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26 07:55

시티헌터 "진부하지만 전형적인 출발"

원작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재해석의 노력이 보인다.

 
문득 기억을 떠올렸다. 아주 어렸을 때였다. 미얀마에서 무려 대통령 일행을 목표로 한 포탄테러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내 입에서도 역시 ‘죽일 놈들!’소리가 절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우리도 저렇게 제대로 보복을 해 주었으면 했는데...

하지만 아이니까. 과연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어도 나는 복수를 생각할까? 여러 가지를 많이 고려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보복으로 말미암을 남북관계의 경색과 나아가 전쟁위기의 확대.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래서 하지 못한 것이다. 작년에도 천안함 침몰의 주범으로 북한을 꼽고서도 정작 보복행동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와 같다. 연평포격 다시에도 정해진 수준의 제한된 대응사격 이상의 행동은 자제하고 있었다. 그게 정치니까. 외교이기도 하다.

논조가 묘하다.

“체육관선거 출신 소리를 듣는 각하께 너무 큰 부담이에요!”

마치 그것이 당연한 행위였던 양. 나라를 위해 당연한 결정이었고 단지 정권이 정통성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너무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약소국으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서도. 최응찬(천호진 분) 안기부 특수작전부장의 말투에서는 울분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식으로 일일이 테러한다고 마주 테러하고 하는 나라는 아마 북한을 제외하고 이스라엘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이스라엘인을 타겟으로 한 테러가 한 번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군사행동에 나선다. 과연 국제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과연 저런 사람이 나중에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니 그나마 드라마상에서의 대통령이니 현실에서는 아니라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까. 천안함 사건에서, 연평포격에서,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린 당사자가 최고통수권자로 있을 때 우리는 안심하고 평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아마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호쾌했는데, 그러나 덕분에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 감정적인 보복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던 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미국이 마음대로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고 폭격도 하고 하는 것은 그로 인한 모든 반발마저 해결할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력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그런 정도는 충분히 무마할 수 있다. 그것을 믿고 있기에 이스라엘도 당당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행히 당시 군사독재정권도 그런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작전이었고, 그 결과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리 갈 수밖에 없다. 한 순간의 충동에 못 이긴 잘못에 대해 결정권자들은 그렇게 정작 명령을 듣고 사지로 들어간 북파공작원들을 제거하는 것으로써 지워버리려 든다. 어쨌거나 그것이 모든 것의 발단일 텐데...

솔직히 너무 진부한 설정이었다. 조직의 명령으로 사지를 찾아들어갔다가 도리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감에 복수의 칼을 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것은. 주인공이기도 하고, 주인공을 기른 누군가이기도 하고, 혹은 주인공이 싸워야 하는 적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윤성(이민호 분)이 처음으로 같은 한국인인 배식중(김상호 분)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떠오르는 무협소설만 여러 편이었다. 어째서 오지에서 살인기술을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하나같이 존댓말이라고는 모르고 반말에 천진스럽기까지 한 것일까? 하필이면 골든 트라이앵글이고 그곳에서 이진표(김상중 분)가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도 떠오르는 작품이 여럿 된다.

도대체 어째서 거기에서 무앙수린은 이윤성의 앞으로 나서다 총에 맞아 죽는 것인가 말이다. 어쩐지 무앙수린이 죽지 않겠나 싶었다. 그것도 하나의 클리셰다. 그래서 분노한 이윤성이 멋모르고 날뛰다 이진표가 다치게 되고. 후회하는 이윤성 앞에 이진표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복수를 요구한다. 자책과 분노와 그리고 이진표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 다름아닌 <시티헌터>의 주인공 이윤성이라는 것이다. 원래 원작 <시티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료도 그랬었다. 비행기 사고로 고아가 되어 남미의 정글에서 반정부군의 용병들로부터 살인기술을 배웠다. 이윤성 역시 남미가 아닌 동남아시아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마약조직에서 특수부대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살인기술을 배웠다. 둘 다 냉혹한 살인기술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쾌한 캐릭터들이다. 차이라면 이윤성의 경우 사에바 료와는 달리 복수라는 당면한 목표가 있다는 점이랄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뢰를 받아 해결하기엔 탐정이라는 직업 차게 불법이니까. 작년 방영된 KBS의 드라마 <도망자>에서도 주인공 탐정은 직업 자체가 불법이라 쫓기고 있었다.

문제라면 과연 복수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테러에 대해 어떻게 공중파에 맞게 거부감없이 잘 묘사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일 텐데. 아무리 복수의 명분이 정당해도 사적인 폭력을 개인에 투사하여 제제하는 것은 단지 테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진지해지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즉 원작이 바로 호조 츠카사의 만화 <시티헌터>라는 것이다. 원작에 최대한 충실히 다가가려는 일환에서의 클리셰적인 표현들이랄까? 장르적 전형성이라 보면 되겠다. 당장 이진표가 자기를 살리고 죽은 박무열(박상민 분)의 아들을 납치해 그에게 살인기술을 가르치고 복수하도록 하는 설정마저도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장르적으로 허용되는 것들이다.

복수의 대상이 5인회인가? 아니면 박무열과 그 아내 이경희(김미숙 분)인가? 과연 박무열과 이경희가 지금의 이윤성을 보고, 그가 해내야 할 복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무어라 반응하겠는가 말이다. 큰 굴곡 없이 평온한 일상을 영위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복수랍시고 데려다가 그리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더구나 살인자로 만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논리로는 그렇더라도 장르적 전형성에서는 그렇게 자신이 직접 복수를 하지 않고 친구의 아들을 심지어 납치해서라도 데려다 가르쳐 대신 복수하도록 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것이 우정이 되고 진정한 복수가 된다.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죽인 이들에 복수하게끔 하는 것이니. 다만 지금도 이진표가 박무열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게 되는 것은 장르를 넘어선 보편적인 상식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마침내 한국에 도착해서 광화문 광장에 서 있으려니 뒤에서 열심히 홍보물을 나누어 주고 있는 김나나(박민영 분)의 모습이란. 그런 만화가 있었다. 동료인가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서 본 여자아이에게 반해서 굳이 찾아와서 그녀를 지켜주는 내용의 만화가. 다만 이 경우는 김나나가 목적은 아니니까. 다분히 로맨틱 코미디적인 설정에서 잔혹한 폭력물에 대한 우려를 덜어 본다.

아무튼 마치 영화같이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과 화질이 무척 보기에는 좋았다. 아무래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장면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핵심은 아닐 테니까. 괜한 데 비용과 노력을 투자했다가는 나중에 많이 곤란해질 수 있다. 얼마나 초지일관하여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고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 판단하기에는 무리다. 아직까지는 설정단계다. 이윤성이란 이런 배경을 가진 이런 성격의 캐릭터다. 그나마 여주인공인 김나나는 얼굴만 잠시 비추고 말았을 뿐이다. 주요 배경이 될 2011년의 한국은 마지막에 잠깐 나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늘 2회에서부터.

기대 반 불안 반이다. 일단은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존중하고, 그러면서도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전형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역시 보고 평가하려 한다. 그때까지는 유보다. 아직 겨우 시작이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