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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1.20 10:15

드라마의 제왕 "드라마를 통해 모여드는 욕망과 군상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인간을 압축하여 보여주다.

▲ 사진제공=SSD & 골든썸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반짝이는 돌 하나늘 발견했다. 한 사람은 예쁘게 생긴 돌이구나 감탄하며 그냥 지나쳤다. 두번째 사람은 그것을 들어 여기저기 달아보고 붙여보고 어울린다고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세번째 사람은 그것을 팔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계산을 하고 있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바로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여름의 바닷가라 하면 어떤 사람은 하얀 백사장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파도소리와 갈매기와 바다위를 떠다니는 통통배, 그리고 밤이면 말갛게 어두워진 하늘에 흩뿌련진 별을 생각하며 감상에 잠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백사장을 거니는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상상하며 흐뭇해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파라솔을 설치하고 바닷가를 찾은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 궁리를 한다.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단지 인간의 욕망이 바다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사람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사람이 갖는 욕망 또한 모이게 된다. 서로 다른 욕망이 엇갈리며 부딪히게 된다. 어떤 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어떤 것들은 서로를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치란 바로 그같은 인간의 욕망을 조율하는 기술이다. 삶이란 고통이며 투쟁의 연속이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욕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갈등이 빚어지고 충돌이 일어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른다. 그것이 삶이며 또한 드라마다. 무엇을 욕망하는가? 무엇을 위해 욕망하는가? 무엇에 의해 욕망하는가? <드라마의 제왕>에서는 '드라마' 자체가 그 촉매가 되고 대상이 되어준다.

물론 '드라마'가 전부는 아니다. '드라마'에는 100억이라는 투자금이 따라붙는다. 막대한 투자금과 그리고 공중파 편성권이 '드라마'에 절대적인 힘을 부여한다. 누군가는 드라마를 통해 다시 제작자로서 재기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드라마를 통해 돈과 인기를 얻고 싶어한다. 또한 누군가는 드라마를 편성하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한다. '드라마'와는 상관없이 단지 드라마를 제작하는 당사자에 대한 증오로써 그것을 방해하려는 이도 있다.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만을 생각하는 작가의 순수함도 있다. 바로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되어지는 현장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막대한 돈이 따라붙는 좋은 드라마는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 되고 드라마의 중심이 된다.

과연 새로 드라마국 국장이 된 남운형(권해효 분)의 의도는 순수한가? 만일 그의 의도가 순수했다면 제작자가 누가 되었든 드라마 자체만을 보려 했을 것이다. 제작자인 앤서니 김(김명민 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어쨌거나 뒤로 한 채 자신의 권한으로 방송을 편성하기에 얼마나 가치가 있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살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시놉시스만이 나온 작품과 4회까지의 완성된 대본과 주연배우까지 캐스팅이 완료된 드라마, 그러나 남운형의 선택은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를 만드는 배경에 있었다. 스스로는 그것이 정의라 여기고 있었겠지만 그로 인해 앤서니 김을 제외한 드라마를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구해준 것이 또한 남운형이 앉은 자리를 탐내는 다른 부국장들의 욕망이다. 어떤 드라마인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에 의해 드라마의 편성이 결정된다. 앤서니 김이 절망한 이유였을까?

주연배우조차 단지 앤서니 김을 곤란하게 만들고자 일부러 선택하고 있었다. 아직 준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드라마를 무리해가며 밀어붙이고, 수고를 감수해기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강현민(최시원 분)을 잡으려 한다.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는 공권력을 동원해 드라마국장을 날려버리더니, 다시 작가인 이고은(정려원 분)을 속여 빼돌리려 한다. 이고은이 탐나서가 아니다. 어쩌면 '경성의 아침'이라는 드라마의 대본 역시 그다지 탐나거나 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앤서니 김에 대한 증오다. 아니 그보다는 질투일 것이다. 아직도 오진완(정만식 분)의 내면에는 앤서니 김에 대한 열등감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드라마는 수단이다.

