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2.05 08:32

드라마의 제왕 "표절의 모호함과 민감함,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다."

표절이라는 민감한 현실을 제작자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다루다.

▲ 사진제공=SSD & 골든썸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참으로 미묘한 문제다. 표절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표절로 규정할 것인가? 표절이 나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표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표절인가?

흔히 업계에서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너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최소한 열 사람 이상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세익스피어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비틀스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란 없다. 물론 과장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고, 사람 수만큼 아이디어가 넘쳐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중성은 대중이 갖는 공통분모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개성적이라는 말은 이질적이라는 말과 때로 같이 쓰인다. 독특하다거나 특이하다거나 하는 말은 거리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갖게 한다는 말을 대신해 쓰이기도 한다. 진부하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흔하게 자주 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너무 전형적이라면 그것도 지겹고 지루하겠지만 차라리 지겹고 지루한 쪽이 낯설고 어색한 것보다는 낫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창작자라고 다르지 않다. 아주 전위적인 - 그런 창작자가 과연 자본화된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 창작자가 아니라면 결국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작품을 결정하기가 쉬울 것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려 한다. 선택은 제한된다.

그래서 사실 TV드라마를 보더라도 비슷한 설정이나 이야기구조를 흔하게 보게 된다. 당장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만 하더라도 그렇다. 최고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안하무인의 주인공이 한 번의 실패로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난 뒤 재기하는 과정에서 점차 몰랐던 - 혹은 잊고 있었던 원래의 순수를 되찾아간다. 심지어 주인공의 곁에는 그의 순수를 일깨워줄 조력자까지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이 아니던가? 드라마 제작자라는 설정만 다른 것으로 바꾸어준다면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 만화 등을 통해서 흔하게 보았던 설정일 것이다. 올곧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순수 그 자체인 여주인공 이고은(정려원 분) 역시 마찬가지다. 바보같이 외골수고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환경마저 어렵다. 때로 입장이 바뀌어 이고은이 주인공이 되고 앤서니 김(김명민 분)이 이고은에 이끌리는 역할로 등장하기도 한다.

앤서니 김의 성격은 어떨까?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인다. 그런데 <베토벤 바이러스>가 방영될 당시에는 일본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남자주인공 치아키 신이치와 닮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었다. 그러면 치아키 신이치가 최초였을까? 앤서니 김을 잊지 못해 그의 주위를 맴도는 성민아(오지은 분) 역시 상당히 익숙한 캐릭터다. 강현민(최시원 분) 역시 상당히 개성이 강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찾아보면 비슷한 캐릭터가 없지는 않다. 사람의 개성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유형화가 가능하다.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캐릭터나 관계 역시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말하지 않던가. 드라마에는 역시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가요의 멜로디에는 '뽕끼'가 있어야 하고 드라마에는 '멜로'가 있어야 한다. <드라마의 제왕>에도 물론 있을 것은 다 있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로 비슷한 결과물이 실제 나오기도 한다. 서로 같은 사람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혹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 역시 비슷한 성향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영감을 떠올리고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처음부터 아예 새로운 작품이란 현대에 있어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을 대하고, 혹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떤 접합점이 나오게 된다. 사람인 까닭이다. 인간도 처음에는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한 개체로부터 분화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 하지 않던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비슷한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다면 경험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역시 비슷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의도로 만들었는데 내놓고 보니 비슷하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표절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같은 우연한 결과가 아닌 의도된 유사성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연히 서로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라면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여 다른 이의 재능과 노력을, 그 결과와 그로 인한 성공을 탐내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사실상 도둑질이다. 하나의 작품을 내놓기 위해 창작자가 겪어야 했을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들을 별다른 노력 없이도 단지 베끼는 것만으로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표절과 관련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그것은 의도적인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가? 사실 드라마에서 그 답은 이고은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소설가 조영은(김보연 분) 자신의 입을 통해서 나와 있었다.

"내 책 봤어요? 내 책을 보면 알 거에요!"

이 물음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표절을 했다면 당연히 이고은은 조영은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고은은 조영은의 작품을 베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영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고은은 자신의 작품을 베끼지 않았다. 이고은은 자신의 작품을 읽어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갖는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본능이며 의지이기도 하다.

