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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1.06 10:41

힐링캠프 "타블로와 인터넷이라고 하는 권력..."

건강한 타블로의 모습에 안도와 미안함을 느끼다.

▲ 사진=힐링캠프 방송캡처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째서 사람은 음모론에 쉽게 빠져들고 마는가. 정의(正義)롭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正意)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 정의롭고자 하며 또한 무엇이든 정의하고자 한다. 그런데 세상은 불의로 가득차 있고 모든 것이 거짓으로 가려져 있다.

영지주의가 바라보는 거짓된 신 데미우르고스일 것이다. 홀로 정의롭고 홀로 지혜롭다. 오로지 자신만이 진실한 세계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지식이란 곧 힘이다. 권력이다. 따라서 진실한 지식과 지혜를 얻은 자신만이 진정한 권력의 권좌에 오를 자격이 있다. 그래서 궁예가 관심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권력자들이야 말로 가장 열성적인 음모론의 신봉자들이었다. 모든 사람을 의심했다. 부모를 의심하고, 자식을 의심하고, 아내를 의심하고, 친구를 의심하고, 가장 충성스런 신하를 의심하여 죽였다. 죽이는 순간에조차 권력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진실한 이면이 자신을 해하려 하고 있음을. 설사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어야 했다. 권력이란 바로 무오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권력자들은 무고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사람을 의심하여 죽이곤 했었다. 아닌 것도 사실이 된다. 없는 것도 있는 것이 된다. 권력이란 틀려서는 안된다. 다가오지 않은 앞으로의 일을 예언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진실을 꿰뚫는다. 권력자란 원래 선지자이며 예언자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을 미리 알아내고 사람들에게 알려 대비하도록 하는 이였다. 권력이란 다른 말로 진실을 지배하는 힘이라 할 것이다.

2년 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타블로를 둘러싼 일련의 소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지고 있는 이유다. 당시에도 타블로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린 단어가 바로 '대중'이었다. 그리고 '네티즌'이었다. 드라마 <추적자>에서도 박근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각각의 개인들은 틀릴 수 있어도 그 개인들이 모이게 되면 보다 진실에 가까워지게 된다. 대중에 대한 신뢰다.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하다. 국민이 권력이고 민중이 주인이다. 인터넷에서 다수란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그래서다. 정의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로써 정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타블로가 처음이 아니다. 타블로가 마지막도 아니다. 타블로를 둘러싼 소동이 끝나고 다시 가수 적우가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그 전에는 정선희가 있었다. 정선희의 전에는 최진실이 있었다. 더구나 연예인은 참으로 여러가지로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훌륭한 소재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다. 대중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대중의 공격에 취약하다. 대중의 권력을 과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래서 인터넷이 나타나기 전부터도 연예인들은 이런저런 수많은 루머에 시달려야 했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루머들은 사람으로서 차마 감당하기 힘든 모멸적인 것이기 쉬웠다. 여기에 한 가지 동기가 더 추가된다. 대중의 열등감이다. 항상 누군가로부터 비교당하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도태된 대중의 내재된 분노다.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 위에 올라서서 그나마 자신의 자존감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대중들에게 인터넷이 부여한 대중이라는 이름의 -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권력은 열등감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한 절실한 것이었을 터다. 굳이 유명인의 기사에 악플을 남기고 해당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심리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대중은 옳다. 다수는 항상 옳다. 특히 네티즌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네티즌수사대일 것이다. 자신들의 정의를 - 무엇보다 권력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멋대로 개인의 신상을 털고 그것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정의감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대상이 된 개인은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다. 익명의 뒤에 가려진다. 대중이라는 배경속에 감춰진다. 굳이 타블로가 아니었어도 단지 그를 위한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는 가수다>의 열성시청자들에 의한 출연가수들에 대한 테러도 그 일환이다.

타블로는 똑똑하다. 스탠포드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유수의 명문대를 3년 반만에 석사학위까지 따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호불호와 시시비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의 높은 자존감을 읽을 수 있다. 특별한 존재에게는 특별한 존재에게 걸맞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 허영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아직 감추어져 있는 세계의 - 아니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는 노력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타블로도 이해한다. 어떻게 사람은 음모론에 빠지고, 따라서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자신을 의심하고 의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말했다. 권력은 무오류여야 한다고. 설사 틀렸어도 틀려서는 안된다.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군왕은 무치라 부른다. 부끄러움이 없다. 염치가 없다. 오만하고 뻔뻔하다. 아직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반성 없이 타블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른 근거를 찾아 타블로를 비난하려는 심리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건 끝이 없는 싸움이다. 스스로 권력임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그러면서도 곧죽어도 권력이 아닌 정의라 믿는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것이다.

대한민국 인터넷이 현재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가? 아니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지금 어떤 병을 앓고 있는가? 항상 위만을 바라보라 말한다. 항상 위만을 바라보며 남의 위에 서기만을 강요한다. 내 자식만이 최고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거짓된 자만이다. 이것이야 말로 허위의 자의식일 것이다. 그것이 대중이라는 힘을 얻었다. 인터넷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말했듯 타블로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 가운데 단지 유독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뿐이다.

대중을 비판하는 이유다. 오히려 대중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이 힘이다. 대중이 권력이다. 개인마저 대중 안에 매몰되어 사라진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옳다 할 때 한 발 멈춰서서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정의가 가장 무섭다. 단정짓고 단죄하려는 정의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개인이 사라진다.

차라리 자신을 탓하고 마는 타블로의 모습에서 무력한 개인의 비애마저 느낀다. 인격이 성숙한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그토록 압도적인 대중의 힘 앞에 개인이란 따져묻기조차 힘겨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다수란 권력이다. 아주 무서운.

건강한 타블로가 보기 좋다. 훌륭한 동반자를 만났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다름아닌 아내 강혜정이었다. 강혜정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며 감사해한다. 덕분에 타블로가 어느새 다시 일어나 저리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필자 역시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개인의 힘으로 어찌하기에는 너무나 거센 흐름이었다. 한혜진의 눈물은 그런 필자에게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진정한 '힐링캠프'였다. 눈물은 가장 훌륭한 치유의 명약이다.

다시 한 번 그 사건을 돌아본다. 타블로가 좋아서가 아니다. 타블로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처음도 끝도 아닌 현재진행형의 일상적인 모습인 때문이다.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할 바로 지금 우리들 자신의 문제인 때문이다. 아직도 아프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기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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