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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0.24 10:16

울랄라부부 "임신이라고 하는 계기, 사랑과 의무라는 경계에서..."

장현우와 빅토리아의 사정,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부부의 영역을 침범하다.

▲ 사진제공=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니나 다를까 과거 장현우(한재석 분)가 나여옥(김정은 분)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한 데에는 말못할 아픈 사연이 있었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좋아져서도 나여옥이 싫어져서 아니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암이라고 하는 치명적 질병 앞에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었다. 여옥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여옥의 어머니의 의지가 그 과정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장현우와 나여옥이 만나게 된다.

아무래도 통속드라마인 때문일 것이다. 남편인 고수남(신현준 분)의 사랑은 현재의 사랑인 반면 아내인 나여옥의 사랑은 과거의 사랑이다. 아내의 바람은 남편의 바람보다도 더 치명적이다. 남편의 바람은 그럴 수 있는 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아내의 바람은 여성으로서 정조에 치명적인 흠을 남기게 된다. 정조를 잃게 되면 여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 과거의 사랑은 용서될 수 있지만 지금의 사랑은 용서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서로 용서할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고수남에게 빅토리아(한채아 분)는 지금 당장의 사랑이지만 나여옥에게 장현우가 지나간 사랑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찌되었거나 결국 사랑이다. 그리고 의리다. 하필 아이까지 생겼다. 아이가 생겨 그 책임감으로 나여옥과 결혼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임신을 시켰으니 책임을 진다. 아이게 생겼으니 아버지로서 그 의무를 다한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다. 남자인 고수남이 여자가 되어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과 책임감을 아버지였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르게 고수남은 느끼게 된다. 어쩌면 누이같고 딸같을 빅토리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제 자신의 일부가 된 아이에 대한 책임감, 과연 그 사이에서 고수남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입장이 바뀌었다. 고수남은 임신을 하고 나여옥은 타인이 되어 그것을 지켜본다. 자기가 직접 임신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임신한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전혀 입장도 느낌도 다르다. 어머니가 아닌 남자가 된 입장에서 아이를, 자신의 가족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또 여기서도 하필 그때 눈물나게 그리운 과거의 사랑이 다시 떠오를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없는 지금 미처 몰랐던 가슴아픈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현재의, 혹은 과거의 감정인가? 아니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서로의 책임과 의무인가?

결국은 묻고 있는 것이다. 월하노인(변희봉 분)을 통해. 그리고 무산신녀(나르샤 분)를 통해. 원나잇은 사랑이 아니다. 결혼이란 단지 인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고수남과 나여옥의 전생의 이야기가 아쉬운 것이다. 차라리 처음 보여진 그대로 다음 생을 기약하며 가슴아프게 끝난 사랑이었다면 그 역설과 반전이 더욱 주제를 또렷하게 드러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슴아픈 인연으로 간절하게 이생에서 만났지만 그럼에도 결국 현재의 문제로 인해 두 사람은 틀어지고 만다. 무엇 때문일까? 과거에 서로 기만하고 배반당하여 한을 품었다면 인연이 결국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주제가 희석된다.

사랑이란 이기적인 것이다. 어머니는 딸을 위하고, 어머니는 다시 아들을 위한다. 아들을 위해 며느리였던 이의 뱃속에 있는 핏줄을 지우고자 하는 어머니와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느끼는 또 다른 어머니,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사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빠는 원래 엄마였고, 아빠였던 이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생명의 소중함이야 보수가 주장하는 가장 우선하는 가치일 것이다. 가족은 곧 생명이다. 어쩌면 진부한 결론에 이르게 될까?

빅토리아의 사랑은 갈수록 애절함을 더하게 된다. 신장이 안좋다. 신장에 병이 있다. 아마도 이식을 받기 위해 혈육인 친어머니를 찾았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신장을 내어달라고. 그러나 자기가 버린 딸을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리는 친어머니를 보고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딱히 쌓은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죄스러워하며 끝내 고개를 돌리는 친어머니가 빅토리아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그녀의 곁을 지켜준 이가 바로 고수남이다. 차라리 고수남은 그녀에게 아버지일 것이고 오라비일 것이고 유일한 가족일 것이다. 그런데 단지 이미 결혼해 아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주변을 떠돌게 된다.

그래서 빅토리아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이대로 방치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픈 사랑을 하는 그녀다. 누구도 축복해주지 않을 힘든 사랑을 하는 해맑은 그녀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기만당한 채 상처입는 모습을 이대로 계속 지켜보고 있기란 힘들다. 그녀의 해맑음이 시청자의 마음에 스며들수록 그녀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가운데 한채아라고 하는 배우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있었다. 올곧게 순수하게 사랑하는 여자를 미워하기란 좀체로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그것이 불륜이라 할지라도.

어수선하다. 왁자하다. 그 차이는 바로 흥겨움이다. 타자로써 지켜보거나, 아니면 함께 동참하여 그 흥겨움을 즐기거나. 이제 비로소 그 중심이 생겼다. 아이를 임신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 정확히는 여자가 되어 아이를 임신한 남자와 남자가 되어 그것을 지켜보게 된 여자, 역설이야 말로 드라마의 재미일 것이다. 어떤 헤프닝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주제를 전달하게 될까? 그리고 과연 빅토리아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인가? 의리인가? 인연인가? 의무인가? 가장 오랜 화두들 또한.

실망이 깊어지려다 역시 반전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예상한 바지만 결과는 더 극적이었다. 장현우가 끼어들고 빅토리아가 지키고 고수남과 나여옥은 서로 엇갈리며 서로를 보게 된다. 가족의 진실을 깨닫는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비로소 자신이 되어 서로를 대하며 진실을 깨달아간다. 그 진실은 무엇일까? 드라마를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과연 같은 김정은인가? 같은 신현준인가? 연륜이란 이런 것이다. 배우로서 무르익은 그들을 보게 된다. 마음껏 망가진다. 망가짐이 망가짐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까지 자신을 부수고 해체한다. 그곳에 김정은도 신현준도 없다. 고수남이 된 나여옥과 나여옥이 된 고수남이 있을 뿐이다. 재미있어지려 한다. 배우의 힘이다. 새삼 감탄한다.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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