진부한 설정 가운데 하나다. '경성의 아침'을 방송중인 드라마의 국장인 남운형이 감추어 왔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제국회장으로부터 앤서니를 구해낸다. 제국회장과 남운형이 원래 아버지와 아들이었다는 심지어 남운형이 드라마국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제국회장의 힘이었다는 사실이 이후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앤서니와 제국회장이 서로 대립할 때 그의 위치나 역할은 어떻게 되겠는가?

원래 드라마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이 처음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기대하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배우 강현민과 성민아의 신경전일 것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며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의 갈등이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현장과 어우러지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추운 겨울 야외촬영에서 성민아를 골탕먹이기 위해 짐짓 실수를 가장해 NG를 반복하고, 그런 강현민에 대한 보복으로 성민아는 강현민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계속해서 NG를 내고 만다. 심지어 같이 키스신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에 도저히 못견디게 싫은 서로와 키스신조차 찍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기도 한다. 결국은 오월동주로 끝나고 말지만.

사실 그런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드라마가 첫방에 들어갔을 때 제작자인 앤서니와 작가인 이고은, 그리고 배우들과 스태프와 여러 관계자들이 보이던 반응과 같은 것이다. 시청률이 올라간 구간이 내가 연기한 구간이다. 내가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어린아이와도 같이 알아달라 떼쓰는 강현민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리얼리티가 있다. 키스경험이 부족해 키스신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 이고은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제작자 앤서니의 모습도 제법 그럴싸하다. 한두번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제작자의 입장에서 앤서니는 대본에 관여하려 들 것이고 그때마다 이고은은 앤서니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배우의 입장도 있다. 이고은이 한가하게 앤서니에 대한 감정을 고민하느라 낮잠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제국과의 경쟁은 드라마로 하는 것이 좋았다. 하필 경쟁드라마가 제국의 작품이다. 시청률경쟁을 한다. 시청률결과가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한다. 더욱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들이 더해진다. 앤서니의 오만해도 좋을 사업가로서의 능력과 이고은의 순수한 작품에 대한 열정이 충돌한다. 배우에게는 배우의 입장이 있다. 방송사에게도 방송사의 입장이 있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는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제국과의 더러운 정치싸움이 주를 이루고 만다. 앤서니의 싸움이다. 드라마 '경성의 아침'의 싸움이 아니다. 당연히 앤서니의 싸움에서 다른 이고은이나 배우들, 스태프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뭐하자는 드라마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드라마는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을까? 현장에서 드라마를 보다 재미있게 잘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제작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경쟁사의 외적인 압력이나 시도들에 맞서는 것이 제작자의 역할일까? 굳이 앤서니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지 않더라도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사이 충분히 부딪히고 엇갈리며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계를 넘어섰다. 원래의 의도따위 깡그리 잊은 채 이제 평범한 드라마가 되어가려 하고 있다.

여전히 드라마 촬영장면은 재미있다. 강현민과 성민아의 일거수일투족 역시 대부분의 대중들은 알 수 없는 스타들의 이면을 엿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보는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피와 땀과 열정이,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국의 방식은 과연 드라마제작현장에서 보편적인가? 아니 설사 그런 것이 널리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인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제왕' 아니던가.

극중 드라마 '경성의 아침'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다. 호기심이 있다. 과연 모두가 그토록 극찬하고 크게 기대를 갖도록 만드는 이고은의 '경성의 아침'이란 어떤 드라마인가? 어떤 인물들에 의해 어떻게 이어지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없다. 그저 그런 드라마가 있다. 그러니 촬영현장도 디테일하지 못하다. 건너뛴다. 나머지는 그 이면의 전혀 상관없는 앤서니와 제국사이의, 그것도 이제는 개인적인 감정이 얽힌 대립으로 끝날 뿐이다.

될 수 있으면 호의로써 드라마를 보려 한다. 한 번 좋게 평가한 드라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 하지만 선을 넘어섰다. 정체를 알 수 없다. 어쩌면 필자 자신의 오해였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드라마가 추구한 것은 흔한 멜로이고 정치싸움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제작은 단지 소재로서나 쓰일 뿐. 이제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의 제왕>이란 단지 앤서니 김 개인의 이야기에 불과한가.

어쩌면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드라마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자신도 모르게 끝나고 만다. 드라마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바인 것이다. 낮은 시청률과 그로 인한 강박이야 말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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