과연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우연의 산물인가? 그 이전에 이미 그와 유사한 작품이 출판되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작가 자신의 열정과 노력의 산물이며, 그에 대한 권리도 전적으로 작가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사한 설정이나 내용이 새로이 만들어져 대중들에 보여진다. 자칫 자신의 작품이 갖는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그래서 또한 작가라면 혹시라도 자신이 생각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작품이 있을 때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 또한 작가로서 자기 작품이 갖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겹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의무다.

이고은의 고집은 옳지만 그래서 틀리기도 하다. 이미 비슷한 설정의 작품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인지했다면, 작가의 양해를 구하거나 혹은 그것을 피해 새롭게 작품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촬영에 들어가서 수정이 여의치 않다면 그 부분에 대해 조영은과 협상을 꾀할 수도 있다. 앤서니 김은 창작자가 아니다. 그는 사업가다. 그에게는 오로지 이고은과 그의 작품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작가란 이고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제국프로덕션이 개입하면서 드라마의 결론이 이상해졌다. 이고은의 창작자로서의 순수성을 지킨다. 그렇다면 조영은은 어떻게 되는가? 단지 무시하고 묵살한다. 제국프로덕션과 엮어 그녀의 탐욕을 비웃는다. 하지만 조영은 역시 <운명의 연인>이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테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창작의 고통이란 창작자 자신만 아는 것일 터다. 그녀는 그저 욕심많고 아집만 강한 이상한 사람인 것인가.

흔히 있다. 특정 드라마에 대해 내용의 유사성을 들어 표절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그동안도 적지 않았었다. 어떤 작품들은 무척 혐의가 강했었다.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표절의혹이 제기된 부분의 특수함이 너무 특별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앤서니 김의 말처럼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한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단정지어 판단할 수 있을까? 법도 하지 못한다. 단지 드라마에서는 드라마 제작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할 뿐. 어쩔 수 없이 상업드라마인 때문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 쓰여진 드라마다.

아무튼 드라마 제작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표절의혹에 대해 드라마 제작자 입장에서, 그리고 현장의 느낌으로 드라마의 재미로써 보여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하겠다. 답은 역시 각자가 알아서 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표절인가? 어떤 것을 표절로 볼 것인가? 표절의혹을 제기하는 쪽과 그것을 당하는 입장 모두에 대해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도 있다. 이런 판단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드라마다.

앤서니 김이 점차 자기의 세계를 열어간다. 혼자만의 꿈이었다. 닫힌 꿈은 욕망이 되었다. 그 욕망을 꿈과 바꿨다. 욕망이 되어 버린 '20세기 폭스사'라는 꿈을 바꾸어 새로운 꿈인 '경성의 아침'을 위한 투자금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혼자 꾸는 꿈이 아니다. 이고은이라는 동지가 있고, 성민아와 구감독이라는 동료가 있다. 더 이상 일개 스태프가 아니다. 그저 월급받고 일하는 직원도 아니다. 그는 이미 바뀌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성민아의 눈이 쓸쓸하다. 자기만이 알고 있던 보물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게 된다. 하필 다른 여자에 의해서.

제국프로덕션 회장과의 싸움이 점입가경을 더한다. 온갖 음모가 더해진다. 과거 제국에서 일하며 앤서니 김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불법에 대해서까지 조사해 그를 파멸로 몰아넣으려 한다. 드라마를 넘어선다. 어떻게 해결하려는가. 결국은 드라마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드라마의 제왕>이다. 드라마의 제왕으로서 앤서니 김의 승리와 귀환을 기대해 본다. 그가 다시 찾게 될 꿈과 순수에 대해서도. 그의 곁에는 이고은이 함께 하고 있을까?

성급한 네티즌의 댓글이 현실을 보는 듯하다. 결론이 내려지기도 전에 단지 혐의만으로 단정짓고 단죄하려 한다. 대중은 판사가 아니다. 판사조차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혐의는 혐의일 뿐이다. 의혹은 의혹에 불과하다. 다행히 이고은은 주인공이다. 씁쓸하다. 재미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