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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감동인가? 감탄인가? 음악과 쇼의 경계에서..."
나는 가수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다...
2011년 05월 24일 (화) 20: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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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azzasi@stardailynews.co.kr

   
 
지난주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가장 불편하게 다가왔던 장면이 그것이었다. 윤도현이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을 부르게 되었는데, 정작 공연을 앞두고 가사를 외우지 못해 하소연하는 장면이었다.

“도저히 가사가 전혀 이해가 안 돼!”

김범수의 “늪”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범수의 음역대를 넘어선 노래였다. 오로지 조관우만이 여성의 고음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팔세토 창법으로 소화해내던 노래였다. 김범수의 가성도 물론 훌륭했지만 고음에서는 그저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누군가 말한다. <나는 가수다>의 무대는 경쟁이 만들어내는 이제까지 없던 가수들의 최고의 무대다. 가수들이 고심하고 노력하여 만들어난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감동이 있다. 그러면서 다른 가수들에게도 이렇게 했으면.

그러나 과연 최대 수 년 간 고심하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자기 앨범의 음악에 비해 <나는 가수다>의 음악이 훨씬 뛰어난가. 바로 이것부터가 의문이다. 최소로 잡아도 수 개월동안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음반을 만들어 내놓는데 그것보다 2주만에 만들어 내놓는 음악이 더 퀄리티가 있고 훌륭하다?

당장 위의 두 장면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노래란 무엇인가? <위대한 탄생>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항상 가수지망생들에 요구하는 것이 가사전달력이다. 노래가 과연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가사가, 멜로디가, 밴드의 연주가 대중에 전하고자 하는 감정은, 이야기는 대체 무엇인가?

박정현이 부활의 “소나기”를 부르면서도 그래서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부활의 “소나기”라는 노래에는 아주 슬픈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대중들에 전하고 싶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목소리에 강약을 넣고, 기교를 섞고, 몸짓과 표정 등 연기를 해 보이는 것이다.

윤도현도 그래서 임재범의 무대가 끝나자 그렇게 감탄하며 말하고 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냥 부르려면 누가 못 부르겠는가? 필자 역시 “여러분”을 곧잘 노래방에서 부르고 했었다. 그러나 임재범과 필자가 다른 이유. 다른 가수들과도 임재범이 다른 이유. 임재범의 노래에는 이야기가 있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그는 노래로써 자신의 목소리에 담아 청자의 영혼에 그대로 꽂아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노래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 기초한다. 노래를 쓴 윤복희가 인정하듯 어떤 의도로 노래를 썼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했을 때 그런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혹은 그 노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자기의 이야기가 있을 때 청자에게는 그 진심이 전해진다.

그것이 음악이다. 그것이 노래다. 이야기이며 음악인의 의지다. 어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그 안에 청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음악을 들려주려 하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음악인은 자신이 연주하고 부를 음악을 항상 고심해 고르고 그것을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자신의 음반에 담는 것이다. 자기의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과 음악인과의 소통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그런데 정작 가사가 뭔지도 모른다. 가사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YB의 무대는 단지 신나는 록밴드의 연주가 전부였다. 가사에 대한 이해나 재해석없이 YB 특유의 신나고 박력있는 연주와 무대매너가 전부인 무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박완규식 표현대로라면 단지 “소리”만 잘 내는 무대였다고나 할까? 사운드는 신나고 좋았는데 정작 그 노래가 어떤 노래였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갸우뚱.

