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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사회
  • 입력 2012.11.24 10:42

[오피니언] 천하흥망필부유책(天下興亡匹夫有責), 대선에 즈음하여...

지겨워해서도 지루해해서도 성가셔해서도 안되는 이유에 대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천하가 융성하고 쇠퇴하는 것에는 한낱 밭갈고 나무하는 농부초자의 책임도 적지 않으니 항상 염려하고 살피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명말청초를 살았던 중국의 사상가 고염무가 설파한 '천하흥망필부유책(天下興亡匹夫有責)'의 내용이다.

물론 고염무가 굳이 그와 같은 혁명적인 발언을 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었다. 스스로 명의 신하를 자처했던 고염무는 반청주의자로서 복명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남명정권까지 무너지고 사실상 명을 재건할 주체가 사라지다시피 하자 이번에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힘으로 명을 회복하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농부초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이민족의 왕조를 몰아내고 명을 재건하자, 그런 뜻이라 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나타나고 국민국가가 등장한 이유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너희가 나라의 주체다. 너희들의 나라다. 그러니 너희 또한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나라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 언제부터 한낱 농부와 초자가 나라일을 걱정할 위치에 있었는가. 그것은 곧 반역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부와 초자의 힘이 필요할 때는 나라 일이 곧 그들의 일이 된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 또한 자발적으로 나라 일에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란 이와 같다. 중세의 암흑기에도 선거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 봉건제후들에 의해서였다. 선제후라 불리우는 제후들이 선거를 통해 왕을 선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유력한 선제후를 확보하는가 하는 것이 중세 왕위를 둘러싼 다툼의 흔한 모습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가 도시에서는 부유한 상공인들이 귀족의 자리를 대신하고, 이들은 부르주아가 되어 근대를 거치며 귀족과 결탁하여 새로운 지배계급을 이루었다. 국민국가의 등장은 농민과 노동자 등 무산계급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과거 중세유럽의 제후들과 현대의 일정한 직업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백수의 지위는 같다. 어차피 유럽의 제후들 가운데도 하는 일 없이 노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나라의 많은 결정들이 바로 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거 제후들이 모여 국왕과 국정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일정한 직업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는 백수들조차 그와 같은 권한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국민이라는 이유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권자라는 이름도 부여받는다. 자신들의 투표를 통해 나라의 대표가 선택되고, 국민 자신의 대표가 결정되며, 그들에 의해 나라를 운영하는 절반이 결정된다. 고작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선택의 여부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까지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될 사람을 밀어주어야 한다고.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어떤 정책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는가? 선거가 끝나면 말한다. 그런 공약이 있는 줄도 몰랐노라고. 정책은 반대하지만 후보자 자신을 지지하니 일단 표를 주고서 나중에 반대하면 된다고. 그것이 문제다. 표를 준다는 것은 권력을 위임한다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앞날을 결정할 중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직접 실행에 옮길 권한을 후보자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력에는 합법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자신의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반대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았음에도 끝내 4대강이 추진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행 체제 아래에서 대통령의 권한이란 더없이 막강하다. 국회의원 또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매우 강력한 여러가지 권리들을 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다. 그런 자리를 뽑는 자리다. 그런 자리들을 선택하는 기회다. 단지 사람을 지지해서. 사람이 좋아서. 그러나 그 순간 후보자는 한 나라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호감이나 충동으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겠는가. 당장은 기분이 좋을 지 몰라도, 그래서 자기 자신은 만족할지 몰라도, 그 결과는 결국 자신과 주위의 모두에게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한 표가 갖는 무게이며 의미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나 한 사람의 표 쯤이야 기권을 하겠다 말하기도 한다. 투표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자신을 위해 유익하게 쓰겠다. 누가 되든,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든 자기와는 상관없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은 외면하려 해도 자신이 빠진 그 선거를 통해 자기와는 상관없이 자신과 사회의, 나라의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누군가가 선출되게 된다. 그에 의해 어떤 정책들이 결정되고 실제 실행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가? 최소한 누가 당선되어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선언을 했다. 누가 당선되어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은 거꾸로 소극적인 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정작 이대로 정책이 실행되더라도 크게 문제라 여기지 않는다.

작음 게으름이, 그리고 하찮은 무지와 어리석음이, 그렇게 자칫 한 나라의 큰 일을 결정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를 위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투표했다면. 보다 나은 방향으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한낱 개인에 불과한 자신이지만 자신에게도 그 책임이 지워진다.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다. 투표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기권이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안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 대해 기꺼이 감수하며 반대하지 않겠다. 만일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그것을 투표를 통해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라면 그것은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암묵적 동의로나 여겨질 뿐이다. 뒤늦게 투덜대봐야 아무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 된다. 시민이 주인이 된다. 인민이 주체가 된다. 주인이란 권리만 있어 주인이 아니다.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주인이 된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갖는 책임이다. 기권조차 그 책임을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판단을 맡긴다. 실행을 맡긴다. 그조차 모든 것을 위임하려 한다.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이라면 존중된다.

마침내 다시 선거철이다. 5년만에 모든 선거 가운데 가장 뜨겁고 치열한 대통령선거가 다시 돌아왔다. 벌써부터 이슈가 왕성하다. 시끄러울 정도로 뉴스들이 쏟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시끄럽다. 어떤 사람들은 냉소할 것이다. 그래봐야.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지금 자신의 한 표를 얻고자 구걸하듯 악수를 청하는 그들이 장차 압도적 다수의 국민의 의견마저 무시해가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다. 판단은 신중해야 하고 실천은 과감해야 한다.

5년 뒤 다시 정부를 욕하며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잘못된 선택을 했다,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 정부와 대통령이 나쁘다, 정치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국민 자신이다. 유권자 자신들이다. 중요한 때다. 중요한 순간이다. 현명함을 믿는다. 자신 또한 현명해지려 한다.

잊어서는 안된다. 천하흥망필부유책. 전근대 왕조사회에서조차 농부와 초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민주시민사회에서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겁다. 항상 무섭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다. 유권자라 이름받는 순간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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