강현민 역시 마찬가지다. 대본도 볼 줄 모른다. 연기도 그다지 썩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연기는 돈이 된다. 드라마는 돈과 인기를 가져다 준다. 얼마나 많은 개런티와 드라마의 인기에 비례해 몰려들 팬들과 기업들과의 CF계약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좋은 작품이란 자신의 인기에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인기에 도움이 된다면 CF계약도 밀려들 것이다. 속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의도는 그만큼이나 명확하다. 그가 배우로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말 그대로 직업이다. 어쩌면 강현민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페셔널인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도 그는 제작자와의 관계나 작가와의 의리 따위 뒤로 접어둔 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과연 그런 강현민과 드라마의 만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앤서니 김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앤서니 김의 지론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에게도 이익을 준다. 방송국의 관계자들에게도 이익을 준다. 또한 오진완과 같은 적대적 경쟁자를 상대할 무기로도 삼는다. 오진완에게 굳이 복수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오진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앤서니 김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살아남아야 앞으로도 계속 앤서니 김은 드라마 제작자로서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자기가 불러들인 스태프나 작가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댓가는 지불해야 할 것이고, 앞으로 모이게 될 배우나 스태프에게도 충분한 댓가가 돌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 개인의 순수 따위 앤서니 김에게는 그같은 수많은 욕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이같다.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남운형 역시 드라마의 시청률이 낮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신이 주도하여 결정한 것이 아니더라도 국장이란 그러라고 있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는 자리일 것이다. 남운형을 압박하여 드라마를 편성하도록 유도한 부국장들도 있다. 앤서니 김이 세운 '월드프로덕션'의 몇 안되는 직원들도 있다. 자칫 강현민이라는 배우의 생명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회사가 유지되고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다음에도 드라마를 제작해 편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드라마가 망하면 그럴 여력조차 사라진다. 앤서니 김은 제작자다. 그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다. 드라마를 성공시켜 관련된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그러한 약속을 전제로 그의 로비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애송이 작가 하나 따위 얼마든지 밟고 갈 수 있다. 단지 하나와 나머지 전부, 대부분의 경우 후자를 선택한다.

무정하게 잘라버린 이고은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드라마 편성권을 따내기 위해 이고은을 가차없이 잘라냈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앤서니 김은 가장 먼저 이고은부터 복귀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온전히는 아니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 높은 시청률과 간접광고 등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이고은의 입장 따위 전혀 아랑곳없이 감수를 맡을 작가까지 공공연히 고용하고 있었다. 굳이 위악스런 모습을 꾸며가며 이고은을 다시 불러들인 모습과 대비된다. 결국 하나다. 드라마가 이고은을 우선한다. 아니 어쩌면 앤서니 김 자신보다도 우선한다. 그의 무정함은 누구보다 뜨거운 차가운 열정에서 비롯된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다. 드라마 자신이 매개가 된다. 드라마 자신이 드라마의 중심이 된다. 욕망이 하나로 모인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과 입장들이 모이고 충돌하고 엇갈리며 이어진다. 굳이 드라마의 편성권을 따내기 위해 앤서니 김이 부국장들을 찾아가고 사장을 찾아가 로비를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욕망이다. 드라마란 욕망이다.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편성되어지는 - 나아가 드라마를 사람들이 보는 이유 또한 욕망이다. 앤서니 김은 그 욕망을 꿰뚫는다. 그리고 이고은은 그 욕망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가면을 쓰고 사람들이 그 욕망 위에서 춤을 춘다. 반쯤은 허구에 걸쳐진 현실이라는 배경 위에 펼쳐진 이야기속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춤을 춘다.

본격적으로 드라마의 제작에 들어간다. 편성권을 따냈다. 투자금도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나머지 캐스팅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패자다. 남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앤서니 김이 예전의 관록으로 다시 일어나려 한다. 그런 앤서니 김과 마주보며 이고은이 그의 곁을 지킨다. 오진완의 방해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와타나베(전무송 분)의 위협 또한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배후의 관계가 벌써부터 긴장을 자아낸다. 그러나 무겁지는 않다.

하필이면 햇병아리 작가다. 병아리도 아니다. 아직 알껍질 속에서 꿈틀거리는 데뷔조차 못한 신인이다. 그만큼 순수하다. 그만큼 열정적이다. 그런 작가에게 '경성의 아침'과 같은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모두가 탐내고 경계하는 작품이 주어졌다. 그 작품이 앤서니 김이라는 노회한 군주에게 주어졌다. 그는 빼앗긴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앤서니 김의 욕망과 이고은의 순수한 열정도 대비된다. 앤서니 김의 욕망과 이고은의 순수한 열정이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부딪히며 부서진다. 드라마의 중심이다. 그들은 드라마를 통해 만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드라마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를 드라마로 완성시킬 것이다. 드라마틱이란 극적이라는 뜻이다.

시청률은 낮다. 하지만 드라마의 가능성까지 낮지는 않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숨가쁘게 사건들이 흘러간다. 캐릭터는 전형적이지만 드라마에 최적화되어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고도 한다.  김명민과 정려원만이 아닌 최시원의 연기 또한 어느새 무르익은 것 같다. 캐릭터를 얄밉도록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원래 그런 성격인 것일까? 재미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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