김범수의 “늪”에서도, 예술이란 의지이며 기술이다. YB의 무대에서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면, 김범수의 “늪”은 김범수의 음역대를 넘어선 고음부에 의해 기술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김범수가 결코 노래에 감정을 싣지 못하는 가수가 아님에도, 도입부에서 역시 가성을 훌륭하게 사용하며 노래의 감정선을 살리고 있었음에도, 그러나 고음에서는 억지로 끌어올리는 고음에 의해 그같은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의 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쇳소리같은 높고 날카로운 “소리”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 역시 가수들이 고려하는 부분이다. 보컬이 자주 바뀌기로 유명한 밴드 부활의 경우만 하더라도 보컬마다 잘 하는 노래의 키가 달라 그때마다 연습을 달리 해야 한다고 무대 위에서 곧잘 헷갈리고 하는 데 대한 이유를 말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김태원도 <위대한 탄생>에서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네버엔딩스토리를 잘 부르는가? 키를 낮춰 부르십시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에 맞춰 곡을 고르고, 설사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곡이더라도 그에 맞춰 다시 편곡하고, 혹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연습한다. 그것이 음반을 준비하는 기간일 것이다. 노래에 자기를 맞추고 자기에 노래를 맞추는 기간이.

결국 <나는 가수다>가 음악이 아닌 퍼포먼스의 장이 되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임재범과 이소라도 그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었다. 한풀이를 했다. 자기 이야기만 털어놓았다. 혹은 너무 세게 부르는데 귀가 지쳐 버렸다. 노래에 충실하려 했다.

“사랑이야” 같은 노래는 굳이 힘주며 부를 필요 없이 그렇게 힘을 빼고 담백하게 불러야 하는 노래였다. 그것은 어떻게 편곡을 달리 해서 대중들에 어필할 수 있게끔 부를 수 있을까.사랑에 빠지는 그 찰라의 순간의 환희와 아름다움에 대해 감미롭게 표현한 노래를 어떻게 하면 과시하듯 자랑하며 부를 수 있을까. 가장 적절한 편곡이었고 노래였다. 그리고 결과는 박정현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6위.

그에 비하면 가사도 이해 못하고 부르던 YB의 무대나, 전혀 버겁게 가까스로 단지 소리를 내어 부를 뿐이던 김범수의 “늪”은 상대적으로 평가가 좋았다. BMK의 “아름다운 강산”의 경우는 도입부의 흑인음악 특유의 끈끈함이 좋았는데 아마 사람들의 귀에 남은 것은 마지막 우렁찬 팡파르 부분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는 자기가 원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니까. 자기가 즐겨 부르는 노래도 아니고, 자기가 부르고 싶어 부르는 노래도 아니고, 우연히 그런 노래가 추첨으로 걸려들었으니 어찌되었거나 부르고 보자. 더구나 준비기간은 고작 2주. 만일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었고 자신의 정규음반에 수록되는 노래였어도 그렇게밖에는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것이 더 좋다니까. 원래 음악보다 더 좋다고 한다. 원래의 그들의 음악보다 더 훌륭하다고 한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모습이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라. 최소 몇 개월에서 최대 몇 년까지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내놓은 음반보다도 단지 2주 동안 편곡하고 연습해서 내놓은 음악이 더 좋다. 음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든 못하든. 음악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고 있든 못하든.

거기에 <나는 가수다>의 한계가 있다. 가수란 무엇인가? 노래하는 사람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노래로써 서로 경쟁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노래의 감성은 가수 개인과 청자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노래에 담아 전하고, 그 노래를 들으며 그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느끼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며 딱히 다른 가수와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조용필이나 조영남 등 선배가수들이 <나는 가수다>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다.

과연 가수가 자신의 감성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잘 효과적으로 대중에 전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자기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담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의 기술로써 표현되어진 가장 잘 표현되어질 수 있는 노래일 것이다. 그런데 전혀 생뚱맞은 노래들과 짧은 연습기간. 과연 그 기간동안 가수들이 대중에 들려줄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임재범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소라가 대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래에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항상 충실히 담아낸다. 경지에 이른 대가란 이런 것일까? 하지만 때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 전혀 기술적으로 미치지 못함에도, 혹은 전혀 필요하지 않음에도 <나는 가수다>이기 때문에 무리를 한다. 감동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보여주는 가수로서의 기술경연에 단지 놀라 감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과연 지금까지의 <나는 가수다> 무대 가운데 원곡과 비교해 최소한 그 만큼의 감동이라도 들려 줄 수 있었던 무대는 몇이나 되었을까? 원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혹은 그들의 다른 음악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을 넘어선 무대란? 그와 비교할 수 있는 무대들이란?

과연 대중은 음악을 듣는 것인가? 단지 “가수”라는 단어와 그들이 보여주는 기술의 경연을 즐기고 있는 것인가? 가수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가? 단지 가수들이 과시하듯 보여주는 기술들에 마치 묘기를 보듯 환호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고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진지하게 듣던 시절을 거쳐 온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란 이야기라고. 가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가수와 대중의 소통이라고. 가수가 노래를 선곡할 때도, 그것을 들려줄 때도, 그것을 들을 때도, 그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아무 생각 없는 리메이크가 비난을 듣는 이유도 그것이다. 김광석의 리메이크와 다른 가수들의 단지 히트곡의 이름값에 편승하기 위한 리메이크가 다른 평가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광석의 리메이크에는 리메이크지만 그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그에 비하면 2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지 않을까? 단지 임재범이라고 하는 전설이 어째서 전설인가만 확인하고. 어째서 이소라는 이소라인가만을 보여주고.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버리고 그것을 평가받는 가수마저. 대중이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박정현 역시 부활의 “소나기”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소화해낼 수 있었다면 그런 실망스런 무대는 보이지 않았을 텐데. 후반부 보여준 그녀의 폭발력은 분명 아름다웠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주.

가끔은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다른 사람은 감동받았다는데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 원곡의 가수와 비교하고, 때로는 그 가수가 예전에 부르던 음악들과 비교하고, 그리고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음악이므로.

하긴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가수다>이지 <나는 음악이다>가 아니다.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가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가수가 얼만큼 할 수 있는가. 가수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기술의 경연장이고 역량을 투사하며 비교하는 자리다.

새삼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과 그 성격에 대해 이해하면서. 아마 과정일 것이다. 더 이상 음악이 아닌 가수만을 보겠다. 그 가수의 기술적 역량과 실력을. 무대에서의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때로 가끔은 그들이 들려주는 감동을. 그리고 여전히 삐딱한 시선을.

과연 <나는 가수다>는 획일화되고 침체된 한국 대중음악계에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몇 달을 준비해 내놓은 음반보다 2주만에 준비되고 무대에 올려진 음악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때. 몇 달을 고민해가며 내놓은 신곡 중심의 음반보다 기존의 곡을 단 2주만에 연습해서 내놓은 노래들에 더 감동하고 감탄하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무엇보다 그것이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TV매체와 무대의 퍼포먼스로 인한 것임을 알았을 때.

결국은 <나는 가수다>야 말로 듣는 음악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 선언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가수도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을 놀라게 하고 감탄케 하라. 그것이 감동이 된다. 어째서 아이돌은 주류가 되어 있는가.

<나는 가수다>에 출연중인 가수와 그러지 못한 가수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려는 후보들에 대한 대중의 폭력과. 감동이란 계량할 수 없는 것임에도. 그러나 대중이 바라는 것은 가수와의 교감을 통한 감동이 아닌 가창력이라는 기술에 대한 감탄이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가창력이라는 기술적 역량을 계량하려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이다.

말하지만 너무 엄격하게 본다. 하지만 그렇게 음악을 들어 왔었다. 그렇게 들어야 한다고 여겨왔었다. 그에 비하면 한 바탕의 쇼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 그대로 예능이다. 버라이어티다. 음악과 감동의 이름으로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대는 좋은데 그 무대마저 때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조금 더 가벼울 필요가 있겠지만. 그러나 무대에서 보여주는 가수들의 열정이 도저히 가벼워질 수 없게 만들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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